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장 좋아하는 다큐멘터리 중 하나는 BBC 《Planet Earth (한국어판 : 살아있는 지구)》입니다. 이 장중한 시리즈는 "From Pole to Pole (극에서 극으로)"이란 제목의 첫 화로 시작합니다. 말 그대로 북극에서 적도를 지나 남극까지 생명들의 삶을 보여주는데요, 그중 유난히 눈에 띄는 두 새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적도의 극락조이고, 다른 하나는 남극의 펭귄입니다.
극락조는 뉴기니에 서식하는 40여 종의 새인데, 외관이 너무 화려해 이 세상 새가 아닌 것 같은 녀석도 있고, 청소를 열심히 하는 새도 있습니다. 청소를 하는 새라니! 극락(paradise)의 새라고 이름 붙인 것에 납득이 됩니다. 반면에 펭귄은 극한의 추위를 견디기 위해 서로의 체온에 기대야 할 뿐만 아니라, 알을 품는 기간에는 교대로 먹이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한 달에서 네 달 정도를 굶주림과 싸워야 합니다.
걸레질을 하고 있는 극락조(위)와 냉동 펭귄(아래) / BBC Planet Earth, "From Pole to Pole" 캡쳐 화면
이렇게 두 새의 삶이 다른 중요한 이유는 햇빛의 차이입니다. 햇빛으로 전해지는 에너지가 많은 지역은 더 많은 생물을 부양할 수 있습니다. 다른 생물을 먹고 사는 동물 입장에서는 먹이가 풍부한 곳이죠. 그런데 지구가 조금 기울어져서 자전하는 탓에, 양 극지방의 경우 길게는 179일 동안 밤이 이어지는 반면 적도 지방에서는 햇빛을 1년 내내 수직으로 내려받습니다. 그래서 남극의 펭귄은 대부분의 시간을 먹이를 구하는데 써야 하고, 적도의 극락조는 먹이활동 외의 행동에 쓸 시간이 생기는 겁니다.
그런데요, 극락조도 마냥 편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 모양입니다. 이 녀석들이 청소하는 곳은 다름 아니라 구애의 춤을 출 무대입니다. 먹이가 풍부해 살아남은 개체들이 많다 보니, 남들보다 훨씬 돋보여야 자기 유전자를 남길 수 있는 겁니다. 화려한 외관도 경쟁의 수단이겠죠.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주어진 과제가 펭귄에게는 생존이라면, 극락조에게는 치열한 경쟁인듯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니 두 새의 삶 중 어느 하나가 더 수월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세대 갈등을 보면서 들었던 의문과 같습니다. 펭귄과 같이 경제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했던 기성세대. 그리고 그 덕분에 경제적으로 앞서 있으나, 더 이상의 진전은 어려워 극락조처럼 치열한 경쟁의 국면으로 들어선 청년 세대. 개인의 선호는 있겠으나, 객관적으로 어느 삶이 더 수월하다고 답을 내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결국 각 세대마다 각자의 과제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론에 닿았습니다. 자칫 식상할 수 있는 결론 위에 위대한 개츠비의 첫 문장을 덧칠하여 무마해봅니다.
"내가 지금보다 나이도 어리고 마음도 여리던 시절 아버지가 충고를 하나 해주셨는데, 그 충고를 나는 아직도 마음속으로 되새기곤 한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어질 땐 말이다,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좋은 조건을 타고난 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도록 해라.'"
- F. Scott Fitzgerald, 김석희 옮김, 위대한 개츠비, 열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