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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편] 과거로의 여행

중국 광저우 여행

by 태국사는 한국아빠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보안 검색대를 지나 지하철 출구로 나왔다. 시끌벅적하고 요란한 지하철 내부와 완전히 대비되는 풍경이 펼쳐져 순간 발걸음을 멈췄다. 마치 노이즈 캔슬링 모드로 들어온 듯한 도심의 거리는 수많은 차들이 있음에도 신기할 만큼 조용했고, 오고 가는 거리의 사람들 소리만 낮춰진 볼륨으로 귓가에 스며들었다.


예약한 호텔로 가기 위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채우고 있었고, 바로 앞 학교에서는 체육시간인지 아이들의 함성소리가 저 멀리서 메아리쳐 왔다. 한쪽 골목에서는 아이와 아버지가 함께 줄넘기를 하며 놀고 있었고,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와 천진난만한 장난치는 소리가 가슴 한 켠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거리의 수많은 사람들은 차림새로 보아 평범한 주민들이 대부분이었다. 운동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건강한 모습, 길가에서 음식을 파는 아저씨의 정겨운 호객, 장 보러 나오신 아줌마의 분주한 발걸음, 달콤한 시간을 보내는 연인들의 속삭임, 귀가하는 학생들의 활기찬 모습, 깔깔거리며 뛰어노는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들... 그저 평범하고 평범했던 지난날의 한 켠을 몰래 훔쳐보는 듯했다.


낡은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고 사람들이 북적이며, 그 속을 오토바이가 휘젓고 다니는 다소 정신없는 곳이지만, 그 혼재 속에는 묘한 질서가 있었다. 그리고 그 질서 안에서 피어나는 여유와 편안함이 있었다. 마치 오랜 세월 쌓인 시간이 만들어낸 균형감 같은 것이었다.


잠깐의 골목을 지나 큰 대로로 나오니 앞서 본모습과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대도시의 위엄을 자랑하듯 솟아오른 고층 빌딩들과 화려한 쇼핑몰이 깨끗하고 세련된 도시의 풍경을 연출하며 눈을 사로잡았다. 대로를 가득 메운 수많은 차량들은 전기차로 전환되어 매연도 소음도 없어, 눈과 코와 귀가 받아들이는 현실과의 인지 부조화를 느끼며 잠시 어리둥절했다.


그때, 느닷없이 어릴 적 기억이 물밀듯 밀려왔다. 내가 자란 동네에도 어디를 가나 사람이 많았고, 북적거리고 왁자지껄한 풍경이 내 어린 시절의 일상이었다. 어머니의 따뜻한 손을 잡고 집을 나서면 여기저기서 정겨운 인사를 나누기 바빴고, 동네 사람들과의 끈끈한 왕래가 일상의 소중한 한 부분이었던 그때가, 잊고 있던 그때가 떠올랐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그 시절이 이곳에서 갑자기 그리워진다. 시간이 멈춘 듯한 이 거리에서 나는 잃어버린 내 어린 시절의 한 조각을 보았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 여행지의 첫인상 속에서, 나는 잠시 내 어린 시절의 소중했던 순간들을 다시 만났다.


그립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한 마음을 뒤로한 채, 나는 호텔 체크인 데스크로 향했다. 가슴 한켠에는 묘한 향수와 따뜻함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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