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서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튤 Sep 20. 2020

일상을 깨부숴야 찾아오는 평화도 있다

'비둘기'를 읽고

조나단이 일생을 투자해 꾸려놓은 안전하고 안락한 삶은 비둘기 한 마리 앞에서 모두 망가져버린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의 방 문 앞에 비둘기가 있다. 그는 비둘기가 몹시 두려웠다. 화장실에 가지 못해 방 안 세면대에 소변을 볼 정도였다. 이를 기점으로 그의 하루에 균열이 생긴다. 평생 해본 적 없는 지각을 할 뻔하고, 끔찍하게 여기는 거지를 만나고, 옷이 찢기고, 할 일을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 한다. 반복적인 일상에 대한 집착만큼이나 절망스러운 하루 끝에 조나단은 자살하기로 마음먹는다. 자살을 결심하기까지 수난은 전부 하루 안에 일어난 일이다.

처음에는 조나단의 특이한 행동을 웃으며 읽었지만 내용이 진전될수록 점차 입꼬리가 내려갔다. ‘너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꼰대 기질이 있지만 나름대로 성실한 인물 조나단의 삶을 이렇게까지 처참히 망가뜨릴 필요가 있었을까? 마치 한 편의 부조리극을 보는 것 같았다. 작가는 조나단의 태도와 생각을 과장되게 그려낸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 타인의 아주 사적인 모습까지 파헤치는 연예부 기자처럼. 무엇을 위한 장치였을까. 나는 작가에게 드는 불만을 생산적으로 상쇄시켜 보고자 했다.

조나단은 아주 강박적인 인물이다. 똑같은 하루가 막힘없이 흘러가는 것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 조나단이 이런 성격을 가지게 된 데에는 어린 시절 갑작스러운 어머니와 아버지의 부재를 시작으로 일어난 부정적인 변화들이 크고 작게 작용한다. 작가는 단 몇 장만으로 그의 불행한 유년기와 청년기를 압축시켜놓았지만, 당시의 고됨과 어려움의 강도를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때의 일은 조나단을 방어적인 사람으로 변화시킨다. 낯선 것을 극도로 기피하고 반복적인 일상에서 오는 안정감과 안락함을 추구하게 만든 것이다. 그런 그가 비둘기를 만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견고하게 쌓아 올린 일상을 기어코 부숴버리는 장면들에 어떤 이유가 있는가?

내 의견으로, 작가는 조나단에게 삶을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려고 한 것 같다. 빼앗긴 순수한 시절을 다시 느끼게 해 주려고 말이다. 중년의 조나단이 빗물 웅덩이를 밟는 장면이 이 생각의 근거가 된다. 어린 시절의 유희와 같은 자유를 얻은 것처럼 그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빗물을 튀기며 걷는다(또는 뛴다). 이는 소설 초반부의 어린 조나단이 집으로 향하던 모습, 그러니까 어머니가 사라진 현실과 마주하기 전과 겹친다. 망쳐버린 하루를 생각하며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던 그가 이 장면에서는 해방감을 느꼈다. 해방감을 느낀다는 것은 자연히 평화로운 마음을 얻게 된다로 귀결될 것이다.

 끔찍하기로는 벌레도 있고, 거지도 있고, 토사물도 있을 텐데 하필 비둘기가 등장하는 것도 상징적이라고 생각한다. 평화로운 일상을 깨부수는 게 평화의 심벌인 비둘기라는 점, 그리고 돌아온 방 문 앞에 비둘기가 사라져 있다는 점에서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평화로운 삶이 꾸며지거나 가식적이거나 거짓되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것들이 작가가 이토록 조나단을 괴롭힌 이유이지 않을까. 비둘기가 사라진 것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조나단이 진정으로 마음의 평안을 찾았는지는 나오지 않았다. 그의 내밀한 면면을 보느라 지쳐서인지, 나는 그가 웬만하면 안정을 되찾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되었다.


2020.07

매거진의 이전글 꽃은 알고 있다를 읽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