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김민식 PD님의 신간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 가 나왔다. 책 제목만큼이나 표지가 인상적인 책이었다. 역시 PD님의 책은 흡입력이 상당했다. 앉은 자리에서 휘리릭 읽어버렸다. MBC를 사랑했던 (지금도 사랑하지만) 과거도 떠올랐고, 안타까운 순간들도 떠올랐다. PD님의 흥미로운 투쟁사도 책의 재미요소였다.
하지만 뭔가 아쉬웠다. 그간 PD님의 책이 나올 때마다 그의 강의를 통해 책을 다시 정리하곤 했었는데,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오프라인 강의가 모조리 취소됐던 것. 그나마 세바시를 통해 온라인 북토크를 들었지만 그것 또한 뭔가 아쉬운 구석이 있었다. PD님의 강의는 현장에서 들어야 그의 특유의 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데 말이다.
다행히 지난 5월 27일 광화문 북바이북에서 조심스럽게 그의 강의가 진행됐다. 평소의 반 밖에 안되는 50명만 모아, 청중들의 자리를 띄워 놓은, 생활속 거리두기를 실천한 강의였다. 공지가 올라오자마자 반가운 마음에 후다닥 신청했고, 덕분에 현장에서 그의 에너지를 느끼고 그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그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이날 강의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꽤 조심스레 진행됐다. 열체크를 하고, 손소독까지 한 후 입장이 가능했고 모두들 마스크를 쓰고 강의를 들었다. PD님도 마찬가지셨다. 조심하시는 게 눈에 띄었다. 강의가 시작되자마자 그는 그동안 썼던 마스크를 벗고 새로운 마스크를 쓰고 강의를 진행하셨다. 마트 시식용 마스크를 검색해 사왔다는 그의 모습을 보니 최근 MBC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치킨을 만드는 유재석씨가 생각날 정도.
이미 다섯 번도 넘게 그의 강의를 들었지만 이번 강의 또한 좋았다. 그동안의 강의와 다른 내용이었다. 매번 이야깃거리가 나온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새로운 이야기로 나를 사로잡았다. 그의 고민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덕분에 배운 것도 많았고.
이번 강의에서 나는 PD님만의 싸움의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전수받은 기술은 여러가지 있었지만 그 중 다섯가지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1. 생각이 너무 많아지면 안된다.
김민식 PD를 퇴진요정으로 불리게 만든 사건이 있다. MBC 사옥에서 사장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며 페이스북 라이브를 했던 게 그 사건이었다.
"김장겸은 물러나라"
결국 그의 외침 덕분에 사장은 교체됐다. 하지만 이날 강의에서 그가 그렇게 외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바로, 별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언론개혁이니 검찰개혁이니 그런 큰 주제에 대해서 그가 고민했다면 무모한 행동을 그것도 MBC 사옥 안에서 행할 수 없었다고 했다. 다만 김장겸 사장이 그동안 자기에게 했던 행동에 대해 응징하고 싶었기에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다고 했다.
굳이 싸움을 하면서 자기가 모든 문제에 답변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자신을 괴물로 만드는 것이라며,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집중해서 싸워야 한다고 했다.
2. 에너지를 아끼는 Tit for Tat 전략
"죄수의 딜레마"를 언급하며 그가 생각하는 싸움의 기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상대방이 협력을 하면 우리도 협력해야 하지만, 상대방이 배신을 하면 우리도 역시 배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을 써야 한다고 했다. 책에서는 이를 Tit for Tat 전략으로 설명한다.
상대의 배신에 무조건적으로 협력만 계속하면 나는 '호구'가 되고, 상대방은 배신을 밥 먹듯 하는 승자가 된다. 이기적인 배신자를 승자로 만들면 주위에 악영향을 끼친다.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 중에서>
하지만 이날 그는 진정한 배신의 방법을 우리에게 들려줬다. 상대방이 배신할 때마다 매번 배신하는 것은 자신의 에너지를 갉아먹는 일이라며 경계했다. 다만 딱 한 번의 기회가 왔을 때 그 때 제대로 배신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늘 Yes를 외치다가 딱 한 번 싸우는 게 제일 효과적이라고 했다. 강력한 한방이 몇 번의 잽보다 훨씬 세니까.
3. 싸움에 임하는 나의 태도에 대해 글로 정리하라
세 번째로 싸움을 잘 하기 위해 글을 써야 한다고 했다. 그는 싸움은 명명백백하게 한 쪽의 잘못이 있는 경우는 없다고 했다. 내가 봤을 때 상대방의 잘못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나의 잘못으로 보일 수 있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잘못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을 넘어 그것에 대해 내 생각을 정리함으로써 “나의 싸움”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을 써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서 그 판에서 내가 왜 싸워야 하는지를 찾아가는 게 필요하다. 글이 싸움에 임하는 나의 태도를 만들게 된다. 앞으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길이 되기도 한다.
4. 든든한 빽이 있어야 한다.
김민식 PD는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에게 "통역사"라는 타이틀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회사를 그만둔다 하더라도 먹고 사는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었기에 더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다고 이야기 했다.
강상중 교수의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에 읽었던 내용이 떠올랐다.
중압감에 짓눌리지 않기 위한 처방전은 없을까요? 있습니다. 그 처방은 바로 하나의 영역에 자신을 100퍼센트 맡기지 않겠다는 태도입니다. 일에 임하는 자세도 그렇고, 삶의 방식도 그렇습니다. 하나의 일에 전부를 쏟아 붓지 않는 것, 스스로를 궁지로 내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중에서>
과거는 한 우물만 파는 것이 미덕인 세상이었다면 지금은 그렇지 않은 세상이다. 대안을 갖고 있는 것이 자신을 더 당당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었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되, 당당해지기 위해서는 거기에 너무 목맬 필요는 없다는 게 키 포인트였다.
5. 싸움판에 들어갔다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인정하라
마지막으로 그는 어쩔 수 없이 싸움판에 들어갔다면 그 상황을 피하려 하기 보다는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싸움판에 들어갔던 것은 그의 친구였던 이용마 기자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싸움판에 막 들어갔을 때에는 자신의 싸움에 대해 혼란스러웠다고 했다. 여기는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여러 번 고민했다고.
하지만 그는 그 싸움에서 최선을 다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싸웠다. 기왕 판에 들어온 이상 열심히 해보자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고. 그러면서 그는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목표한 대로 사는 게 행복이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내게 주어진 것에 대해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바로 행복이라고 했다. 마치 그가 어쩔 수 없이 싸움판에 들어갔지만 그 속에서 제대로 싸워 오늘의 “김민식”이 나올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는 그가 책을 쓴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했다.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저 열심히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MBC 투쟁사에 대해 써보라는 제안을 처음 들었을 때 그는 힘든 기억을 소환하는 게 싫었기에 거절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7년간의 투쟁에 대해 마무리 해보고 싶었기에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힘들게 싸우고도 즐겁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게 사람들에게 싸우는 게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있는 것이라는 걸 알리는 길이라고.
덕분에 나도 잘 싸울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이 생겼다. 아직 실전에서 싸움의 기술을 적용해 보진 못했지만 그가 이야기 한 것은 하나씩 곱씹어 보면서 싸우면 충분히 그 싸움의 결과물을 즐겁고 행복한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갖게 됐다.
한편, 이날 뜻밖의 선물도 받았다. 내가 쓰고 있는 책의 일부를 강의 중 발췌하여 소개해주신 것. 너무 떨려서 작가님께서 뭐라 하셨는지 정확히 듣지 못했지만(죄송합니다) 크나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추천사도 감동이었는데....
항상 좋은 가르침을 주시는 닮고 싶은 분에게 선물까지 받은 최고의 시간이었다. 이러니 내가 피디님을 좋아하고 따를 수 밖에!
더 열심히 싸우며 가르침을 따라가겠습니다. 좋은 책과 강의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