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낙원
처음 이곳을 여행했을 때는 정말이지 지상낙원인 줄 알았다. 한국의 반의 반값도 안 되는 가격으로 맛있는 밥을 배 터지게 먹으며 동남아 특유의 여유를 즐겼다. 그땐 하루 만원이면 남 부럽지 않았다. 매일 아침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쏟아지는 햇빛에 몸을 맡기면 몸 깊은 곳에서부터 따뜻한 에너지가 차오름을 느꼈다. 햇살은 피부를 뚫고 들어와 내 영혼까지 따뜻하게 데우는 듯했다.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에 책을 펼쳐 들며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오후를 만끽했다. 분주한 서울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여유로운 낮잠도 때로는 허락했다. 해가 질 무렵이면 이국적인 향신료가 가득한 저녁 식사를 즐기고, 저렴한 가격에 피로를 풀어주는 마사지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당시의 나는 이것이 영원할 것만 같았다.
또 다른 현실
이곳에 반해, 그리고 아내에게 반해 이곳으로 이주했다. 이곳에서의 삶이 또 다른 현실이 되자 여행지에서 산다는 것 글처럼 여행자 신분이었을 때는 느껴보지 못했던 불편함이 생겼다. 어쩌면 내가 그동안 느꼈던 것들은 여행자이기에 누렸던 특혜 같은 것이었을까? 짧은 여행 기간에는 보이지 않던 일상의 작은 틈새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생활비 중 식비가 싸서 매력적인 이곳은 반대로 말하면 식비 빼고는 모든 게 비쌌다. 한국은 공산품이 싸고 인건비가 비싼 반면에 이곳은 인건비가 싸고 공산품이 비싸니 장기 거주할수록, 살림살이가 늘어갈수록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거의 모든 것이 한국보다 비쌌다. 옷, 신발, 가구, 전자제품, 집… 같은 브랜드의 비슷한 제품들이 한국보다 가격이 높아 쉽게 손이 나가지 않았다.
한 번은 단순한 전기주전자를 사려다 가격에 놀라 발길을 돌린 적도 있었다. 서울에서라면 만 원 남짓이면 살 수 있는 제품이 여기서는 거의 세 배에 달했다. 그런 순간마다 '과연 이곳에서 사는 게 맞는 걸까'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불행 중 다행인 점은 그래도 경제적 여유만 된다면 한국에서 누리던 것들 모두 불편함 없이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백화점과 쇼핑몰엔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글로벌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고 특히 방콕은 서울보다 쇼핑에 진심인 것 같이 보인다. 화려한 불빛과 에어컨 바람이 가득한 쇼핑몰을 걷다 보면 잠시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잊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제품이 비싼 건 아니다. 지리적, 정치적으로 중국과 가까워 값싼 중국 제품들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들을 소비한다. 다만 퀄리티는 한국에서 보는 중국산 제품보다 훨씬 못한 경우가 많다. 처음엔 싼 값에 혹해 구매했던 물건들이 한 달도 못 가 고장 나는 경험을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싼 게 비지떡'이라는 한국 속담이 절로 이해가 되었다.
나는 외국인
여기서 나는 외국인이고 이방인이다. 태국인 아내와 결혼했음에도 매년 이민국에 가서 비자 연장을 한다. 두툼한 서류들을 준비해서 새벽같이 이민국으로 가 열리지 않은 문 앞에서 줄을 서야 한다. 이제는 서류 준비가 어렵지 않지만 하나라도 빠지면 바로 돌려보내는 이민국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비자를 포기하기도 한다.
처음 비자를 만들 때는 은행 계좌 잔고 증명서에서부터 결혼 증명서, 거주지 등록증, 실제 집에서 찍은 사진까지... 내가 실제로 이곳에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수많은 도장과 서류가 필요했다. 요구하는 서류도 많고 일처리도 느리고, 비자를 받은 후에도 신고할 게 투성이다. 90일마다 거주지를 재신고하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그냥 한국에 살았으면 이런 귀찮은 거 다 필요 없는데... 내가 있던 곳은 서류 발급은 주민센터에서 일사천리로 10분이면 다 되는 곳이었는데... 고국의 편리함이 그리워질 때면 아내의 미소가 나를 다시 현실로 데려온다. 그녀의 온기 속에서 나는 다시 이방인임을 잊는다.
한국인 프리미엄
저 멀리 경찰들이 보인다. 오토바이 헬멧 단속을 하는데 이미 도망가긴 글렀다. 항상 헬멧을 쓰는데 가까운 거리라 방심한 이때 어김없이 걸려버렸다. "헬멧 미착용. 벌금 500밧입니다."
경찰의 눈빛에는 외국인을 보는 특유의 빛이 있었다. 헬멧만 착용했다면 그냥 넘어갔을 텐데 헬멧을 빌미로 운전면허증, 차량 등록증, 보험 등록증까지 다 보여주고 그 자리에서 벌금을 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태국인은 헬멧 미착용 시 벌금 200밧이란다. 그리고 서양인은 1000밧. 한국인 프리미엄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다행히 요즘은 부패 경찰도 많이 사라지고 벌금도 정해진 금액을 투명하게 납부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외국인이라는 표식은 내 이마에 보이지 않게 붙어있는 듯하다.
관광지에서도 종종 한국인 프리미엄이 있다. 가격을 살짝 높게 부른다거나 하는 식인데 혹시 모를 위험(?) 때문에 나는 열심히 태국어를 구사한다. "라카 타오라이 크랍?" (가격이 얼마입니까?)라고 물으면 가끔 놀란 표정을 짓는 상인들을 보며 작은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아니면 아내를 앞세워 바가지를 피하고자 하는데 딱히 소용 있을까 싶기도 하다. 아내는 내 태국어 발음이 여전히 어색하다며 웃지만, 그래도 내가 이곳의 문화와 언어를 존중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대견해한다.
합리적인 사람
누구는 절대로 손해보지 않고 여행한다며 아등바등한다. 그랩 택시를 탈 때도 거스름돈 못 받을 수 있다며 1밧까지 준비하고 한국은 팁이 없는 문화라며 마사지 샵에서 단점만 언급하며 팁을 주지 않는다. 머릿속엔 항상 가격, 맛, 서비스, 제품 질을 비교하며 손해 보는 일은 절대 없다며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자신을 지칭한다.
한 번은 한국에서 온 지인과 함께 식사를 했는데, 그는 음식이 나오자마자 스마트폰을 꺼내 한국 가격과 비교하기 시작했다. "이거 한국에서는 만 원인데 여기선 삼천 원이네. 이득이다." 그의 여행은 마치 손익계산서를 작성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 생각할 때 비싸다고 생각이 들면 값을 지불할 때 매우 아까워했다.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과거의 나도 그랬을까? 모든 것을 돈의 가치로만 환산하려 했던 적이 있었을까? 이제 나는 안다. 삶의 가치는 숫자로만 측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특히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때로는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 더 큰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을.
가치 있는 삶
위의 예시들은 생활의 단편적인 부분들이지만 나는 이곳에서 한국인으로 그리고 이방인으로 분명 손해 보는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무엇이 그렇게 손해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오히려 마음이 놓인다. 표시된 가격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면 가치는 쉽게 보이지 않지만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의 가치에 집중한다면 나는 여전히 지상 낙원에 살고 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들어간 마사지 샵에서는 몸이 절로 풀리고, 숙련된 마사지사의 손길이 온몸의 피로를 풀어줄 때의 그 느낌은 가격으로 환산할 수 없다. 무더운 여름날 스마트폰으로 버튼만 몇 번 누르면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맛있는 밥이 배달된다. 한국에서는 맛볼 수 없는 신선한 열대과일들이 사계절 내내 식탁에 오르고, 아침 일찍 시장에 나가면 갓 수확한 채소와 허브의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일 년 내내 수영하며 여름을 즐길 수 있고 인프라가 잘 갖춰진 도시지만 자연과도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여유로움이 좋다. 삭막한 콘크리트 숲이 아닌, 푸르른 식물들이 자라나는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진다. 가끔은 갑자기 쏟아지는 스콜이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 후의 상쾌한 공기는 모든 불만을 씻어 내린다.
저녁이면 집 근처 골목길 노점에서 향긋한 음식 냄새가 풍겨오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진다. 바쁜 일상에 쫓기지 않고 잠시 멈춰 서서 이웃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여유가 있다. 한국에서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이웃과도 눈인사조차 나누지 않던 내가, 이제는 태국어로 안부를 묻고 그들의 일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이곳은 사랑하는 아내의 나라이고 곧 태어날 아이가 성장할 곳이다.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아내의 미소와 곧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면 모든 것이 감사함으로 가득 차오른다. 아이가 커가면서 두 나라의 문화를 모두 접하며 자라날 모습을 상상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어쩌면 진정한 부(富)는 계산기로 측정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손해를 감수하며 사는 이 삶 속에서 나는 매일 작은 행복들을 발견한다. 한국에서의 편리함과 익숙함을 뒤로하고 선택한 이 '손해 보는 삶'이 결국엔 내게 더 큰 가치를 선물했다. 손해 속에서 발견한 진짜 나의 행복, 그것이 바로 내가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