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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진 Jan 19. 2019

나는 왜 휴직을 선택했을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


휴직을 선택했고, 드디어 인사발령 문서도 나왔다. 이제는 정말 휴직을 하게 됐다. 더이상 거스를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불안감과 걱정이 기대감으로 바뀌고 있다. 어떤 재미난 일들이 벌어질까하며 설레는 중이다. 하루 하루 소중한 시간들을 어떻게 가치있게 보내는 게 현명할 지 생각하고 있다.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한 발자국씩 나아가는 휴직기간을 보내고 싶다.


앞으로 어떻게 휴직을 보내면 좋을지 고민하다 보니 내가 왜 휴직을 선택하게 됐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보게됐다.






나의 꿈은 은행원은 아니었다.


2005년 1월 3일, 국내의 한 은행에 취직했다. 어려운 취직 문을 뚫고 유일하게 붙은 회사이기도 했다. 면접하며 지켜본 회사는 꽤 괜찮았다. 물론 20대 중반에 세상 물정 모르는 대학 졸업 예정자의 눈이긴 했지만 면접을 지원해주는 은행 직원들도 멋져보였다. 나름 연봉도 높고, 복지도 좋다는데 좋은 직장같았다. 그리고 선택하고 말고의 문제도 아니었다. 갈 데가 없었다. 취업 재수생으로 살기 싫음 은행에 들어가야 했다.


그렇게 나는 은행에 들어가게 됐다.


은행은 좋은 직장인 건 확실했다. 은행원이 좋은 직업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원래 나는 은행원이 되는 게 꿈은 아니었다. 나의 원래 꿈은 아나운서였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 앞에 나서서 발표하는 것을 좋아했다. 나름 "관종"이었던 나는 방송에 나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을 지탱해 온 것도 아나운서라는 꿈이었다. 열심히 공부했고 나름(!) 많은 노력도 했다. 하지만 아나운서에 보기좋게 낙방했다. 내가 아나운서가 되기엔 역량이 또는 외모가 부족했었나보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아니운서에 떨어지고 나서곧장 취업에 도전했다. 그리고 운좋게 취업에 성공했다.


그땐 왜 그렇게 쉽게 꿈을 포기했는지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냥 은행원으로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오랫동안 꿈꿔왔던 직업이었지만 그게 쉽지는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컸던 거 같다.


내가 먹을 수 없는 “신포도” 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럭저럭 재미도 있었다.



은행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나름 일을 하면서 보람도 느꼈고 조직에서의 인정도 받을 수 있었다. 꽉 막힌 조직도 아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나를 많이 존중해주기도 했다. 탄탄대로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직에서 정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나름 혜택도 많이 봤다. 회사에서 두달동안 보내주는 해외 연수도 다녀올 수 있었고, 원하는 부서에서 재미나게 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점점 더 일을 하면 할 수록, 나 자신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고민은 회사 밖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부터 더욱 커져갔다.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무엇인가?


회사 사람들을 만날 때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회사 밖 사람들을 만나면서 새삼 느끼게 됐다. 회사 생활을 하면 할 수록 챗바퀴 굴러가듯 굴러가는 삶에 회의감이 들었다. 특히 내가 생각보다 보잘 것 없는 사람 같았다.


우연한 기회에 스타트업 대표들을 알게 됐다. 그들은 하루 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엔 생기가 돌았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느껴지지 않는 열정이 보였다. 꿈도 느껴졌다.


하지만 더욱 안타까웠던 건 그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니 내가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점이었다. 회사를 14년이나 다녔는데 그들에게 조언해줄 만큼 나만의 전문분야도 없었다.


나름 회사에선 누구보다 일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패를 까고 보니 내가 금융인의 입장에서 이야기해 줄 게 없다는 게 속상했다.



나의 전문분야를 찾아보기 위해 이력서도 써봤다. 이직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내 직장생활을 정리한다는 의미가 컸다. 하지만 이력서에 뭐라고 쓸 만한 게 없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었다.


갑자기 회사생활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회의감이 들었다. 그냥 하루 하루 출근시간이 되면 출근하고 퇴근시간이 되면 퇴근하는 삶을 살았다. 쳇바퀴 굴러가듯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았다.



얼마전 읽었던 <미라클 모닝>의 한 구절이 딱 나의 모습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삶의 목표를 분명하게 말하지 못한다. 매일 아침 그들을 눈뜨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강력한 이유 말이다.

사람들은 하루를 버텨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어려움이 가장 적을 것 같은 길을 택한다. 나를 성장하게 하는 고통과 불편을 회피하고 찰나의 즐거움을 추구한다.

나는 나의 가능성을 완전히 불태운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가?  <미라클 모닝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내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버렸다. 2017년 1월 추운 어느 겨울날, 회사(이땐 카드사 직원이었다)의 사장, 임원, 부장들이 워크숍을 진행하는 자리에서 말이다.


워크숍 중간에 우리 팀이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름 몇 주간 준비한 발표였기에 최선을 다 해 발표를 했다. 팀원 한 명 한 명이 순서대로 발표를 했고 내 순서가 마지막이었다. 정말 재미나게 발표를 마쳤고 오신 분들의 반응도 좋았다.


너무 즐겁게 발표를 마치고, 한참 뒤 발표를 같이 했던 회사 동료가 내게 한마디 말을 건넸다.


너는 발표를 즐기면서 하더라. 발표를 하는 내내 너무 행복한 표정이었어.


한동안 이 말이 자꾸 머리에 뱅뱅 돌았다.




제일 잘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제일 행복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 후로도 몇 번의 발표기회가 더 생겼다. 물론 모든 발표가 성공적이지는 않았지만 발표를 즐겼다. 남들에게 내가 가진 것을 보여주는 게 너무 좋았다.


점점 더 내 안의 욕망이 끓어 오르는 게 느껴졌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끝까지 나는 과감하진 못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말 하는 것을 업으로 삼아보고 싶었다. 물론 아직 그 방법을 잘 알진 못한다. 하지만 뭔가 계속 부딪혀보고, 생각하다보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지난 1년 반동안 정기적으로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나름 글을 쓰는 일도 즐기게 됐다. 내가 글을 잘 쓰는지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점점 더 글을 쓰는 게 편안해지는 걸 보면 글이 좋아지는 거 같긴 하다. 글을 쓰는 일과 말을 하는 일이 맞닿아 있다는 강원국 작가의 이야기도 생각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곧장 퇴사하기는 두려웠다. 황량한 사막을 혼자 헤쳐나가는 건 무서웠다. 무턱대고 퇴사를 하기에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너무 무책임한 거 같았다. 


그래서 조금만 무책임해지기로 했다. 회사에서 휴직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기에 휴직을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게 내가 휴직을 신청하게 된 이유다. 




회사가 싫었던 것도 회사를 그만 두는 데 큰 몫을 하긴 했다. 회사의 부장, 임원들이 점점 더 괴물이 되어 가는 거 같았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그런 모습으로 변해갈까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내가 휴직을 선택한 이유는 오롯이 "나를 위한 삶"을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당장은 아이들에게 경제적으로 불편함을 줄 수도 있다. 아내는 이제 집안의 가장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을 지어줬다. 하지만 내가 내 꿈을 위해 다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아내와 아이들에게 떳떳한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즐거워하는 일을 하면서 충분히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휴직일기를 본격적으로 쓰기에 앞서 내가 왜 휴직을 해야 하는지를 꼭 밝히고 싶었다.


나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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