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나머지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안희연 시집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진짜라는 말이 나를 망가뜨리는 것 같아

단 하나의 무언가를 갈망하는 태도 같은 것


다른 세계로 향하는 계단 같은 건 없다

식탁 위에는 싹이 난 감자 한 봉지가 놓여 있을 뿐


저 감자는 정확함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싹이 아니라 독이지만

저것도 성장은 성장이라고


초록 앞에선 겸허히 두 손을 모으게 된다

먹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을 바라본다


하지만 싹은 쉽게 도려내지는 것

먹구름이 지나간 뒤에도 여전히 흐린 것은 흐리고


도려낸 자리엔 새살이 돋는 것이 아니라

도려낸 모양 그대로의 감자가 남는다


아직일 수도 결국일 수도 있다

숨겨놓은 조커일 수도

이미 잊힌 카드일 수도 있다


나를 도려내고 남은 나로

오늘을 살아간다


여전히 내 안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내가

나머지의 나머지로서의 내가


- 안희연,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창비, 2020, '스페어' 전문




안희연의 시는 역시 좋다,고 중얼거린다. 코로나 때문에 어느새 여름이 갔는지도 모를 일이라고 되뇌던 차에,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새 시집을 펴낸 시인은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을 이야기한다.


떠오르는 순간 바로 써야 하는 글이 있고, 좀더 익을 때까지 묵혀야 하는 글이 있고, 바로 쓰긴 하지만 두고두고 들여다보며 고쳐 쓰는 글이 있다. 안희연의 시를 읽을 때면 바로 무언가를 적는 나의 패턴을 인식한다.


많은 시들이 좋다. 그리고 놀랍다. 나의 머릿속을 흐르는 느낌과 이미지들이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글자로 돋아난 것만 같은 느낌. 이토록 유사한 결을 가진 사람이 내내 궁금했다. 첫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의 시들을 읽을 때부터.


작년에 낸 짧은 시집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도 좋았다. 일반 시집 1/3 가량의 적게 수록된 시들 뒤로 시인의 에세이가 실려 더 좋았던 기억. 유년의 공간과 시간에 빚진 문장들이 어떻게 그녀 시에 스며들었는지 어슴푸레 알 것도 같았다. 이번 세 번째 시집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은 시인의 목소리가 좀더 단단한 고갱이로 자리잡아 내게 바싹 다가앉는 느낌이다. 흔들리는 나뭇잎에서 가지로, 가지에서 고갱이로 파고드는 느낌이랄까.


언젠가 신용목 시인은 (지나가듯 말했지만) 젊은 시인들 중에서도 유독 안희연 시인을 높이 평가한 적이 있다. 젊고 신선한 감각을 견지하면서도 마냥 튀지만은 않고, 진중하게 흐르는 (삶과 세계에 대한) 시선을 조용히 자신만의 문장으로 읊조리는 목소리. 그런 그녀의 목소리가 늘 반갑고 고마웠다.


첫 시 ‘불이 있었다’와 마지막 시 ‘열과’도 좋지만, 시집의 끝 무렵에 실린 ‘스페어’라는 시에 좀더 머무른다. 왜일까, 곰곰이 적어본다.


- ‘진짜’ 혹은 하나의 '실재’에 대한 강박으로 시달리던 시간을 일깨운다는 것,

- ‘다른 세계로 가는 계단’에 대한 생각. 천국 같은 건 없지만, 계단의 존재는 놓고 싶지 않은 마음,

- 썩은 감자를 바라보면서도 성장을 말할 수 있는 속절없는 희망의 감각,

- 희망의 감각을 믿고 싶은 심정은 ‘아직’과 ‘결국’ 사이에서 그리고 ‘조커’와 ‘잊힌 카드’ 사이에서 맴돈다는 것,

- 썩어온 부위를 도려내고 남은 나를 여전히 기다리는 자세,

- 나머지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그리고 살아가리라는 내가 또 다른 나의 차례를 기다리는 것,


이런 것들 때문이 아닐까.



이 시집에 수록된 마지막 시 ‘열과’의 첫 구절은 이렇다. “이제는 여름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이제는 여름에 대해 말할 수 있다

흘러간 것과 보낸 것은 다르지만


지킬 것이 많은 자만이 문지기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지기는 잘 잃어버릴 줄 아는 사람이다


(…) 한쪽 주머니엔 작열하는 태양을, 한쪽 주머니엔 장마를 담고 걸었다


뜨거워서 머뭇거리는 걸음과

차가워서 멈춰 서는 걸음을 구분하는 일


자고 일어나면 어김없이

열매들은 터지고 갈라져 있다

여름이 내 머리 위에 깨뜨린 계란 같았다


더럽혀진 바닥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여름은 다시 쓰일 수 있다

그래, 더 망가져도 좋다고


- 같은 책, ‘열과’ 일부



지나온 얼룩진 바닥을 사랑하는 것으로, 내가 살고 싶은 계절이 다시 쓰일 수 있다,고 믿고 싶다.

그래, 더 머뭇거리고 멈춰 서도 좋다.


양쪽 주머니에 태양과 장마를 동시에 담고서, 나머지에 대해 더 말할 수 있을 때까지.


(202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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