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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진 May 06. 2020

부모님께 휴직을 말하지 않는 게 효도라 생각했다.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 될 때도 있으니

오랜만에 찾아 뵌 부모님


어버이날을 맞아 부모님 댁에 다녀왔다. 사회적 거리 유지기간이라 이동이 다소 부담되긴 했지만 지난 3 어머니 생신 때도 찾아뵙지도 못한데다 지금이 아니면 한동안 부모님께 가지 않을  같아 조심하며 다녀왔다. 가는 길에 휴게소도 안들르고 원스탑으로 차를 몰았고, 부모님이 계시는 전주에 가서도 식당에서 식사는 가급적 삼갔다. 전주는 코로나 환자가 거의 나오지 않는 나름의 청정구역이었지만 조심해서 나쁠  없었으니.


야외활동은 괜찮을  하여 부모님을 모시고 순창에 있는 강천산에 다녀왔다. 매년 이맘 때쯤 들르는 산이었다. 아이들이 가기에 적당한 산인데다, 중간에 "흔들다리"도 있어 스릴을 즐기는 우리 아이들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선선한 봄바람까지 어우러져 산책을 제대로 즐길  있었다. 간만에 콧바람에 흥이 났다. 아이들은 조금 힘들어 하는  같기도 했지만. 

순창에 있는 강천산에 들른 것은  산이 좋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근처에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찾아 뵈었.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내가 왔다 갔다는 것을 하늘나라에서 보고 계실지는   없지만, 인사를 드리는 동안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어릴적 추억을 떠올릴  있었다. 새삼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리웠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께서 아이들에게 하듯이 할아버지, 할머니도 살아계셨을    예뻐하셨는데...


간만에 하는 나들이라 그런지 너무나 평화로웠다. 모든 게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편안하고 즐거운 나들이었다. 아이들도 간만에 뵙는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시간을 즐겼다. 부모님도 오랜만에 보는 아들내외와 손주녀석들과의 나들이가 꽤나 즐거우신 듯 했다. 부모님의 품이 이토록 따뜻하다는 것을 오랜만에 느낄 수 있는 나들이었다. 


최인철 교수가 강조한 "쾌족"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쾌족은 글자 그대로 '기분이 상쾌하고 자기 삶에 만족'하는 심리상태를 지칭한다. 행복이라는 단어보다 훨씬 더 정확하고 직접적으로 행복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굿 라이프 중에서>


지금 내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지금의 소소한 순간이 바로 쾌족의 순간이고 행복의 찰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잘 다니는 것 맞냐?


강천산에 오를 때였다. 아내와 아버지께서 앞장을 서고 나와 어머니 그리고 아이들이 뒤에서 따라갈  아버지와 아내는 이런 저런 이야길 나눴다. 그리고 서울에 오는  아내로부터 아버지와 나눈 이야기를 전해 들을  있었다.


호진이 회사는 뭔 휴가가 그리 많냐? 회사 그만 둔 건 아닌가 걱정했다.


작년 여름 아이들과 캐나다에 다녀오면서  부모님께 안식년 휴가를   얻어서 길게 캐나다 여행을 갈 수 있다고 둘러댔다. 괜히 휴직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가 부모님이 걱정하실  불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부모님은 그게 자꾸 걱정이 되신 듯 했다. 휴가는 거짓이고 회사를 그만 둔 건 아닌가 싶었나 보다. 아들에게 이야기 하면 짜증을 낼 게 뻔하다고 생각하셨는지 애먼 며느리에게 하소연을 하신 듯 했다. 다행히 지금은 아들의 상태에 대해 의심하시는 것 같지는 않았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부모님께 나의 휴직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은 것은 정말이지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 될 때도 있다는데, 부모님께서는 지금의 내 상황을 모르시는 게 두 분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좋을 듯 싶었다. 부모님은 항상 자식을 걱정하시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하시니 말이다. 


이제는 부모님께 휴직에 대해 고백해도 되지 않을까 잠시 고민도 했었는데, 덕분에 다시 그 마음을 쏙 집어 넣을 수 있었다. 



내가 이순신 장군도 아니지만


"내 죽음을 적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시며 장렬히 전사하신 이순신 장군같은 비장한 마음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내 휴직을 부모님께 알리지 않고 지내는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가려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서 이미 아시고 있는데 내게 모르는 체 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게 바로 부모님의 행복을 지켜드리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부모님에게는 아들 내외가 착실히 회사 다니면서 아이들 잘 키우며 사는 게 제일일테니. 


애써 변명해보련다. 이게 바로 부모님께 내가 할 수 있는 효도라고 말이다. 그 속에서 나의 행복도 찾고 부모님의 행복도 지켜드리려는 일이라고 말이다. 굳이 사실을 들춰내어 서로의 평화를 깨뜨릴 필요는 없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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