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나라

내 추억은 33 RPM # 소풍 편

by 김기린
파란 나라를 보았니 꿈과 사랑이 가득한
파란 나라를 보았니 천사들이 사는 나라
파란 나라를 보았니 맑은 강물이 흐르는
파란 나라를 보았니 울타리가 없는 나라

- 혜은이 '파란 나라' 중 / 작사 : 지명길

커트 머리, 앳된 얼굴로 시간이 정지한 채 음반 재킷을 장식한 가수 혜은이의 LP 음반이 어느날 내 손에 들어왔다.

언제 적 음반인가 하고 살펴보니, 1970년대다. 지금도 혜은이를 좋아하는 팬들이 많겠지만 그 당시 인기는 지금과 비교불가다.


가수 혜은이가 16집(16집이 맞다) 음반을 내놓을 무렵. 우리나라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준비로 분주했고, 우리들은 그해 가을 소풍을 ‘자연농원’으로 간다는 소식에, 개교이래 몇 손가락에 들 정도의 환호성으로 기쁨을 대신하고 있었다.


1970년 후반. 경기도 용인에서 개장한 ‘자연농원’은 1996년에 이르러 그 이름이 ‘에버랜드’로 바뀐,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당시 국내 최대의 놀이공원으로 중학생 소풍 장소로는 늘 선망의 대상이었던 곳이다.


손꼽아 기다리던 소풍날 아침.

우리들은 일찍부터 학교 운동장에 줄 지어 대기하던 버스에 순서대로 올랐다. 멋스럽게 차려 입고 귀 밑에는 붙이는 멀미약을 붙인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이윽고 버스가 고속도로를 달릴 때 즈음, 언제나 그랬던 거처럼 장기자랑이 시작되었다. 말이 장기자랑이지 노래자랑이 더 정확한 표현이리다.


거기서 누군가 부른 노래가 ‘파란 나라’였다.

'파란 나라'는 그 시작 부분, 그러니까 그 오르골처럼 흘러나오는 부분이 특히 압권인데 당시 자연농원 C.F로도 사용되었기에 친구의 그 선곡은 순서의 차이였을 뿐 누가 불러도 불렀을 노래였다.

사회를 보던 친구는 노래가 끝나자 대본에도 없는 질문을 이어 갔는데, 자연농원엘 가면 어떤 놀이기구를 탈 것이냐고 물었던 것이다. 노래를 부른 친구는 “사파리” 구경을 하고 싶다며 어깨에 힘주며 말했다.


그러나 소풍이라고 없던 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질 리 없기에, 주머니 사정이 뻔한 우리들, 아니, 나같은 아이에게 사파리 구경은 언감생심. 난, 속으로 노래를 부르면 '뭘 타고 싶다 하지?'란 생각으로 즐거운 소풍길에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있었다. 사회자가 갑자기 지나가다 나에게 다가와 물을까도 싶어, 일단 ‘환상특급’이나 ‘비룡 열차’를 타겠노라는 대답을 준비해 놓고는 맘껏 상상의 나래를 펴며 군침을 꼴딱 삼키고 있었다. 남자로서 ‘우주관람차’(대관람차) 같은 시시한 놀이기구 따위는 결코 타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게 출발하였던 소풍길. 맛난 김밥과 놀이기구까지 잘 타고 돌아오던 버스에선 갑자기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분위기가 반전되었으니...

그것은 바로 우리 반 부반장 안예린이라는 아이 때문이었다.

안예린. 서기였던 내가 청소시간에 자습을 칠판에 쓸 때면, 아이들이랑 남아 조용히 자습을 필기하며, 가끔 재미있는 얘기를 해 달라던 키가 작고 얼굴이 하얗던 부반장. 그 부반장 안예린이 내일 전학을 간다며 학교 앞 교탁에 나와 인사를 하듯 버스 운전수 옆까지 나와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소풍 가던 버스에서 노래를 부르던 그 마이크로 작별인사가 절정에 도달했을 때, 분위기는 점점 숙연해지더니 "너희들을 잊지 않을게"하는 대목에서는 예린이도 울고 아이들도 울고 버스기사님도 울었던 것이다. 난 눈물은 안 났지만, 좀 섭섭했다. 그런데 왜 섭섭했는지는 잘 생각이 안 난다.


우리가 태어나 가장 먼저 접한 음악. 난 그것을 동요라 생각한다. 오선지 위에 악보가 그려진 건 비슷하다지만, 음악의 종류는 그 수가 참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태어나 귀가 트이고 가장 먼저 접한 음악은 아마도 누구에게나 동요일 것이다. 우리 시대는 그랬다. 적어도 교과서 기준으로는 그랬다.


물론, 아이들은 엄마, 아빠(엄마가 먼저다)의 영향을 받으니 부모가 즐겨 듣던 음악. 이를테면 부모님이 클래식을 좋아하면 클래식을, 부모님이 팝송을 좋아하면 팝송일 수도 있고, 산부인과에서 흘러나오던 그 어떤 음악일 수도 있겠다.


동요의 사전적 의미는 ‘아이들의 생활 감정이나 심리를 표현한 정형시. 또는 거기에 곡을 붙여 부르는 노래’를 뜻한다. 그래서인지 가사는 동시와 같고, 곡은 단조롭고 어울리기 쉬운듯하다.


지금도 동요를 즐겨 듣는다.

‘별’이라는 동요를 들을 때면 소풍날 장기자랑 시간에 앞에 나와 그 동요를 부르던 우리 반 반장의 모습도 떠오르고, 노을을 들을 때면 ‘MBC 창작동요제’와 ‘누가누가 잘하나’라는 프로그램이 - 두 손을 곱게 포개어 모으고 박자를 맞추며 그 모습이 – 생각난다.

‘섬집아기’를 들을 때면 풍금을 치시던 예쁜 손가락의 우리 담임선생님이 그립고, 박은옥의 ‘윙윙윙’은 고추잠자리를 쫒던 두메산골의 마당과 거봉 같은 눈을 가진 개, 백구가 생각난다.


일상이 따분하고 재미없는가?

그럼 지금 턴테이블에 동요 음반 한 장을 걸어 보는 건 어떨까.


그 옛날 아무 놀이기구 없이도 신나게 운동장에 줄 긋고 공을 갖고 뛰어놀던 흙먼지 날리던 운동장으로, 풍금소리에 발맞춰 선생님의 발성연습을 따라 하던 그 시절의 우리로 데려다줄 것이니 말이다.



https://youtu.be/mbz2MipAUBU


* 사진(합성) : 혜은이 16집, 한국음반(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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