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망초 꿈꾸는 강가를 돌아 달빛 먼 길 님이 오시는가 갈숲에 이는 바람 그대 발자췰까 흐르는 물소리 님의 노래인가...
- '님이 오시는지' 중 / 작사 박문호
나에게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은 최고의 학창 시절로 기억된다.
1986년. 대한민국은 올림픽에 앞서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며 온 국민이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던 시절, 거리에는 외국인용 덩치 큰 '스텔라' 택시가 거리를 질주하고 있었다.
그 해 부임한 담임 선생님은 학교에서 제일 예쁘신 분이었는데, 처음 선생님을 만나던 날을 기억한다.
선생님은 풍성한 머리칼이 돋보이는 세련된 파마머리를 하고, 단정한 투피스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때까지 ‘긴 머리 소녀’를 부른 듀엣 '둘 다섯'의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여자들은 무조건 긴 생머리가 최고야"라며 종교적 신념과 같은 편견에 사로잡혀 있던 시절. 그러나 큰 키에 양장을 곱게 차려입은, 교탁 앞의 선생님을 본 후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사람에게 아니, 여자에게 헤어 스타일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선생님께 칭찬을 들으려 뭐든 열심히 했다.
일기를 가장 열심히 쓰던 시기였고, 화장실 청소가 있는 날에는 누구보다 열심히 청소했다. 우유 당번일 때는 가장 빨리 우유를 타다가 제일 먼저 선생님 책상에 올려놓았고, 난로 당번일 때는 좋은 장작을 구해 와 선생님이 계신 교실을 따스하게 했다. 심지어 어느 때는 선생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 교실 앞에 나가 노래를 5곡이나 불렀던 적도 있었다. 정말 뭐든 열심히 했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의 자상한 칭찬이 뒤따랐다. 다 큰 내가 지금까지도 칭찬에 약한 이유는 아마 그때 담임 선생님의 영향 때문이리라...
어느 날 수업이 끝난 후, 청소 시간이었다.
선생님께서는 나를 부르시더니 “저기 주전자에 물 좀 떠 오렴” 하는 게 아닌가. 나는 큰소리로 "네" 하며 대답하고는 냉큼 달려가 내 머리통보다 큰 노란 주전자를 들고는 교실을 나섰다.
그때 갑자기 '선생님께 불결한 수돗물 따위를 떠다 드릴 순 없어.'라는 생각이, 긴 복도처럼 곧게 뻗어나간 순간. 나는 계단을 내려와서도 수돗가엔 눈길 한번 안 주고 그대로 주전자를 들고 교문을 나섰다. 약수를 뜨러 학교 뒷산으로 향한 것이다.
한참 후에 도착한 약수터에는 동네 우물이 마른것처럼, 긴 줄이 늘어져 있었다.
빨리 선생님께 약수를 떠다 드리고 싶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약수는 다 말라 버린 거처럼 힘 없이 답답하게 흘러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니 '약이 되는 물' 약수가 아니라, '약한 수압의 물'이란 뜻으로 사람들이 '약수'라 부르는 것만 같았다.
순서대로 물을 받다 보니, 결국 해가 저물 무렵이 되어서야 교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칭찬 대신, 선생님의 불호령뿐임을 그때까지는 전혀 눈치챌 수 없었다. 선생님은 주전자를 들고 사라진 녀석이 약수터를 갔을 거란 건 새까맣게 모르는것 같았다. 그런 녀석을 찾으러 얼마나 헤매셨는지 화가 단단히 나서는 내가 낑낑거리며 떠 온, 그래서 바지와 신발까지 젖어버린 약수를 한 모금도 드시지 않으셨다. 터덜터덜 집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 내 속상한 까만 마음처럼 운동장에도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다음날 오전 체육 시간.
운동장으로 나간 아이들 손에는 그 노란 주전자가 들려 있었고, 아이들은 주전자에 담긴 물로 운동장에 열심히 줄을 긋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광경을 보니 어제 일이 다시금 떠오르기도 하고, 고생한 보람이 운동장 땅속으로 자취를 감추는 모습에 울음이 날 뻔하는 걸 간신히 참았다.
어느 날 선생님은 당신이 좋아하는 노래라며 분필을 들어 칠판에 빼곡히 가곡 한 곡을 적으시고는 풍금을 치면서 노래를 가르쳐 주셨다. 그 곡이 바로 저 유명한 ‘님이 오시는지’이다.
“이 가곡은 벨칸토(Bel Canto) 창법으로 불러야 더욱 귀에 쏙쏙 박히는 곡이란다. 벨칸토란 이탈리아어로 ‘아름다운(bel) 노래(canto)라는 뜻인데, 음과 음 사이를 끊어지지 않고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부르는 것이 중요하다. 즉 유연한 레카토가 관건인 노래야.”라면서 음악 평론가처럼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면, 지금까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무슨 말인지도 몰랐을 테고 잘난척하는 것처럼 느껴졌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러지 않았다. 그저 학교 다닐 때 배운 가곡, 아름다운 노랫말이라며 가사를 음미해 보라며 친절하게 하나하나 일러주셨다. 그러면서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이 가곡을 꼭 불러 주라고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사연이 있었음이 틀림없다만 그때는 너무 어려서 아무런 눈치를 채지 못했다. 지금까지 선생님과 소식이 끊기는 줄도 알 수 없었던 거처럼 말이다.
지금은 종방 되었지만 ’TV는 사랑을 싣고’란 프로그램이 있었다. 유명인의 의뢰를 받아 사람을 찾아 주는 프로그램인데, 주로 은사님이나 첫사랑이 대상이 되곤 했다. 나도 그 프로그램을 자주 시청하였는데 하나 같이 유명인들의 은사님을 찾는 모습을 볼 때면 은근히 부럽기도 하여 연예인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되면 출연한 연예인들처럼 나도 선생님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결국 연예인도 유명인도 못 되었기에 교육청에 전화로 선생님을 찾아본 적이 있지만,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며 아마도 교사를 그만둔 것 같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그 후로도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 보아도, 아무도 소식을 모른다고 하니 너무나 아쉬운 마음뿐이다.
가곡 '님이 오시는지'의 가사 첫 소절에 등장하는 '물망초'의 꽃말은 “나를 잊지 말아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