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호진 Jan 12. 2019

두 아이 아빠, 휴직원을 제출하다.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진짜 나를 찾고 싶었다.


한 회사에서 14년을 일했다. 그리고 15년째 되는 해 휴직을 신청했다. 두 아이 아빠이자 한 여자의 남편으로 무책임한 선택이었다. 돈을 벌어야 하는 아내에게 미안했지만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서라도 회사를 꾸역꾸역 다니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즐겁고 힘찬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내 꿈을 찾아서 새로운 일을 모색해 보는 것이 아이들에게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무책임하고, 이기적이게 나는 휴직원을 냈다.




남자의 휴직, 두려움이 컸다.


2018년 12월 31일. 오후 5시 30분 드디어 부장에게 휴직원 싸인을 받았다. 그리고 곧장 인사부에 휴직원을 제출했다. 그리고 1월 17일부터 휴직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 발령 문서가 뜬건 아니지만 휴직은 기정 사실이 되었다.


휴직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동안 그리고 팀장, 부장에게 말하는 순간까지도 내 선택에 확신이 없었다. 회사에서 휴직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휴직을 1년 한다는 말은 승진에서 2년~ 3년 누락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가계 경제에 대한 부담도 생각해야 했다. 맞벌이로 살면서 여유롭게 살았던 가계경제도 이제는 긴축 재정을 해야 했다.


하지만 휴직하겠다고 말을 뱉어내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미 더이상 거스를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고 하니 후련한 기분도 들었다. 식도에 꽉 막혔던 음식물들이 사이다 한잔에, 트림 한번으로 뻥 뚫린 느낌이었다.


이제 1년 반동안 자유의 몸이 되는구나.



휴직은 충동적이었다.


웃긴 이야기지만 휴직은 생애 첫 일탈이었다. 나름 처음으로 다른 길을 가보는 것이다. 정해진 수순대로 인생을 살아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학에 곧바로 들어갔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직장에 들어갔다. 남들보다 빨리 결혼도 했고 아이들도 낳고 경제적으로도 부모님 도움 없이 그럭저럭 살 수 있었다. 직장생활도 나쁘진 않았다. 탁월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승진도 때에 맞춰 했고, 적당히 인정도 받았었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내게 휴직은 다소 충동적이었다. 후배의 말 한마디가 자가발전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회사의 조직 개편과 맞물려 여러 변화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돌았다. 너무 혼란스러운 상황에 친한 후배 하나가 휴직까지도 생각한다는 말이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후배의 휴직 이야기에 나도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가 힘들다 힘들다고 생각만 해왔는데 이번 기회에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40이 되기 전에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는 시간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2018년 일년 내내 옆에서 힘들어 하는 나를 바라보던 아내의 부추김도 있었다. 본인이 가장으로 살아가겠다고(그 전에도 가장이긴 했다) 선언하며 진짜 내가 하고 싶은것을 해보라는 이야기도 했다. 회사라는 공간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서,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 아둥바둥 사는 게 안쓰러웠나보다. (이렇게 말하면 다들 나보다 우리 아내를 만나보고 싶다고 한다. 아내가 대단한 사람이긴 한가보다. 왜 난 쓸데 없이 이런 데 질투를 하는거지?)



휴직하면 뭐할꺼에요?



요즘 사람들에게 나의 휴직 이야기를 하면 가장 먼저 물어보는 질문이 휴직하고 나서 뭐 할 거냐는 것이다. 충동적인 결정이어서 그런지 휴직하고 나서 무엇을 할 지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막연하게나마 많은 것들을 내려놓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내가 진짜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찾아볼 것이다.


우선 공부를 좀 더 해볼 생각이다. 그렇다고 학교를 다니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세상의 틀에 맞춰진 남들에게 보여주는 학위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내가 진짜 즐거워서 하는 공부의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다. 그게 나에게 진짜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그런 학습을 말이다. 가슴 떨리는 것들을 배워보고 싶다.


글쓰는 일도 계속 할 생각이다. 재작년부터 꾸준히 써온 블로그가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느낌이다. 내가 가진 경험과 지식을 남들에게 전달하는 것 자체가 즐겁다. 글을 잘 쓰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어느 정도 털어버렸다. 내 진심을 전달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글쓰기 기교가 필요 없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부담없이 긍정적인 아우라를 끼치는 그런 글을 써보고 싶다.


특히 휴직한 만큼 휴직 일상에 대해 연재해서 글을 써볼까 생각중이다. 내가 가진 생각과 경험을 진솔하게 공유해볼 생각이다. 이 연재가 해피엔딩이 될지, 새드 엔딩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1년 반이 지나 2020년 복직할 때가 되면 나는 후회할 지도 모른다. 아니 후회할 것이다. 적어도 회사생활에서는 후회할 게 불보듯 뻔하다.


하지만 나의 인생에서는 후회하는 선택이 안되고 싶다. 하루 하루가 너무 소중해서 지나가는 게 아쉬운 시간들로 맞이하고 싶다. 회사 가기 싫어 죽겠는 아침이 아니라 너무나 가슴 떨리는 하루 하루를 만들어보고 싶다. 내가 가진 것들을 많이 내려놓고 진짜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몸으로 보여주는 아빠가 그리고 남편이 되고 싶다. 사회적인 성공을 바라는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꼭 주어진 길대로 가는 것만이 성공이 아니란 것도 보여주고 싶다.


열심히 살 거다. 나를 위해서 말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