‘꽃은 알고 있다’. 흥미진진한 도입부의 추리소설 같다고 느껴지는 이 책의 주인공은 퍼트리샤 윌트셔, 식물학자이자 화분 학자, 그리고 법의 생태학자이다. 여성 식물학자, 법의 생태학의 여왕이라는 화려한 이력보다 집중해야 할 것은 사건을 대하는 그의 태도이다. 피해자는 풀어야 할 한낱 수수께끼가 아닌 사랑과 희망, 두려움, 야망을 갖춘 살아있는 인간이었음을 잊지 않는 것. 이 냉철하고 이성적인 학자는 피해자를 향한 정중함을 잃지 않는다.
흡사 미드 CSI의 추리 장면을 텍스트로 옮겨 놓은 듯한 생생함은 우리가 사는 세계가 얼마나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망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새삼스레 느끼게 하지만 또 동시에 내가 타인의 죽음을 얼마나 건조하게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느끼게 된다. 우리네 삶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생과 사 또한 한 끗 차이로 벌어진다. 퍼트리샤 윌트셔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으로 생과 생, 그리고 생과 사 사이의 격차를 좁힌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미시적인 단서를 추적해 나가는 과정은 나의 생이 나만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수많은 학자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안전망을 통해 이루어진 것임을 알게 한다.
그런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를 빗겨나가 생각해도 충분히 흥미로운 책이다. 퍼트리샤 윌트셔와 만나게 된다면, 이라는 가정만으로도 벌써 재미있다. 그는 내 치맛자락과 종아리, 운동화 뒤꿈치에 묻은 씨앗과 꽃가루를 분석해 내가 어디에서 어떤 자세로 있었는지 분석하려 들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 몸에 스민 꽃가루를 채취해 내가 어디를 방문해서 어떤 꽃과 접촉했는지 알아낼지도 모른다. 아주 작고 미세한 것들을 관찰해온 그의 회고록은 사람을 약간 흥분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존재감 없고 희미해 보이는 내 삶에도 어떠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설렘 때문이다.
-누군가 나를 발견해주길 바라며, 한밭수목원 잔디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