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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병원비를 깎다.

원하는 답을 듣기 위해 질문을 잘 해야...

by 최호진

나는 병원비 상세내역을 물어봤을 뿐이었다.


캐나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서 김호 작가의 <그렇게 물어보면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없습니다>라는 책을 읽었다. 책 첫머리에 나오는 작가의 경험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아내와의 여행을 준비했던 작가는 일정이 틀어지는 바람에 불가피하게 여행을 취소하게 된다. 여행을 못 가는 아쉬움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다른데 있었다. 기존에 예약한 호텔에, 취소 위약금으로 150만원이 넘는 금액을 지불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호텔 예약을 취소하면 위약금을 내야 한다는 규정을, 작가가 몰랐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생돈이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작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호텔 측에 연락을 취한다. 작가는 호텔측에 예약 취소에 따른 위약금을 감면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물어본다. 작가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상대방을 존중하며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호텔 측은 작가의 이야기를 받아들여 위약금 없이 예약을 취소시켜 준다.

작가는 본인의 경험담을 이야기 하며, 좋은 질문이 금전적인 이득을 가져온다는 이야기를 던져준다. 작가의 일화를 읽는 내내 나는 캐나다 병원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나 또한 좋은 질문 덕분에 병원비를 깎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자랑같은 이야기지만, 그래도 뻔뻔하게 그때의 이야기를 한 번 풀어볼까 한다.



수술이 끝나고 아들의 몸은 빠르게 회복됐다. 배가 아파 불편해 하던 아이는 꾸준히 병동 주변을 걸으며, 몸을 추스렸다. 음식을 먹으며 기력도 회복했다. 캐나다 병원이라 빵과 수프만 먹어야 했지만 그래도 아이는 잘 먹어 주었다. 아이가 회복하는 모습을 보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가 얼른 퇴원해서 예전처럼 신나게 뛰어 놀았으면 했다. 병원 입원실은 아이에게도 아빠에게도 너무 답답했다. 열심히 먹고, 열심히 걸어서 꼭 "목요일"에 퇴원하자고 아이와 약속했다. 목요일이면 수술한 지 이틀 후였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빨리 퇴원하고 싶었다.


아이가 빨리 퇴원했으면 하는 나의 마음은 아이의 건강만을 생각하는 "순수한" 마음만은 아니었다. 빨리 퇴원해서 병원비를 한 푼이라도 아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아픈 아이를 앞에 두고, 속물같은 생각이 들어 아이에게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루에 500만원 가까이 하는 입원비가 부담스럽게 다가왔으니까.

게다가 병원비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계산할 수 없다는 것도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의사도, 간호사도 병원비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병원비에 대해 물어보면, 원무과 직원과 직접 이야기 하라는 답만 들을 수 있었다.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의사나 간호사 소관 업무도 아니었다. 게다가 우리 아들같이 비보험 환자의 경우는 드문 케이스였다. 환자의 대부분은 캐나다 내 의료 보험 가입자였고, 그들은 병원비가 무료였다.

수술 직후, 혼자서 대충의 금액을 셈해 보았다. 응급실에 막 도착했을 때 안내 받았던 병원비 내역을 떠올렸다. 응급실 비용은 대충 천달러 정도였고, 입원비는 하루에 5천달러 정도 했다. 수술비도 4천 달러가 넘었다. 4일 입원한다고 생각하고 계산을 해보니 병원비는 3만 달러 가까이 나왔다. 원화로 이천오백만원 정도의 금액이 나왔다. 그나마 한국에서 여행자 보험을 가입해서 위안이 되었다. 2천만원 한도까지 병원비가 보장된 덕분에 오백만원 정도만 병원비로 내면 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아이가 수술을 잘 받아서 회복하고 있고, 보험금으로 2천만원이나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해야 하는 게 마땅했지만 생돈 오백만원을 병원비로 내야 한다는 게 아깝기도 했다.


수술 후 다음날 오전, 아이와 병동을 걷고 있는데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병원 원무과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담당자는 전화를 해서 아이 병원비를 정산해야 한다고 했다. 퇴원도 하지 않았는데 병원비를 이야기 한다는 게 뭔가 이상했다. 반갑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아이 병원비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 수 있어 좋을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많은 금액을 청구할까봐 무서웠다. 말이 잘 안통했기에 전화로 이야기 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 같았다. 직접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후에 원무과를 찾아가 담당자를 만났다. 담당자는 병원비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나에게 알려줬다. 이틀 동안 나온 병원비는 총 11,373달러였다. 생각보다 금액이 적었다. 응급실 비용이 1,077달러였고, 이틀동안의 입원비가 10,296달러였다. 수술비는 별도로 계산되지 않았다. 이래 저래 병원비와 관련해 궁금한 것들이 있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하나씩 물어봤다. 영어로 말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았기 때문에 최대한 겸손하게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병원비를 깎고 싶어 물어본 것이었지만 최대한 본심을 숨겼다. 괜히 깎아 달라고 하면 반감을 살까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우선 수술비가 빠진 부분에 대해서 먼저 물었다.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수술비는 입원비에 포함되어 별도로 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맨 처음 응급실에 왔을 때 봤던 수술비는 입원하지 않고 수술만 하고 가는 경우에 내는 비용이라고 했다. 계산한 것보다 4백만원 정도 금액이 작아졌다.

번째로 궁금한 것은 응급실 비용이었다. 우리 아들은 두 군데 병원의 응급실을 이용했다. 첫번째 병원 응급실에서 검사를 받았지만 그곳에서 어린이 수술을 할 수 없다고 해서 어린이 전문병원으로 옮겨야 했다. 응급실 비용을 두 군데서 낸다는 게 조금 억울했다. 우리가 옮기고 싶어서 옮겼던 것도 아니었다. 담당자에게 관련한 내용을 이야기 하고, 응급실 비용을 한 군데서만 낼 수 있는 방법이 없냐고 물었다. 담당자는 여기 저기 전화를 하더니 관련 사항을 확인했다. 한참 동안 통화를 한 담당자는 병원 한 군데에서만 응급실 비용을 청구하는 게 맞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있었던 첫번째 병원 담당자에게 확인 전화를 걸었고, 그곳에서 별도로 청구할 예정이기 때문에 아이가 입원한 병원에서는 별도로 응급실 비용을 청구하지 않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입원비에 대해 궁금한 점에 대해서도 물었다. 아이는 응급실에서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입원실로 올라갔다. 하루치 입원비를 다 내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한 두 푼도 아니고 5,000달러가 넘었으니 속이 쓰릴 수 밖에 없었다. 담당자에게 혹시나 저녁 늦게 입원한 것에 대해 입원비를 깎을 수 있는지를 물어봤다. 담당자는 기록지를 찾아보더니 우리가 입원한 시각이 저녁 6시라고 했다. 뭔가 기록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직감한 나는 6시는 응급실에 온 시간이며 11시에 병실에 갔다고 이야기 했다. 담당자는 다시 전화를 하더니 정확한 기록을 확인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고 야간 입원에 대한 별도의 요금을 적용해 주었다. 5,148달러의 하루치 입원비를 1,077달러로 바꿔줬다.


원래 나왔던 11,373달러의 입원비가 6,255달러로 줄었다.


마지막으로 입원비를 산정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정확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퇴원한 날의 입원비는 따로 받지 않는다고 했다. 월요일에 입원해서 목요일에 퇴원하면 월,화,수 삼일치의 입원비만 받는다고 했다. 호텔처럼 박당 요금을 적용했다.목요일에 퇴원하든, 금요일에 퇴원하든 병원비가 2천만원이 채 안된다는 계산이 나왔다. 입원비 산정 방식에 대한 이야기까지 들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여행자 보험으로도 충분히 커버가 되는 금액이었다. 생돈 5백만원이 안나가도 됐다.


일부라도 결제해야 한다는 담당자의 이야기에 2000달러를 우선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다시 아이가 있는 병실로 걸어갔다. 뭔가 큰 짐을 던 기분이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나도 모르게 콧노래도 나왔다. 이젠 정말 아이 건강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 감사했다.




“질문은 궁금한 것을 묻는 목적 뿐 아니라 때론 관계 (직원과 손님 간의 관계)를개선하고, 원하는 기회 (좀 더 물건을 싸게 사거나 위약금을 줄이는 것)를 얻도록 도와주기도 합니다. 질문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여러 가지 혜택을 생각해보면, 질문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우리는 목적을 달성할 수도 있고, 그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무작정 “값 좀 깎아주시면 안 돼요?”라거나 “위약금을 면제해주시면 안돼요?”라고 묻지 마시길. 그렇게 물어보면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김호, 그렇게 물어보면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없습니다 중>


사실 나는 아이의 병원비를 깎아 달라고, 병원측에 부탁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적용받는 금액이 정확한 기준인 것인지 확인했고, 예외 조항이 없는지 물었을 뿐이었다. 어눌한 영어 덕분에 최대한 겸손하게 물어볼 수 있었다. 나의 그런 질문 덕분에 나는 상당 부분의 병원비를 아낄 수 있었다.


<그렇게 물어보면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없습니다>에서 작가의 호텔 취소 위약금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때 생각이 나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캐나다에서 병원비를 깎았던 내가 멋져 보였다.


아이는 우리의 바람대로 빨리 회복했고, 목요일에 퇴원할 수 있었다. 이런 저런 비용까지 합쳐서 총 1만 3천달러 정도의 비용이 들었다. 아이가 무사히 퇴원할 수 있어서, 병원비도 여행자 보험으로 보상받을 수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그리고 좋은 질문이 일상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어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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