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커피를 즐겼던 시절을 3단계로 나누면 커피를 잘 모르고 마셨던 때와 커피를 배우면서 마셨던 시기, 그리고 남은 인생에서 커피를 어떻게 즐길 것인가이다.
커피를 잘 모르고 마셨던 시절엔 물 먹듯이 마셨다. 물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커피를 물 대신 마셨다. 물 이야기를 하니 생전의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는 물 마시는 것을 싫어 하셨다. 예전에는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었지만 글을 쓰면서 물 마시는 습관은 엄마를 닮았다는 점을 깨달았다. 나이 들수록 물을 마셔야 한다고 말씀드려도 엄마는 맹물은 맛이 없다고 불편해 하셨다. 나의 경우, 엄마와 같은 이유로 물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엄마의 유전자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나도 맹물은 싫다.
회사에 다닐 때 근무시간동안 9~10잔 커피를 마셨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음료래야 커피믹스를 비롯하여 티백 차였다. 젊어서 허세였는지 진심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별도의 단일종 커피를 준비해 마셨다. 가끔은 1층에 위치한 프랜차이즈에서 원두커피를 사오기도 했다. 커피에 유별 했지만 무지했다. 커피가 어느 나라 제품인지, 품종은 무엇인지, 볶은 정도는 어떻게 되는지조차 몰랐으니까. 평일에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서 집에 있는 날이면 커피 중독에 빠진 듯 두통으로 괴로울 정도였다. 머리가 왜 아픈지도 몰랐던 나는 한마디로 무식했다. 과거 나의 모습이 부끄럽지만 지금은 적어도 나라와 볶음 정도는 알고 마신다. 그런데 나는 그 때 커피 정보나 맛만 몰랐던 것이 아니었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몰랐다.
어느 날 IMF가 왔다. 나는 디자인 팀장이면서 나이도 많아서 1순위로 권고 퇴직을 했다. 휴식이 길어지면서 삶이 지루했다. 떡볶이, 어묵 장사를 해볼까 했던 생각도 했다. 나는 밥으로 먹는 음식이 달면 먹지를 못했다. 떡볶이를 좋아하지만 시중에서 판매하는 것은 달았고 목 넘김부터 거부했기 때문에 많이 먹을 수 없었다. 내가 만들면 잘할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새롭게 뭔가에 도전할 용기가 없었다. 회사에서 누구보다 적확하고 당당하게 해냈지만 새로운 도전은 마음의 준비와 많은 예습이 필요했다. 그 때 떡볶이 장사를 했다면 망했을 것이다.
나는 처음 접했던 모든 것에 마치 원래 알고 있던 것처럼 행동을 잘했다. 원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할 수 있었던 것은 책을 통해 이론을 먼저 접했기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워크숍을 스키장으로 갔을 때도 미리 책을 읽고 머릿속에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마침 워크숍을 가기 전에 우연처럼 후배들이 다른 체육학과 후배에게 스키를 배운다는 연락을 받았다. 하루 휴가를 제출하고 휴가 전날 퇴근 하자마자 스키장으로 달려가 합류했다.
다음 날 아침, 체육학과 후배는 나에게 처음 보는 스키를 장착시켰다. 걷지도 못하는 나를 끌고 리프트를 탔고 나를 어린아이 다루듯 자신의 앞에 세워 두어 번 내려간 뒤 나를 버리고 다른 후배에게 갔다. ‘할 수 있지‘라고 말하고 간 후배가 황당했지만 덕분에 스키를 시작할 수 있었다.
스키의 두 번째 경험은 회사 워크숍이었다. 하루 스키를 탄 경험과 책으로 무장한 채 간 곳은 무주였다. 다른 사람들은 잘 타는 상급으로 갔지만 나는 굳건히 초급코스에서 글과 이미지트레이닝으로 익힌 이론을 천천히 연습했다. 나는 무척이나 게을러서 넘어지는 것조차 좋아하지 않는다. 일어나는 것이 귀찮아서다. 자전거도 넘어지는 것이 싫어 잘 타지 않았다. 스키를 잘 타게 되었는데도 여전히 기술을 연마했고 상급코스에서 선수처럼 타는 것을 좋아했다. 이렇게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커피가 찾아왔다. 만약 그 때 커피가 아니고 요리였다면, 뜨개였다면, 목공이었다면, 지금 어떤 나를 만났을까.
나는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부러웠다. 그들처럼 되고 싶어 그들의 몸에 내 얼굴을 넣은 상상을 했지만 현재의 나를 부인할 수 없었다.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없었던 젊은 시절, 살기 위해 열심히 일했던 중년 시절을 넘어 남은 인생을 어떻게 즐겁고 건강하게 살 것인가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오늘은 에티오피아 COE* 커피 한잔을 마시자. 배우지 않았다면 나는 커피의 향미가 주는 행복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COE: Cup of Excellent; 한 국가의 농장에서 수확하는 생두의 품질을 가르는 대회로 국내 심사로 예선 후 국제 심사위원들의 결선을 치러 등수를 가리고 국제적으로 온라인을 거쳐 옥션으로 판매되는 방식. 현재는 87점 이상의 커피를 옥션에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