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저녁 별이 떠오를 때면 생각이 나는 숱한 사연들 이제 또다시 그리워지면 가위 바위 가위 바위 보...
- 이정희의 '가위바위보' 중 / 작사 오동식
난 중학교까지 남녀공학을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의 축복이었던 그 남녀공학에서 우린 1주일에 한 번은 반을 옮겨 다니며 공부를 해야 했다. 문교부(훗날 교육부로 개편) 정책에 따라 남자아이들은 ‘기술’을 배웠고, 여자 아이들은 '가정'을 배웠다.
둘 다 배울 수 없었던 건 참으로 아쉬웠는데,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곤로'에 밥을 할 줄 알았기에 반찬 만드는 법도 배우고 싶었던 것이다.
어느 날인가 그 기술 시간에 라디오를 조립한단다.
물론, 학교 앞 문구점에서 파는 라디오 KIT를 구입해야 가능했기에 좀 부담스러웠지만, 그때 잡았던 납땜용 인두기를 오랜 시간 가까이하며 살게 될 줄은 그때는 정말 꿈에도 몰랐다. 아무튼 평생 처음 라디오를 만들어 본다는 사실에 난 들떠 있었고, 과연 소리가 날까 하는 궁금증에 설레기까지 하였다.
나는 어릴 적부터 TV 보다 라디오가 좋았다. 자라던 곳이 두메산골이라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던 이유로 TV 보다 라디오를 먼저 접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 수 있던 라디오가 좋았다. 지금도 TV보다 오디오 기기에 손이 더 자주 가는 걸 봐서는 일찌감치 지속 가능한 취미를 만났음은 분명하다.
당시 조립용 라디오라 해봐야 몸체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커다란 모노(Mono) 스피커만 덜렁 달려 있을 뿐인지라. 거기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무슨 큰 감흥을 느꼈을까 싶지만,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떠나는 신비로움은 지금보다 훨씬 컸던 거 같다. 라디오를 통해 산울림의 ‘산할아버지’를 자주 들었고 까랑까랑한 목청으로 “마음 약해서”를 부르던 ‘들고양이들’의 임종임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어 좋았던 시절이다. 물론 그 가수가 그 가수인 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 집은 산골에서 주로 밭농사를 지었는데, 어른들은 밭일을 나갈 때면 신줏단지 모시듯 라디오를 챙겨 갔다. 나는 멋진 노래가 흘러나오던 라디오 주변을 늘 서성거렸다. 안테나를 길게 뽑아 이리저리 방향을 맞추면 “지지직” 거리던 소리가 신기하게 깨끗해지고 이내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던 기억... 그런 기억 속의 아련한 추억이 녹아 있던 라디오를 내가 직접 만들어 보던 학창 시절의 기술 시간은좋은 추억으로 더욱 선명하게 기억된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술 시간.
'트랜지스터' 부품이 6개 들어가 6석이라 불리던 라디오 KIT 안에는 이름도 모를 전자 부품들이 즐비했는데, 선생님은 그 부품들을 하나씩 들어 보이며 트랜지스터, 저항, 다이오드, 콘덴서라 일러 주었지만, 우린 그게 뭔지도 모른 채 유일하게 아는 부품인 스피커만 물끄러미 처다 보고 있었다. 프라모델 조립을 하듯 조립도를 보고 기판에 잘 꽂아서 필요한 곳은 납땜을 하면 되는지금 생각해 보면 간단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전자부품은 모두 저마다의 고유값과 극성을 갖고 있어 주의가 필요함에도 그저 빨리 조립해 소리를 듣고 싶은 욕심에 실수가 많았던 것이 문제였다. 물론, 손재주가 좋은 친구들은 금방 조립을 끝냈고 소리도 잘 났지만, 난 그렇지 못했다. 완성 후 몇 번이나 검사를 받으러 나갔지만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결국 학교에서 시작된 작업은 집으로 이어져 계속되었다.
난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씩씩거리며 부품들을 떼었다 붙이기를 반복하며, 어릴 적 시골에서 듣던 라디오처럼 어서 멋진 소리가 나 주길 기대했건만 실패의 연속.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저녁도 거르며 시작된 작업이 배고픔으로 슬슬 짜증까지 밀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엔 부품이 불량이 아닐까 하는 의심으로 부품 탓을 하기에 이르렀고, 주파수 다이얼만 신경질적으로 이리저리 막 돌리는데... 마치 꽁꽁 잠겼던 금고문이 열리듯, 막혔던 수도에서 물이 콸콸 흐르듯 라디오 시그널 음악이 방안 가득 울려 퍼지는 것이 아닌가.
“(둠칫 둠칫) 초저녁 달이 떠오를 때면 생각이 나는 숱한 사연들~”
'어? 이건?' 그렇다. '가위바위보' 라디오 프로그램의 시그널 음악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드는 순간, 나도 모르게 “와!” 하는 짧은 탄성과 함께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드디어 해 냈다는 감격의 표정은 아마 누가 봤으면 올림픽 기능 경기에서 금메달이라도 딴 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나의 벅찬 감격을 반감시키며 나이아가라 폭포의 물처럼 한순간 바닥으로 뚝 떨어뜨리고말았으니, 그건 바로! 그 방송 딱 하나만 잡힌다는 것이었다.
주파수 다이얼을 몇 번이나 왕복하며 끝에서 끝까지 아무리 돌려도 '가위바위보' 방송만 들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