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니의 시 ‘눈 위의 앵무’
소화꽃 피던 밤 눈 위의 앵무는 붉은 깃털을 세우고 영원의 길을 가리켰다. 그러니까 내가 바라보는 곳은 눈길 저 너머. 이곳에 없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의 낡은 호주머니 속 한가닥 보푸라기를 만지는 심정으로. 나는 우리가 즐겨 했던 끝말잇기의 궤적을 그려보려는 헛되고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밤 눈 위의 앵무는 자신의 그림자를 끌고 날아오르려 날아오르려. 반성하는 습관을 버린다면 나는 좋은 사람이 될 텐데. 앵무의 발은 노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부드러운 치자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우리는 꽃의 향기를 맡을 줄 압니다. 우리는 그리운 곳으로 손을 뻗을 줄 압니다. 네가 말하자 눈 위의 앵무는 눈썹 위의 물방울을 털어냈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흉내내듯 길고 흐릿한 점선의 방향으로. 눈 위의 앵무는 모두들 잘 있다고만 했다. 잘 있다고만. 너는 까닭없이 울기 시작했다.
- 이제니, <아마도 아프리카>, 창비 2010, '눈 위의 앵무' 전문
읽었을 텐데 읽지 않은 것 같다. 읽었을 수도 있지만 읽지 않았을 것이다. 머물렀던 기억이 없다면.
머무르지 못한 시들은 대부분 내 안의 공명장치를 건드리지 못해서일 것이다. 공명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것은 시적 이미지가 드러내는 (혹은 상상을 자극하는) 시공간의 감각을 아직 감지하지 못하는 내 탓일 확률이 높다.
머무르지 못해 망각 속으로 사라졌던 시가 돌연 또렷한 이미지를 물고 다시 날아드는 경우가 있다. 그것도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다른 종류의 이미지를 몰고.
이제니의 '눈 위의 앵무'를 다시 읽는다. 겹쳐 떠오르는 두 개의 장면.
#1. 지난 11월 마지막 주말 오후. 평소 산책하던 코스를 조금 벗어나 옆 동네를 거닌다. 탄천을 따라 걷다가 공원을 지나고 고속도로를 가로지르는 육교를 건넌다. 전혀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익숙한 아파트 단지 대신 처음 보는 단독주택 마을. 각양각색의 집들이 정연하게 늘어선 거리를 천천히 구경하며 걷던 중 기이한 광경과 마주친다. 어느 집 담벼락에 홀로 길다랗게 피어 있는 붉은 장미 한 송이. 한겨울에 피어 있는 장미라니! 나는 놀라운 마음으로 장미를 바라본다. 집에 놓고 온 핸드폰 생각이 간절하다. 카메라에 담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마음속 이미지로 새겨넣는다.
#2. 한 달이 지났다. 그 사이 첫눈이 내렸고, 개울이 얼어붙었으며, 해가 바뀌었다. 2021년 1월 1일. 영하의 날씨지만 옆 동네까지 길게 산책을 다녀오기로 한다. 어쩌다 보니 한 달 전 코스 그대로 걷고 있다. 장미가 피어 있던 담벼락에까지 다다른다. 눈을 의심한다. 여전히 있었기 때문에. 붉은빛이 바래고 좀더 여위었지만 꼿꼿하게 서 있는 장미. 빨갛게 얼어붙은 장미라니! 말 그대로 프로즌 드라이 플라워인 셈. 나는 한 달 전보다 더욱 놀라운 마음으로 장미를 바라본다. 감탄하며. 이번엔 핸드폰 카메라에 담는다. 예컨대 이런 심정으로.
“그러니까 내가 바라보는 곳은 눈길 저 너머. 이곳에 없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의 낡은 호주머니 속 한가닥 보푸라기를 만지는 심정으로.”
연초에 마주친 익숙하지만 낯선 사물 앞에서, 아니 한번도 본 적 없는 ‘얼어붙은 장미’(가 뿜어내는 아우라) 앞에서 나는 다소 난감하고 다소 감동한다. 난감하다면, 내가 본 것을 표현할 길이 마땅치 않다는 사실에 난감해져서. 감동이라면, 빙하에 갇혀 죽음 직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박제된 생명체를 보는 것과 같은 기묘한 느낌이라서. 키가 닿았다면 나는 마스크를 벗고 향을 맡아보았으리라.
“우리는 꽃의 향기를 맡을 줄 압니다. 우리는 그리운 곳으로 손을 뻗을 줄 압니다.”
앵무는 흉내내고 반복한다. 흉내의 반복. 반복의 변주. 변주의 반복. 반복은 시간을 따라 길고 흐릿한 점선으로 이어진다. 미메시스의 방향은 누군가의 목소리로 모아질 것이다. 듣고 싶은 목소리. 내가 갈라져 나온 목소리.
“누군가의 목소리를 흉내내듯 길고 흐릿한 점선의 방향으로. 눈 위의 앵무는 모두들 잘 있다고만 했다. 잘 있다고만. 너는 까닭없이 울기 시작했다.”
눈 위에 앵무는 없었다. 동결된 장미 아래 앵두 같은 붉은 열매들이 다닥다닥 빨강의 정물화를 완성하고 있을 뿐. 가까이 개울이 움직이고 있었다. 눈과 얼음 아래 드문드문 햇살에 반짝이며 흐르는 시린 물소리.
눈과 얼음과 물은 영원히 돌아오는 시간. 장미는 덧없는 것의 표상이다. 영원히 소멸을 반복하는 덧없는 존재가 기이한 방식으로 한겨울에 현현하다니. 덧없는 것이여 영원하라,는 식의 진부한 표현을 환기시키기 위해서? 누구에게? 덧없는 것을 바라보는 또 다른 덧없는 존재를 위해서.
얼어붙은 1월의 장미를 보며 눈 위에 서 있는 미이라를 상상한다. 이곳에 없지만 이곳에 있는. 이곳에 있지만 영원히 없을 모든 것들을.
모두들 잘 있을까?
그러자 나는 까닭없이 울고 싶어지는 것이다.
(202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