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턱까지 차오르는 같이 울고 웃고 뒹굴던 기억 세월 위로 두둥실 떠가는 구겨진 종이배처럼 화양연화....
- 이승환 '화양연화' 중 / 작사 이규호
사실 명반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하였다. 음반에 대한 평론도 되도록 자제하자고 다짐했다. 명반을 논할 그럴 능력도 없고 주제도 안되니 말이다.
명반(名盤)의 사전적 의미를 알면 더욱 그렇다. 우리가 말하는 명반이란 것은 유명한 음반 또는 음반계의 명작쯤으로 해석될 수 있는 용어로 명곡과는 거리가 먼 용어다. 명곡이 많이 담긴 음반을 명반이라 할 수도 있으나, 명곡이 있다고 꼭 명반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요즘엔 돈 되는 음반을 명반이라고 칭하는 이도 있지만 이는 잘못된 정의일 것이다.
명반과 명곡에 관한 한 내 생각은 “이 세상에 명곡이 안 담긴 음반은 없다. 아직까지 명반이 아닐 뿐!” 이란 생각을 한다. LP의 세계에서는 시간이 흐른 뒤 재평가받는 곡들도 숱하게 많고 그런 음반도 많다. 먼 외국까지 예를 들 필요도 없이 ‘김광석’의 음반이 그러했고 ‘유재하’의 음반이 그랬다. ‘산울림’ 등 대부분의 그룹사운드의 음반들은 시간이 흐른 뒤 재평가받고 있으니 말이다.
가끔 어떤 음반들은 딱 8곡만 수록이 된 것을 볼 수 있는데, 좀 야박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LP판은 그 특성상 12인치(약 30㎝)로 제작된다(물론 싱글에 해당하는 7인치 음반이 있기는 하다) 소리골을 모두 채워도 12인치이며 한 곡을 채워도 12인치로 동일하다. 그런데 어떤 음반은 플레이 시간마저 짧아, LP판에 새겨지지 않은 소리골이 없는 밋밋한 빈 공간을 볼 때면 더 그렇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 ‘어차피 남는 공간, 연주곡이라도 넣어줄 것이지’ 하며 혼잣말을 할 때도 있다.
LP를 모으다 보니, 운 좋게도 가끔 미개봉 LP음반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오래된 음반들 중 용케 미개봉된 음반을 구했을 땐, 비닐을 뜯기가 여간 망설여지는 게 아니다. 그 안의 소리도 궁금하지만 그냥 그렇게 계속 보관하고 싶어 몇 번을 매만지다 그대로 보관하기로 한 것도 제법 많다. 아마 이다음 누군가의 몫으로 남겨 두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아들 녀석도 새 음반의 비닐을 제거하는 그 순간. 무척 설레고 기대감으로 행복한 그 순간을 맛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그랬던 거처럼 말이다.
어떤 음반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선택되는 과정은 각기 다를 것이다. 내 경우에는 처음 음반을 구매하면 무조건 모든 곡들을 한 번 쭈욱 들어본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들어본다. 이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좋아하는 노래가 생기면(‘화양연화’처럼) 그 곡을 반복해서 듣는다. 어느 정도 따라 부를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한다. 이때 LP와 CD의 특성이 확연히 드러난다. 원하는 곡을 선택해 반복해서 듣기로는 CD의 편리함을 LP는 따라올 수 없다. LP음반은 그 구조상 앞면과 뒷면으로 나뉘기에 중고 음반을 사서 앞뒷면을 비교해 보면 당연히 히트곡이 수록된 해당면을 플레이한 흔적이 확연히 드러난다. 레이블에 찍힘 자욱이 많은 면은 십중팔구 히트곡이 수록된 면들이다.
요즈음 LP붐을 타고 새롭게 LP음반을 내는 가수도 많아졌다. 하지만 대부분 음질이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 CD와 LP는 제작단가 자체가 다르기에 LP로 만족할 만한 음질로 출시하려면 적자도 감수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승환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가수다. 우선 소리에 관한 한 타협이 없기로 유명한데, 몇 번이고 녹음을 하고 또 녹음을 한다는 일화는 이미 그 바닥에서 유명하다. 좋은 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해외 스튜디오 찾는 걸 마다하지 않고 번잡한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것으로 팬들은 기억하고 있다. 4집 ‘Human’이 그랬고 5집 ‘Cycle’ 그랬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
'화양연화'라는 곡이 실린 Fall To Fly라는 음반 역시 독일 최고의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것만 보아도 그렇다.(최초 저 유명한 영국 Abbey Road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려다 음질 문제로 변경) 그런 가수, 이승환이 LP로 음반을 출시한다고 하여 사이트에 접속을 하고 잠복을 하였다. 몇 분만에 완판 된 순간 속에서 운 좋게 음반을 찜 할 수 있었다. 음반시장에서도 규모의 경제가 통용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가수가 팬들을 위해 마케팅보다 녹음에 비중을 두고 음반에 투자한다는 것은 분명 칭찬받을만한 일이다. 아무나 못하는 일이기도 한다.
난 이 앨범 중 특히 '화양연화'란 곡을 좋아하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양조위 장만옥 주연의 왕가위 감독의 영화 제목이기도 하고, 유지태 이보영이 출연한 드라마의 제목이기도 하다. 난 그 영화나 드라마보다 이승환의 <화양연화>라는 노래를 먼저 듣고 비로소 ‘화양연화’의 의미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음악은 사진을 보듯 풍경과 맞아떨어질 경우가 있다. 드라이브를 하다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곡들이 그런 경우가 많지만 흔하지는 않은 것 같고 한 노래를 반복해서 듣다 보면 어떤 장면과 맞아떨어질 때가 자주 있다. 노을 지는 풍경이라던지 비나 눈이 오는 거리의 풍경 그리고 낯선 곳을 찾아갈 때의 집중력을 필요할 때도 은근히 음악이 도움이 되며 잘 어울린다.
'화양연화'를 들을 때면 떠 오르는 장면도 비슷하다.
처음 가보는 한적한 시골길을 달릴 때. 차 안에서 '화양연화'가 흐르고 있었는데 퍽 풍경과 어울렸던 장면으로 기억된다. 서산으로 지는 노을 속에서 ‘지금까지 잘 살아왔노라’며 위로를 건네던 그 노랫말에 울컥했던 건, 나만의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