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되는 학교에는 그 옛날 우리의 모습이 있지 뭔가 분주하게 약속이 많은 스무 살의 설레임 너의 학교 그 앞을 난 가끔 거닐지 일상에 찌들어 갈 때면 우리 슬픈 계산이 없었던 시절 난 만날 수 있을테니
- 오래전 그날 중 / 작사 박주연
사랑 노래 중 첫사랑에 관한 노래들이 꽤 여럿 있다. 첫사랑에 관한 노래는 그 가사를 음미해 보면 알 수 있는데,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이 많은 공감을 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런 경험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 이야기 같은, 친한 친구한테 술 마시고 털어놓은 이야기를 누군가가 받아 적어 노래로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첫사랑은 운명의 장난처럼 끝나, 대개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느 유명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전국 20세에서 59세의 남녀 500명씩을 대상으로 실시한 '첫사랑'에 관한 인터넷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첫사랑의 평균 연령은 10.4세이며, 상대와의 현재 관계를 묻는 질문에 배우자 또는 약혼자라고 대답한 사람은 1% 정도라 한다. 따라서 이 조사 결과대로라면 첫사랑이 이루어질 확률은 1/100 정도. 그야말로 절망적 확률인셈이다.
소설 속에서 노래 속에서 무수한 주인공들도 그랬다. 나의 첫사랑이 누구였는지 가만히 떠올려 보자. 이제는 낡고 시시한 이야기였을 누군가에게도 그때 그 첫사랑은, 이게 첫사랑인지 짝사랑인지 아니면 사랑인지도 모르게 찾아왔을 것이다. 마치 예고 없이 내리는 소나기처럼 어느 날 내 가슴속으로 뛰어들어 날 들뜨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다 시간이 얼마큼 지나고 보면 내가 한 첫사랑이 짝사랑이었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운명처럼 시작되는 그런 사랑 이야기의 한 페이지가 누구에게나 있었다.
그때 우리는 눈부시게 젊었다. 꽃이 피고 비가 내리고 노을이 지고 눈이 오는데... 어찌 사랑을 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사랑이 없는 젊음, 사랑이 빠진 젊음은 젊음이 아니다. 푸릇푸릇 싱그럽고 수줍고 순수했던 그 시절은 누구에게나 눈부신 이야기일 테고 내가 한때 그 주인공이었음은 퍽 다행이고 아름다운 순간이었음은 분명한 것이다.
윤종신의 '오래전 그날'을 들었던 건, 역시나 첫사랑을 떠나보낸('떠난'이 아니다) 후였다. 감기에 걸린 것처럼 무기력한 나날들로 첫사랑의 후유증을 앓던 중 우연히 라이오에서 그 노랠 듣고 말았다. 노래가 끝나도 멍하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당시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전주도 없이 훅 들어온 읊조림. 그것은 가사를 볼 것도 없이 첫사랑도 그렇게 찾아왔기에 묘한 동질감 같은 것을 느끼며 가사에 집중해 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이곡을 쓴 당대 최고의 작사가 중 하나였던, 박주연은 오래전 그날부터 사랑하는 이의 삶을 들여다본 듯 어쩜 그리 내 이야기 같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노랫말로 오롯이 옮겨 놓았을까 싶어 많은 위로를 받았었다.
난 오늘 첫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다행히 나의 첫사랑은 우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를 전화를 통해 친절하게 잘 설명해 주었고, 떠날 때까지도 나에게 뭔가를 일깨워 준 그녀의 결정을 난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난 그 결과를 충실히 받아들였었기에 지금의 아내를 만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 그것은 바로 '용기' 때문이었다. 난 그때 무슨 이유인지 고백할 용기가 없었다. 물론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군입대라는 거사(?)를 앞두고 있었기에 미안함이라는 이유로 위축되어 있었다. 그녀 앞에 설 자신이 없었다.
약속된 입영 날짜가 다가 올 수록 그녀의 진심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전화도 하지 않았고, 먼저 연락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때. 그녀는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그것도 오랜 시간을. 불행하게도 나는 그때 그녀의 곁에 없었고, 그녀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누군가 내 자리를 대신해 주었다. 그걸로 이미 게임은 끝이었지만, 그때는 옹졸한 마음에 연락을 왜 안 했냐고 화만 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누군가 그녀의 옆에 있었던 건 다행이고 고마운 일이었다...
앞서 살펴본 첫사랑 조사는 지금 즈음 첫사랑이 찾아오려는 사람에게는 절망적이기도 하겠다. 그러나 여기 희망적인 결과도 있다.
조사에 따르면, 첫사랑을 직접 고백한 사람은 전체의 1/4도 안된다는 것이다. 여러 난관과 이유가 있겠지만,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랑한다는 말조차 건네지 못했기때문인 점은 분명한 것이다.
그대! 첫사랑에 성공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용기를 내 고백해 보자. 물론, 때와 장소를 잘 가려서 말이다.
* 이 글을 읽고 지금 당신 곁에 있는, 혹은 같은 이불을 덮는 사람에게 첫사랑이 누구였냐는 뻔한 질문은 던지지 마시라. 분명 당신이 그 1%의 주인공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