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콧수염

2020년 11월 10일

by 졸팍

우리 동네 자작나무에는 중국인 콧수염이 잔뜩 있습니다. 중국인 콧수염이란 나무 곁가지가 있거나 떨어진 자리에서 보이는 "ㅅ" 모양으로, 독일 식물학자 페터 볼레벤이 《나무 다시 보기를 권함》에서 이것을 중국인 콧수염이라 부릅니다. 굳이 중국인 콧수염을 인터넷에서 찾아볼 필요는 없습니다. 나오는 것이라곤 웬 청나라 상인 코에 애처롭게 매달린 가느다란 터럭 사진뿐이니까요. 어쩌면 저자나 독일인만 그렇게 부르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입에 착 달라붙으니 나도 그렇게 부르렵니다.

중국인 콧수염은 흉터입니다. 머릿속에 "y"처럼 생긴 나무를 그려보세요. "y"의 오른쪽 획은 나무의 기둥, 왼쪽 획은 곁가지입니다. 나무가 자랍니다. 기둥과 곁가지 모두가 두꺼워집니다. 그러면 두 획의 껍질이 아래쪽부터 부딪히고 이내 찢어지고 맙니다. 나무가 더 자랍니다. 찢긴 상처가 좌우로 벌어지고 위로 더 찢겨 나가면서 "ㅅ" 모양이 됩니다. 이제 영민한 이는 중국인 콧수염의 양 끝이 원래 한 점이었고, 그 점이 바로 곁가지의 시작점이란 걸 이미 눈치챘을 겁니다.

10년 전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출간되었고, 많은 사람이 이 책으로 위로받았습니다. 몇 해가 지나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제목 자체가 개인의 노력과 인내만을 강요하는 사회를 대유하게 된 것입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아픔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자 위로에서 잔소리로 바뀌었습니다. 대중은 "아프면 환자지, 뭐가 청춘이야!"라고 외치는 희극인을 보며 통쾌함을 느꼈습니다.

"아프면 성장한다"를 항상 참인 명제로 착각하면 이런 비극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비단 사회 문제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을 몰아세우기도 합니다. 아픔을 이겨내고 견뎌내서 성장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끔은 아픔이 그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신호에 그칠 때도 있습니다. 문제를 만나면 때로는 우회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중국인 콧수염은, 그러니까 나무의 상처는 성장했기에 생깁니다. 상처가 생겨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자라다 보니 상처가 생기는 겁니다. 그러니 "아프면 성장한다"가 아니라 그 역인 "성장하면 아프다"가 삶을 더 잘 묘사합니다. 그보다 "성장하면 아플 때도 있다"가 낫고, "살다 보면 아플 때도 있다"는 항상 참입니다.

분명 어떨 땐 아픔이 성장으로 연결된다는 희망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항상 참인 것은 어디까지나 살다 보면 아플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살다가 문제를 마주할 때, 문제에 과장되거나 축소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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