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교향곡 '운명'

내 추억은 33 RPM # 음악시간 편

by 김기린
"... 이 무한한 갈망의 고통 속에서 모든 욕망들이 환희의 소리로 솟구쳐 올랐다가 다시 가라앉고 사라진다. 이 고통 속에서 사랑, 희망, 기쁨이 파괴되지 않고 타버린다."

E.T.A 호프만의 낭만 미학 재조명- 베토벤 교향곡 5번 리뷰(1810년)


초등학교 6학년 졸업식 날.

나는 '빛나는 졸업장'을 받아 들고는 훌쩍였다.

받아 보니 빛이 안 나서가 아니라, 정들었던 학교와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을 못 보게 된다는 생각에. 졸업식 노래를 부르다가도 찔끔 눈물이 난 것이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뒤에 붙어 있던 중학교로 진학했다. 그야말로 어쩌다 보니 중학생이 된 것이다.


중학생이 되었다지만 초등학교 때와 별로 달라진 건 없었다. 월요일이면 학교 가기 싫은 게 비슷했고, 언덕을 올라야 하는 등굣길이 비슷했다, 그런 우리에게 뭔가 변화를 주려는 시도였는지 몰라도 초등학교와 달리, 중학교에서는 과목마다 선생님들이 바뀌었다.


그중 하나가 음악 시간이었다.

남자가 미용실을 가는 게 눈치가 보이던 시절.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파마머리를 한 음악 선생님, 그리고 낡은 슈트(suit)처럼 빛바랜 검은색 피아노가 놓여 있던 음악실. 음악 선생님은 그곳으로 우리를 불러 수업을 진행했다. 그 덕분에 우린 초등학교 때처럼 풍금을 옮기러 교실을 헤매지 않아도 된 것은 다행이었다.


난, 음악실의 피아노가 반가웠다. 인천으로 이사와 살던 동네의 공터 옆에는 작은 피아노 교습소가 있었는데, 야구를 하러 자주 찾았던 그곳에서 그때까지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던 멋진 소리가 들려왔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소리가 피아노 소리였다. 피아노가 음악실에 있었으니 퍽 반가웠던 것이다.

그 후에도 음악 수업은 늘 그곳. 음악실에서 이루어졌는데 아이들 중 더러는 투덜대기 일쑤였다. 이동 시간 때문에 매점에 가야 할 시간이 그만큼 줄었기 때문이었지만, 난 피아노가 있는 음악실을 좋아했다. 어쩜 피아노 소리를 더 좋아한 건지도 모른다.

어느 날. 음악감싱 시간. 선생님은 "자~ 모두들 눈 감아!" 하며 죄 없는 교탁을 지휘봉으로 탁탁 내려치셨다.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고 뭔가를 해야 할 때면 선생님들이 늘 하던 수법, 이런 걸 대학에서 가르쳐 주는지 그 수법이 중학교에서도 똑같았다. 그럴 때면 꼭 눈을 뜨고 장난을 치거나. 눈을 완전히 감지 않고 실눈을 뜨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나였다.

음악 선생님은 커튼을 열더니 책장 같은 곳에서 무언가를 찾는 거 같았다. 그리곤 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얇고 커다란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한 손으로 재킷을 잡고 기울이니 검은색 둥그런 레코드판이 스르륵 미끄러져 나왔다. 자주 해 본 솜씨인 듯 능숙했다. 빨간색 레이블(label)에 가운데 커다란 구멍이 뚫린 레코드판이었다.

난 호기심이 생겼다. 실눈으로 시작한 눈은 어느새 공양미 삼백 석에 눈을 뜬 심청이 아비처럼 두 눈을 뜨고는, 그 장면을 그대로 지켜보고 있었다. 선생님은 양손으로 LP판을 잡고는 오디오 제일 윗부분에 올려놓았다.


귀를 간지럽히는 “지지직~” 하는 소리가 잠깐 나는가 싶어, '이게 뭐지?' 하고 생각할 찰나! 갑자기 “빠~바~바~방” 하는 웅장하고 커다란 소리가 내 귀를 향해 흡사 포탄을 퍼붓듯 밀려드는 게 아닌가. 나는 그 소리에 깜짝 놀랐고, 눈 감은 김에 잠까지 청하려던 녀석 중에는 놀라서 깨는 아이도 있었다.

그 커다란 소리는 분명 귀로 들리는데, 내 심장은 엄마의 콩나물 심부름을 다녀온 것처럼 쿵쾅거리며 나대기 시작했다. 처음 듣는 소리. 이상한 느낌. 묘한 감정이었다.

<운명> 교향곡은 당시 유명 오디오 C.F(베토벤 교향곡 5번 4악장)에도 쓰였던 것이라 음악은 익숙했으나, 그것이 저 유명한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 교향곡이었음은 음악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서야 알 수 있었다.


학교의 '오디오 시스템'이 그렇게 훌륭한 것은 아니었지만, 운명 교향곡 중 지금도 그때 느꼈던 그 감흥과 전율만큼 다가오지는 않는다. 사람의 청각 세포는 나이가 들면서 함께 노화된다고 하는데 그의 중학교 시절 청각은 지금보다 훨씬 훌륭하던 시기여서였을까?

지금도 가끔 베토벤의 <운명>을 턴테이블에 올려놓곤 한다.

그럴 때마다 음악 감상 취미의 인연이 시작되었던, 1987년의 봄을 잊을 수가 없다.

맨날 천날 야구만 하다 그날 이후로 오디오를 갖고 싶다는 소망과 함께 턴테이블을 만났으니 그날의 운명(교향곡)이 어쩌면 나에게도 운명처럼 다가온 것이 아닐까 한다.

내가 지금도 그 어떤 음악 소스들보다 LP(Long Play) 음반에 애착을 갖고 즐기는 것은 그때의 문화적 충격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이리라...

살아오면서 좋아했던 많은 것들이 변하였지만,

단언컨데 변하지 않은 것 중 하나는 단연코 LP 음악 감상이다.


https://youtu.be/OqzjOg7tvBA


* 사진(합성): 베토벤 교향곡 제5번 - 베를린 필하모닉(19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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