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와 같이 함께 울어 줄 사람 있나요 누가 나와 같이 함께 따뜻한 동행이 될까 사랑하고 싶어요 빈 가슴 채울 때까지 사랑하고 싶어요 사랑 있는 날까지
- 동행 중 / 작사 최성수
아르바이트를 할 때의 일이다.
여느 때처럼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한가로운 오후. 갑자기 삐삐가 울렸다.
당시 삐삐로 날 찾을 사람은 정해져 있었지만, 낯선 번호였다. 전화를 해보니카페였고 잠시 후 호출한 사람을 바꿔 줬다, 역시나반가운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뭔가 조급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다.
“나야.”
언제나 그렇게 시작하는 목소리.
“나, 지금 부천이야. 정전으로 전철이 다니지 않아..."
주변이 좀 시끄러웠지만 또렷하게 들렸다.
전철로 인천에서 부천까지 통학을 하던 그녀. 전철이 정전이라면 철도청에서 그녀를 위해 석탄을 넣는임시열차를 보내 줄 리는 없다.
“거기 어디야? 내가 데리러 갈게.”
알. 바 시간임을 잊은 건 아니었지만, 가야 할 거 같았다. 반드시 그래야 할거 같다.
내 표정에서 이미 급한 사정임을 알아 차린 함께 일하던 형은 빨리 다녀오라는 말 대신, 눈빛과 손짓으로 내 등을 떠밀고 있었다.
편의점을 나와 허겁지겁 집으로 달려가는 길. 저만치 집 앞 공터에 주차되어 있는 매형의 자주색 '르망'이 눈에 들어온다. 다행이다. 저 녀석만 믿고 전화 통화에서 확답을 한 것인데, 그 자리에 있다, 마치 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기름도 넉넉하고 네 바퀴도 문제없으니 어서 키를 가져와 차문을 열라고 손짓하는 것만 같다.
차 시동을 건다. 내 심장 소리만큼 자동차의 엔진 소리가 힘차다. 난, 무작정 부천 쪽을 향해 내달렸다. 지금처럼 내비게이션도 없던 시절, 부천 정도는 이정표를 보고도 충분히 찾아갈 수 있는 거리다. 한편으로는 그곳에 그녀가 있다는 것이 퍽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나와 같이 달리는 자동차들. 모두 정전으로 고립된 가족이나 친구 또는 친지들을 데리러 가는 것 같은
조급한 시간이 흐르는 오후.
더디게 바뀌는 신호등을 지나, 이리저리 차선 변경을 한 끝에 무사히 부천역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스타치스 꽃다발 (출처: SJ플라워)
저 멀리 그녀가 보인다. 마치 내가 올 줄 알았다는 듯 기다리고 있다. 이름을 부르며 가까이 다가가니 수줍게 꽃다발을 내민다. '스타치스'라 했다. 그런 꽃이름이 있었나 싶은, 처음 듣는 꽃이름이었다.
어여쁜 그녀와 함께 자동차로 돌아오는 모습은 흡사 개선장군 같이 발걸음이 위풍당당하다.
오던 길을 되돌아가는 길, 당연히 조수석 자리엔 그녀가 있다. 아직 나의 임무는 끝나지 않았으니.
아! 그런데 이 일을 어쩌랴? 비로소 차 안의 풍경이 내 눈에 들어온것이다. 매형이 담배 한 갑은 족히 피워 댔을 담배꽁초와 더불어, 흙이 잔뜩 묻은 발판과 나뒹구는 쓰레기들. 대시보드 위 잔뜩 내려앉은 먼지까지...
갑자기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이럴 땐. 딱 음악을 들어야 할 시간.
무작정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다행히 카스테레오에 테이프가 들어 있다. 아마도 매형이 듣던 음악이었으리라...
감미로운 피아노로 시작하는 노래가 차 안에 흐른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차 안에서 듣는 음악은 집에서 오디오로 접하는 음악과는 또 다르게 들리는법. 그날은 유독 더 그랬던 거 같다.
서서히 볼륨을 올려 듣던 노래. 최성수의 '동행'이었다. 분위기를 깨는 뽕짝 메들리였다면 참 난감했을 텐데. 다행이었다. 선곡도 좋았다. 동행이라니... 우연치고는 필연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오늘처럼 언제나 함께할 것이란 그 의미가 담뿍 담겨, 더 좋았다. 그땐...
그녀의 옷차림도 얼굴도 지금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분명하게 기억나는 게 있다.
“나, 네가 가장 먼저 생각나 연락했어. 그러니 고마워해야 한다” 던 알 듯 모를 듯 던지던 말.
위기에 빠졌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이 나란 사실이 좋았다. 아니, 고마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반드시 갈 것이란 사실을 어떻게 알았던 걸까? 지금은 하나도 안 궁금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참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