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게코와 산다

호치민에서 만난 동거 동물, 게코


바쁜 아침, 아이와 남편을 내보내고 나면 북적이던 오전의 공기는 한순간에 가라앉는다. 현관문이 닫히기 무섭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울리는 소리.

쩍-쩍-쩍-쩍-쩍.

제 존재를 알리는 소리 같아 나는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가만히 들어본다. 생사를 알 수 없었던 어제 밤의 궁금증을 불식시키기라도 하듯 이전보다 더 우렁찬 소리이다. 나 아직 살아 있노라고.

나는 반갑기도 하고 심지어 대견하기까지 하다.


얼마 전 대대적인 에어컨 청소가 있었다. 정기적으로 아파트에서 해주는 서비스이다. 베트남 일꾼 6명이 한 조가 되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에어컨 주변의 가구에 커다란 흰 천을 덮어놓고, 사다리를 세우고, 차례대로 에어컨들을 뜯어낸다. 큼지막한 방수 포대를 에어컨 주위에 둘러 씌운 후 그 끝을 욕실에서 끌어온 길다란 호스에 연결해 배수로를 만들고 에어컨 필터에 직접 물을 분사해가면서 청소하는 방식이다. 어찌나 부산스럽던지 정신을 다 쏙 빼놓는다. 1년 내내 에어컨을 가동해야 하는 열대 나라에서 살다 보니 필요한 작업이긴 하다.


내가 주로 앉아 일을 하는 테이블 옆 그러니까 커다란 책장 위에 매달려 있는 에어컨이 마지막 순서로 남았다. 에어컨 밑에 책장을 세워도 좋을 만큼 천장이 높은 구조였기에 가능한 배치였다. 일꾼들은 다소 난감하다는 듯 책장 선반마다 불룩하게 비어져 나온 책들을 바라보았다. 자리가 모자라 선반 끝 남은 공간에 눕혀 쌓아놓은 책들을 고스란히 테이블로 옮겨놔야 했다. 청소 도중 물이 흘러 젖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물이 튀거나 넘쳐 흘러 책이 젖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만 정신이 팔려 그곳 에어컨을 주거지로 삼고 사는 거주자의 안위 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저녁에 남편이 퇴근하고 나서 나는 그날의 청소가 의외로 규모가 큰 것이었다며 (그 와중에) 찍어 놓은 사진을 보여주네 마네 수선을 피웠다. 불쑥 남편이 물었다.

어, 그럼 게코는 어떻게 되었어?

나는 머쓱하니 동작을 멈추었다.

어……그러게 말이야……


#동거의 시작

언제부터 우리의 동거는 시작되었을까. 한국에서 호치민으로 거처를 옮긴 그때부터일 것이다.

강변에 조성된 빌라 단지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울창한 나무들을 이루어 아파트에서 바라보면 강과 열대의 나무들이 어우러져 생생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나무들이 많다 보니 산책길에서 만나는 동물들도 다양했다. 낮게 날아다니는 박쥐에서부터 나무들 사이를 폴짝거리며 건너 다니는 청솔모, 비올 때마다 느긋하게 길 위에 모습을 나타내는 달팽이, 두꺼비와 개구리, 나비와 나방, 사마귀, 기이한 울음 소리를 내는 이름 없는 새들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이곳의 마스코트는 뭐니뭐니해도 게코였다. 하얀 벽이나 노란 담장을 끼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게코들. 특히 밤이면 노란 불빛 주변으로 자그마한 게코들이 떼로 모여들었다. 처음엔 참 기이한 소리를 내는구나 싶었다. 혀를 차듯 쩍-쩍-쩍 소리를 내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제 꼬리를 내려치는 소리라 하던데 탁-탁-탁 하는 것보다는 사람이 끌-끌-끌 혀를 차는 것에 더 가까운 소리였다. 가운데손가락 하나 정도의 길이가 대부분인, 도마뱀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은 이 생물은 게코(Gecko)라 불렸다. 몸통의 10분 1은 눈이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만큼 커다랗고 겁 먹은 듯한 눈을 가진 이 생물은 벽이고 천장이고 할 것 없이 스파이더맨처럼 떨어지지도 않고 빠른 속도로 종횡무진 사방을 누비고 다닌다.


아파트에서 정원 딸린 빌라로 이사한 예전의 한 이웃은 집안에 게코가 너무 많아 죽겠다며 하소연을 하곤 했다. 그 말을 들으며 아파트에 사는 나는 얼마나 다행인가 안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거실 베란다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바닥과 벽, 처마 밑에 붙어 있는 게코와 눈이 마주치는 것은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밤이면 거실 창 위를 오르내리며 빤히 집 안을 살피는 것도 같았다. 개중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의 크기밖에 안 되는 새끼 게코는 문틈과 창틈으로도 드나들 수 있을 만큼 작았으니 우리 집이 게코의 영역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는 볼 수 없었다.


우리 역시 이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신고식을 톡톡히 치러야 했다. 욕실에 제법 큰 게코가 들어온 것이다. 화들짝 놀란 나는 일단 욕실 문을 닫고 허겁지겁 밖으로 뛰어나왔다. 집에 게코라는 동물이 들어올 거라곤 상상도 해보지 않았기에 호들갑을 떨며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결코 죽여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기에 포획은 쉽지 않았다. 약간의 장비(?)를 가지고 실랑이를 벌이는 소리 끝에 욕실 문이 열리고 남편이 의기양양하게 뚜껑 덮인 쓰레기통을 들고 나왔다. 그 안에 가두는 데 성공한 것.

우리는 마치 도마뱀 왕국의 왕자를 보호하고 있다가 풀어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쓰레기통을 들고 1층 화단에까지 내려가 잔디밭에 놓아주었다. 쏜살같이 달아나는 도마뱀을 보며 우리는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방생(放生)의 희열을 느꼈을 것이다.


이후에도 잊을 만하면 집 안으로 잠입하는 게코 때문에 약간의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일정 시기가 지나고 나니 이제는 ‘그냥 함께 사는 거지 뭐’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도 저에게 해코지하는 법 없고, 저 또한 사람을 겁내 하니 우리에게 해코지할 일이 없고. 자다가 천장에 붙어 있는 게코가 내 얼굴 위로 떨어지는 참사만 벌어지지 않는다면(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듯 가끔 천장에 붙어 있던 게코가 바닥으로 뚝 떨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자는 도중 기겁을 하게 되지만 않는다면, 뭐 같이 못 살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 책-게코를 상상하며

사람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유난히 촉수가 민감하게 움직이는 법. 눈앞에서 뻔히 오가는 게코를 보면서도 유독 나를 궁금하게 만든 것은 책장 근처에서 들려오는 게코의 소리였다. 이른 아침 시간 혹은 밤 늦은 시간, 유독 나 혼자 거실 테이블에 앉아 있을 때면 도드라지게 들려오는 (게다가 아주 가까이서 들리는) 쩍-쩍-쩍-쩍 소리 때문에 한동안은 몹시도 신경이 거슬렸다. 어쩌면 싱크대 밑에서 본 그 게코가 책장 어디쯤에 아예 터를 잡고 사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많고 많은 공간 중에 왜 하필 책장인가.


나는 책벌레가 아닌 책게코가 사는 게 아닌가 하는 객쩍은 상상까지 서슴지 않았다. 방생(放生)의 순간에 가졌던 (도마뱀 왕국의 왕자가 언젠가 내게 은혜를 갚으러 나타나리라는) 객쩍은 상상과 한통속이었다. 어쩌면 20년 전 내 귀를 사로잡았던 The Doors의 공식(?) 광인(狂人) 보컬 짐 모리슨의 시(詩) <The Celebration of the Lizard>의 영향이었을 수도 있고, 10년 전 보았던 일본 애니메이션 <고양이의 보은>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런 나의 환상은 1년 전 앞집 여자에 의해 싱겁게 끝났다. 그녀 말로는 이랬다. 평소 문을 활짝 열어놓고 지내다 보니 아파트인데도 집에 게코들이 여러 마리 보인다는 것이다. 주로 어디에 사는지 유심히 살펴보니 재미있게도 소파 밑이나 에어컨 안쪽이더라는 것이다. 좁은 공간이 아늑하게 느껴져서 그런가 보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니 아침과 밤에 들려오는 게코의 소리는 책장이 아닌 책장 위 에어컨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책과 책 사이의 좁은 틈을 비집고 서식하는 책게코를 상상했던 나는 다소 맥이 빠졌지만 (그게 뭐라고!) 어쨌든 소리의 진원은 정확히 알아낸 셈이다.


# 마주침

한번은 도대체 에어컨 안쪽 어디에 붙어서 그런 소리를 내는지 하도 궁금하여 의자를 끌어다 놓고 올라가 살펴본 적도 있다. 게코 소리가 참 성가시다고 무심코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니 어느 날 밤 그는 내게 말도 없이 에프킬라를 들고 에어컨에 살포하는 살생(殺生)을 저지르고자 했다. 물론 미수에 그쳤지만. 웬만한 벌레는 모조리 죽일 수 있는 에프킬라의 위력을 믿고 의자 위에 올라서 에어컨에 몇 번 칙-칙- 분무해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자 놀란 거주자가 바깥으로 호로록 빠져 나온 모양이다. 그때 남편이 게코의 눈과 딱 마주쳤는데, 도저히 더 이상은 못하겠더라는 것이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더 이상 그 거주민을 건드리지 말자고 신신당부했다.

우리의 대화를 엿들었던 걸까. 그 후 게코의 소리는 좀더 당당해진 듯했다. 슬며시 눈치 보며 찰파닥대는 소리가 아니라 위풍당당하게 철퍼덕대는 소리. 공식적으로 에어컨에 거주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긴 것처럼. 그렇게 우리는 1년을 넘게 동거해온 것이다.


그러니 그날 아무리 에어컨 청소 팀이 내 정신을 쏙 빼놓았어도 게코 생각을 미처 하지 않은 것은 남편만 못한 일이었다. 그나마 그가 게코와 일면식(?)이라도 있어서였을까. (하하하!)

나는 더 이상 거주자의 모습이나 정체를 알려고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다. 보이지 않으면 어떤가. 소리로만 들을 수 있는 미덕이 있으니. 저렇듯 자기 잘 살고 있노라고 동거(同居)의 종을 울릴 수 있으면 된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 파트너에게 예의를

나는 방생(放生)의 기억을 더듬어 이 게코를 방사(放飼)하여 키우는 애완동물쯤으로 여기며 함께 지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다. 본 적 없고, 먹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눈으로라도 쓰다듬어줄 수 없으니 애완(愛玩)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일단 주종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데, 애완동물이라니. 엄연히 도마뱀의 왕국에서 제 몫을 다하는 백성일 것이다. 그렇다면 ‘애완 동물’이 아닌 ‘동거 동물’로서, 나는 이 파트너에게 마땅한 예의를 갖추어야 하지 않겠는가.


오전과 밤에만 우는(제법 곤조가 있는 친구이다) 이 친구의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는다, 정체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사는 곳을 알아내려 굳이 들쑤시지 않는다, 규칙적으로 울리는 울음 소리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아니, 한 술 더 떠볼 요량이다. 일종의 반가운 알람 소리로 삼아보는 것이다. 게코가 울 때면 나도 제 소리를 낼 준비를 마쳐야 한다는 것처럼 책상 앞에 앉는 것이다. 확인해야 할 메일이라든가, 잡다하게 처리해야 할 일들 따위는 잠시 잊고 오롯이 제 안의 소리를 듣고 퍼 올리는 시간이 되었다는 신호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단 한 시간이라도.


게코가 운다. 쩍-쩍-쩍-쩍. 내 마음에 따라 소리가 달라진다.

어느 때에는 한심하다는 듯 내게 혀를 쯧-쯧-쯧 차는 것 같기도 하고, 어느 때에는 괜찮다고 우-쭈-쭈 달래는 것도 같다. 어느 때에는 게으름 피우지 말고 정신 차리라고 착-착-착 채근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다른 때에는 잘하고 있다고 격려의 박수를 짝-짝-짝 쳐주는 것도 같으니, 내밀하기로는 이만한 동지가 또 있을까 싶다.


쫑-쫑-쫑-쫑.

오늘은 꼭 이렇게 말하는 것도 같다. 너나 나나 그저 순리를 따르며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래야 너도 살고 나도 살지 않겠느냐고.


우리 집엔 게코가 산다.

나는 게코와 함께 산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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