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로 시작하는 아침

by 필민

알람소리가 울렸다. 아침에 일어나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반쯤 감은 눈으로 양치를 한다. 양치를 마치면 주방으로 가 억지로 물 한 모금 마신다. 그리고 소형 정수기의 물을 포트에 넣고 버튼을 누른다. 물이 끓는 동안 커피를 계량하고 분쇄한다. 종이 필터를 드리퍼에 장착하고 분쇄한 커피를 붓고 조심스럽게 천천히 끓인 물을 부어 추출한다. 한 번에 몇 잔 분량을 진하게 추출해서 여러 번 나눠 마신다. 마실 때마다 새로 끓인 물을 첨가한다. 잔에 커피를 담고 밖이 보이는 창 앞에 앉아 오늘 읽을 책을 편다.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1980년대 다방에서 파는 커피는 120~150 mL 찻잔에 담겨 제공되었고 농도는 적당했다. 지금은 카페, 커피전문점이지만 당시에는 모두 다방이라 불렀다. 당시의 젊은이들처럼 나도 명동의 2층에 위치한 음악다방에서 노래를 신청하고 비엔나커피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 중 가장 신선했던 커피는 사이폰커피이다. 사이폰커피를 처음 경험한 다방은 대연각호텔 건너 2층 커다란 유리창이 있는 ‘꿈과 같이’였다. 사이폰으로 만들어지는 커피는 마치 실험실에 있는 듯 착각이 들었다. 2개의 둥근 유리볼이 위아래로 장착되어 있고, 가장 아랫쪽에 알콜램프가 있다. 물이 열에 의해 위로 올랐다가 커피로 바뀌면서 내려가는 모습은 신박했다. 사이폰커피는 세월이 흘렀어도 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사실 자주 갔던 곳은 2층에 있는 다방이었다. 비좁은 계단이 있고 창문도 없다. 영화 ‘접속’에서 주인공들이 스쳤던 계단과 동일했는데 다방 이름을 잊었다.


음악다방의 인기는 1970년대 전성기였고 내가 경험했던 음악다방 문화는 끝물이었다. 유명하다고 해서 가본 종로2가의 한 커피숍은 천정 귀퉁이에 레코드장과 함께 DJ가 있었다. 이종환도 DJ로 있었던 곳인데 규모가 꽤 컸다. 커피보다 음악을 신청하고 잘 생긴 DJ를 보러 가기도 하던 시기였다.


나는 남산에 있는 학교에 다녔다. 강의가 없는 시간에는 명동에 있는 고전음악감상실(당시 이름이 '필라델피아')이나 음악다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원두커피가 500원이었고 비엔나커피는 천원이라 학교를 가는 날이면 사치를 즐겼다. 라면 값이 250원이었는데 나는 점심으로 라면대신 비엔나커피를 선택했다. 돌이켜보면 나의 젊은 시절은 한심했지만 그 때로 돌아간다 해도 커피를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후 1990년 말, 다방문화가 도시에서 점차 사라지고 머그잔에 제공되는 천 원짜리 프랜차이즈 커피점이 들어섰고 몇 년간 성행하였다. 대학가 주변에 직접 커피를 볶는 집도 생겼다. 지금에서야 알았지만 10년 전에 커피볶는 집이 있었다. 연건동에 위치한 '난다랑'이다. 난다랑은 1979년 운영을 시작했지만 나는 몰랐다. 나의 활동 범위는 명동을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난다랑을 방문했는지 아닌지 정확하게 기억 나지 않는다.


개인이 로스터리카페를 개업하는 것은 일본으로부터 전해졌다. 이 때 커피업계를 선도했던 분들이 커피 1세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직접 커피를 볶고 트렌드가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강하게 볶고 진하게 마셨다. 커피량은 사용하던 커피잔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더 진하게 내린 스트롱커피를 100 mL 잔에 제공 했다. 가끔은 에스프레소보다 드립으로 내린 스트롱을 즐겼다. 쫀득하고 씁쓸하지만 커피를 삼키고 난 후 입 안에 남는 진한 카라멜향이 좋았다.


나는 젊었을 때 커피를 가리지 않고 트렌드에 맞춰 적당하게 마셨다. 물 건너 온 인스턴트커피도 마셨고 일본스타일의 커피도 마셨고 아메리카노 스타일까지 마셨다. 이제는 나만의 커피를 즐긴다. 그동안 생긴 ‘커피 내공’이 있기 때문이다. 내 맘대로 커피를 볶고 선택하고 추출한다. 예순이 넘어 시작된 커피생활이다.

keyword
이전 01화커피 향으로 깨어나는 나의 두 번째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