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적의 타이밍은 어쩌면 바로 지금일지도 모른다.
대학교 2학년 때 일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함께했던 친구가 서울로 삼수를 하러 왔다. 친구는 3개월동안 집중적으로 수학 공부를 해보겠다고 노량진 고시원에 자리를 잡았다. 친구가 올라온다니 반가웠다. 친구의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만나서 “놀면”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 당시 참 바빴다. 연애도 해야 했고, 학교 수업도 들어야 했고, 동아리 활동도 해야 했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길거리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전달하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나 다시 전주로 돌아간다"
급작스런 친구의 문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빨리 집으로 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조금은 아쉬웠지만 그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말았다. 친구는 몇번의 실패를 한 끝에 대학에 갔다. 그리고 한참 뒤에 친구는 웃으며 그때, 노량진에서 보냈던 몇개월에 대한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었다.
창문도 하나 없는 고시원에 생활이 힘들었었다고 한다. 하루는 치킨이 너무 먹고 싶었었다. 치킨집 치킨을 먹기는 양이 너무 많았기에, 고민 끝에 친구는 KFC치킨을 사먹었다. 혼자서 KFC 매장에서 먹을 용기가 없었던 어린 21살의 친구는, 어쩔 수 없이 고시원에 치킨을 싸들고와서 먹었다고 한다. 외로웠지만 맛있게 치킨을 먹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 창문하나 없는 고시원 방에 배인 치킨 냄새가 빠지지 않았던 것. 며칠동안 치킨냄새 배인 방에서 지냈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보낼 이유를 찾지 못한 친구는 계획보다 빨리 집으로 돌아갔다.
웃으며 옛날 이야기를 하는 친구를 보며 나는 불편한 감정을 숨기기 어려웠다. 친구에게 제 때 찾아가지 못해준 게 많이 미안했다. 진짜 바빴던 것도 아니면서 바쁜 척 한 것 같은 내가 한심해 보이기도 했다.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자주 찾아갔으면 어땠을까? 그의 대학이 달라졌을 수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뭐가 됐든 그때를 좋은 시절로 기억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시의적절하게 찾아가기만 했었더라도 좋았을텐데 안타까웠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사람 사이에도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회사에서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볼 때가 있다. 상사가 기분이 좋은지 안좋은지에 따라 보고를 할 시간을 맞춘다. 아내에게도 "잘못"을 고백할 때면 적절한 시간을 따져보곤 한다. 말해도 혼나지 않을 시간을 말이다. 뭐든 분위기를 잘 보고 해야 탈이 없고 원하는 바를 쟁취할 수 있다. 생활 곳곳에서 "타이밍"을 잘 맞추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지기도 한다.
타이밍은 인간관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투자를 할 때도 의사결정을 할 때도 적절한 타이밍은 중요하다. 얼마전까지 부동산 상승기에 투자를 한 사람들은 투자의 적절한 시기를 잘 선택한 결과이기도 했다. 직장도 직업도 타이밍을 잘 잡아야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인생에서 타이밍은 중요하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배우자가 달라지기도 하고, 직장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리고 돈을 벌 수도, 왕창 잃을 수도 있다.
타이밍을 잘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언제나 타이밍만 바라볼 수는 없는 노릇이기는 하다. 내가 원하는 타이밍이 쉴새 없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기도 하다. 그렇기에 내가 적절한 타이밍을 만들어 가는 것 또한 필요하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좋은 기운을 우리에게 적절한 타이밍을 불러오기도 한다. <청소력>의 저자인 마쓰다 미쓰히로는 이를 "자장"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청소를 통해 좋은 기운을 불러 올 수 있다는 이야기였는데, 굳이 청소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노력하기에 따라서 좋은 자장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운빨이라고 가치폄하하는 게 속은 편하지만, 부동산 투자를 통해 돈을 벌었던 사람들도 오랫동안의 쌓아온 투자지식이 있었기에 대세 상승기라는 타이밍을 잘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타이밍을 기다리는 것 못지 않게 찾아가는 것도 필요하다.
갑자기 타이밍이라는 이야기를 들먹이는 것은 휴직에도 적절한 타이밍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회사의 상황에 따라 휴직 신청이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안받을여지기도 하지만 그걸 떠나 개인에게 적절한 시기를 맞추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누누이 말했지만 다소 충동적이었던 휴직이었기에 나는 적절한 휴직 타이밍을 계산해서, 맞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휴직을 하고 몇 달이 지난 후에 나에게 이번 휴직은 적절한 타이밍이었다는 판단이 들었다. 적어도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이 소중하고 매일 매일이 즐겁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적절한 타이밍에는 휴직 전부터 군불을 떼우듯이 하나씩 준비했던 것도 크게 영향을 주었다.
휴직을 하기 전부터 나는 블로그를 하며 세상과 소통하며 나의 생각을 드러내곤 했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추억을 기록하고 싶다고 시작한 블로그였지만 3년 넘게 블로그에 기록을 하다보니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익숙해졌다. 블로그란 공간 속에서 매일 매일 나를 관찰했고, 나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었던 것이 휴직기간 동안에도 나를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힘이 되는 것 같았다.
1,2년전부터 읽던 책들도 도움이 되었다. 책을 거의 읽어본 적이 없던 내가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었다. 좋아하는 작가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들처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불안하다는 생각을 접고 새로운 도전을 해보는 것도 필요해 보였다. 비극이라고 생각되던 순간에 희극을 접할 수도 있다는 판단도 들었다. 회사 밖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한 것도 도움이 됐다. 항상 우물안 개구리로만 살아왔고, 그런게 편했었다. 회사 밖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소 불편할 때도 있었지만 그들 덕분에 그동안 숨겨왔던 "성장"의 욕구를 꺼내들기도 했다.
최근 1,2년동안 하나씩 쌓아왔던 것들이 나의 휴직을 적절한 타이밍으로 만들지 않았나 싶었다. 아직 휴직을 해서 무엇을 얻었다, 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냥 지금이 나에게 최적의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적절한 타이밍이냐 아니냐, 고민을 너무 많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게 휴직이라 지금이 더 적절한 타이밍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말 장난 같은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너무 휴직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기 시작하면서 지금이어도 괜찮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휴직과 퇴사는 확실히 다르다. 퇴사를 위해서는 준비도 많이 해야하고, 나만의 경쟁력도 갖춰야겠지만 휴직은 다르다. 끝나고 돌아갈 곳이 있기에 너무 심사숙고할 필요가 없다. 크게 바라지 않고 단 한가지라도 생각하는 바가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위해 공들인 시간이 있다면 휴직의 적절한 타이밍을 잡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을 수 있다.
모든 일에는 적합한 때가 있다. 무엇을 하든 제 때 하는 게 중요하다. 후회는 제 때 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감정이다. 지나간 버스를 놓치고는 조금만 더 서두를 걸 하는 생각을 하는 것처럼 우리는 매번 시간이 지나고 나서 실행하지 못함을 후회한다. 그때가 가장 적합한 때였다고 말이다. 나도 그랬다. 친구가 그렇게 전주로 가버렸을 때, 그리고 한참 뒤에 노량진에서의 힘든 이야기를 나에게 전해주었을 때 제때 하지 못한 나의 행동들이 아쉬웠고 후회스러웠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내가 스스로 적합한 때를 만들 수도 있다. 준비하는 자에게는 언제든 그런 때가 올 것이라 믿는다. 차곡 차곡 나의 갈길을 가다보면 언젠가 때는 운명처럼 올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지금이 적합한 때라고 생각하는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나중에 어떻게 생각하든 지금 현재가 가장 최고의 타이밍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적합한 때를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금의 휴직이 나에게 최적의 타이밍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쌓아왔던 것들이 휴직이라는 기회를 통해 더욱 커져가는 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 시간을 소중하게 가꾸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게 나만의 최적의 때를 즐기는 방법이겠거니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