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린 날도 지워질 날도 다 그대를 위했던 시간인데 이렇게 멀어져 만가는 그대 느낌은 더 이상 내게 무얼 바라나 수많은 의미도 필요치 않아 그저 웃는 그대 모습 보고 싶은데...
'기다린 날도 지워질 날도' 중 / 작사 오태호
첫 미팅을 고등학교 때 해 보았다.
중학교 때는 뭘 잘 몰랐던 것도 있었고, 다행히(?) 남녀공학이라 굳이 따로 누굴 만나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그럴 금전적, 시간적, 멋 부릴여유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땐 한창 야구에 빠져 있었을 때이니....
내가 얼마나 야구를 좋아했냐 하면, 책가방을 쌀 때면 보통 책을 제일 먼저 넣고(진짜다) 그다음, 도시락을 넣고 마지막에 글러브랑 야구공을 챙기는데, 가방에 다 못 들어가는 날이면 도시락을 빼고 글러브와 야구공을 넣을 정도였다. 그리고 수업을 마치면 학교 운동장에서 야구를 했는데, 한 번 시작하면 해가 넘어가 야구공이 안 보일 때까지 하다가 집에 돌아오곤 했다.
이 좋은 야구를 고등학교에 가서는 온종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보통의 운동선수들이 그랬던 거처럼,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맨날 야구만 하니 성적이 좋을 리 없었고, 동네에서 야구 좀 하던 실력으로 고등학교에 가서 야구를 하겠다던 야무진 꿈. 그것은돈이라는 현실 앞에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돈 없으면 운동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난 그때 처음 알았다. 인생 첫 시련이었다.
아무튼 그 후 성적에 맞춰 집에서 꽤 멀리 있는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하니, 모두 시꺼먼 놈들만 모여 있는 게 분위기가 중학교 때와는 사뭇 달랐다.
학기 초, 처음 보는 그 놈들은 걸핏하면 싸움을 하였고, 점심시간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치 동물의 왕국에서 보던 ‘세렝게티’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적응이 잘 안 되었지만 친구 몇 놈들과 여전히 야구를 하며 울분의 광속구를 던졌고, 음악을 들었고, 공부는 하지 않았다. 공부로 성공할 놈은 따로 있다며 시험기간에만 꾸역꾸역 하는 게 공부였다면, 야구와 음악은 매일 밥 먹듯 해야 직성이 풀렸다. 어쨌든 그렇게 고등학교에 가서도 좋아하는 것들을 지속할 수 있었다.
일상의 반복으로 지루했던 내게, 주말에는 화려한 외출, 신세계의 문이 활짝 열렸으니 그것은 바로 미팅이었다. 남녀공학이 아니니 더 이상 거리낄 것도 없었다.
첨엔 가끔이었다. 마치 '그 시작은 미약하였던' 성경의 한 구절처럼 말이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우린 거의 매주마다 미팅을 했다.
친구들이 돌아가며 주선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리고 원대한 목표가 생겼으니, 인천에 있는 모든 여학교와 미팅을 해 보겠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당시 인천에 살던 우리 또래가 다 그랬듯,주로 동인천 ‘대한서림’ 앞에서 만나 커피숍을 가고 노래방을 갔다. 당시 노래방은 부산에서 유행하던 문화였지만, '인천 상륙작전'을 하듯 인천에 상륙하던 시기. 유행을 선도하지는 못 했지만 그 유행을 적극 수렴했던 우리였다. 뭐 마땅히 갈 때도 없었고 아무튼 그땐 술을 마시지 않고도 노래방에서 참 재미있게 놀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반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이승환 1집이다. 특히 이 음반으로 말할 것 같으면, 미팅 나갈 때 필수 지참물 중 하나로, 지금은 사라진 동인천 ‘촛불 커피숍’에서 신청곡으로 참 많이도 틀어 달라고종업원 누나를 귀찮게 했다. 이건 뭐 음악을 들으러 커피숍에 가는 건지 커피를 마시러 가는 건지 모를 정도로 주객이 전도된 상황,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커피맛도 모르던 시기, 신청곡의 멋을 알았던 시기다.
예상했겠지만, 그때 노래방에서 자주 부르던 곡 중 하나가 ‘기다린 날도 지워질 날도’였다.
이승환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지워질 날도’를 ‘지워진 날도’로 알고 있는데. 아니다. 그렇게 되면 ‘기다릴 날도 지워진 날도’가 되는 것만큼 어색하다.
당시 우리 또래들은 헤비메탈이 유행하던 시기였지만, 난 발라드가 좋았다. 이승환의 말랑말랑한 노래가 좋았다.
어느덧 30년이란 시간이 흘러 좋아하던 것들이 많이도 변했다. 그때 미팅에서 만나, 좋아하던 사람이 지금은 곁에 없고, 촛불 커피숍도 없어지고 동인천도 나이를 먹은 나만큼 몰라보게 많이변했을 것이다. 노래방은 또 어떤가? 가본 지 너무 오래된 곳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이승환 1집을 턴테이블에 올리고, 그때 그 미팅을 같이 나갔던 녀석들을 지금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동인천 대한서림이 아직 그 자리에 있다고 하니, 언젠가 한 번 들러봐야겠다.
그곳엔 책으로 엮을 만큼의 추억이 수두룩 할 것이고, 난 서점 어느 구석 시집 코너를 서성이고 있을지도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