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여자의 역사 - 인과의 통념을 비틀다

최정례의 시 '늙은 여자'

by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때 아기였기 때문에 그녀는 늙었다

한때 종달새였고 풀잎이었기에

그녀는 이가 빠졌다

한때 연애를 하고

배꽃처럼 웃었기 때문에

더듬거리는

늙은 여자가 되었다

무너지는 지팡이가 되어

손을 덜덜 떨기 때문에

그녀는 한때 소녀였다

(중략)

한때 배꽃이었고 종달새였다가 풀잎이었기에

그녀는 이제 늙은 여자다

(하략)


- 최정례, <붉은 밭>(창비 2001), '늙은 여자' 중에서




인과의 통념에 관해 생각한다. 원인과 결과라는 익숙한 흐름을 습관적으로 따라가는 것. 최정례의 시 '늙은 여자'를 읽다가 불현듯 5년 전 기억을 불러온다. 인과의 통념을 비트는 감각이 불쑥 과거의 한 장면을 헤집고 들어온다. 5년 전 베트남에서 경험한 일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를 따라다닌다. 이번엔 원인과 결과를 뒤집어 생각해보는 계기로 찾아온다.


그날의 장면. 여느 날과 다름없이 바깥은 열대의 기운으로 후끈하다. 나는 되는 대로 침대에 쓰러져 누워 있다. 조금 울었던 것도 같다. 눈물 자국이 뺨에서 꾸덕하게 말라 피부를 당기는 느낌. 종일 틀어대는 에어컨 때문인지, 울고 나면 찾아오는 두통 때문인지, 머리가 아프고 이마도 뜨끈하다. 힘없이 이마를 짚어본다. 해열제를 먹어야 하나. 바깥이 내다보이는 창가 바로 옆 침대에 누워 나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 창문은 닫혀 있다. 얼마큼 시간이 흘렀을까. 무의식과 의식 사이 어디쯤에 나는 스스로를 방치해둔다. 방 안엔 아무도 없다. 얇고 하얀 커튼이 살랑거린다. 아니 나중에야 그렇다고 느낀다. 왼쪽 발의 복숭아뼈를 무언가 스치고 지나간다. 눈을 뜬다. 이미 뜨고 있는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창문은 분명 닫혀 있다. 집엔 나 혼자 있다. 바람이 불어서 커튼이 흔들리고, 바람이 더 세차게 불어대서 커튼 끝자락이 침대에 누워 있는 내 발까지 닿았을 수도 있다, 고 맥없이 생각한다. 그런데 창문은 닫혀 있다. 바람은 불어올 수 없다. 세찬 바람이 아니라면 커튼 자락이 내 발에 닿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멍하니 누워 있다. 깜박 잠들었던 걸까. 그렇다 해도 내 복숭아뼈를 살며시 건드리고 간 그 촉감은 너무 생생하다.


바람이 분다. 원인이다. 커튼이 흔들린다. 결과이자 원인이다. 무언가 내 몸에 닿는다. 최종 결과이다. 그러나 바람은 불지 않았고 커튼은 흔들렸다. 커튼은 흔들리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얇고 부드럽게 살랑이던 감각은 분명하다.


뒤집어 생각해본다. 방 안에 아무도 없다,가 원인. 누군가 내 발을 건드리고 갔다,가 결과. 아무도 없어서 누군가 나를 스치고 갔다,라는 문장이 가능하다.


플로베르가 말했다는 일물일어설. 하나의 사물을 나타내는 데 적합한 말은 하나밖에 없다. 그런가. 방점은 '적합한 말'에 있을 것이다. 결정적인 단 하나의 말을 찾아내는 것이 아닌, 본질에 얼마나 근접하느냐의 문제.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배열의 문제 아닐까.


일물일어설은 결정론이 아니라 과정론이다. 황현산은 '단 하나의 표현'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미 있었던 모든 표현에 첨가되는 또 하나의 표현이 아니라, 인간이 사물을 보는 방식을 바꾸고, 인간과 사물의 관계를 바꾸고, 그래서 끝내는 인생관과 세계관을 바꾸는 말이 된다"라고. (은유, <쓰기의 말들> 중에서)


롤랑 바르트는 말했다. "플로베르는 문장과 문장을 에로틱하게 이어간 것일 뿐"이라고. 문장과 문장을 이어가는 과정은 대체로 인과의 고리에 묶여 있다. 바람이 불어서 커튼이 흔들린다. 그런가. 보이지 않는 무엇이 내게 왔다 갔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 커튼이 흔들린 것은 아닌가. 너를 사랑해서 나는 슬프다. 그럴까. 나는 슬픈 감각을 잃고 싶지 않아서 너를 사랑하는 것은 아닌가. 통념에 젖은 인과를 뒤집어본다면 문장과 문장은 진부하게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일상의 언어 습관으로는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아슬아슬하고 관능적인 형태로. 바르트가 말한 '에로틱하게 문장을 이어간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최정례의 시로 돌아온다. 한때 소녀였기 때문에 이제 늙은 여자,라니. 한때 배꽃같은 소녀였지만 이제 말을 더듬고 손을 덜덜 떠는 늙은 여자가 되었다,는 평범한 진술을 이렇듯 가벼운 터치로 뒤집어 바꿔놓다니. 시간의 흐름은 달라진 게 없지만, '때문에'라는 단어가 놓이면서 뜻밖의 정서, 예상치 못한 뉘앙스를 선사한다. 늙은 여자의 역사는 이렇게 다시 쓰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5년 전으로. '방 안엔 아무도 없었는데 무언가 나를 스치고 갔다'라는 문장. '아무도 없어서 누군가 왔다 갔다'로 바꿔본다. 신용목의 시집 제목인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가 떠오른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지 않아도

나는 돌아보았다


- 신용목,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창비, 2017, '모래시계' 중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최정례의 시를 읽었기 때문에 과거의 일을 떠올린 것도 아니고, 과거의 일을 문장으로 재구성했기 때문에 신용목의 시가 불려온 것도 아니다.


나는 쓰고 싶어서 돌아본 것이다. 미완의 과거를 현재로 불러와 언어화하고 싶어서.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지 않아도 돌아보고 싶은 마음을 나는 조용히 확인한다.


(20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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