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인 P를 추모하며

까치글방 박종만 사장님의 부고에 부쳐

by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심경, S가 카톡 메시지를 보내왔다. 낯익은 P의 얼굴이 실린 사진과 기사 제목.


[발자취] 토머스 쿤부터 브라이슨까지...인문, 사회 명저 펴낸 베테랑 출판인


P에 관한 기사구나. P는 내가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한 출판사의 대표였다. 좋은 책을 낸다,는 신념이 워낙 투철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어서 당연히 인터뷰 기사라고 생각했다. 마침 어제 일자 기사를 통해 <팬데믹과 문명>이라는 신간 소식도 접한 참이었고.


기사를 클릭해서 열어본 순간 나도 모르게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제목 밑에 '박종만 까치글방 창립자 별세'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지난 14일 지병으로 타계했다는 소식.


이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은 뭘까. 단순히 내 첫 고용주였다는 사실만으로 그를 추억하기엔 밀려드는 기억과 생각들이 적지 않다. 기억의 갈피마다 꽂혀 있는 복잡다단한 감정들까지.


P(당시엔 사장님이라고 불렀으나 여기에선 P로 생략한다)는 내가 일의 기쁨과 슬픔에 발을 디디도록 첫 단추를 끼워준 인물이자, 직업이 곧 (소명으로서의) 일이 될 수도 있음을 알려준 사람이다.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분야 명저들을 펴내 한국 사회의 지적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적힌 기사 내용처럼 그는 좋은 책을 만든다,는 소신과 자부심이 대단했다. "꼭 필요하지만 소개되지 못한 책을 펴내자는 것이 남편의 신념이었다"고 전하는 아내의 말에 왠지 모르게 울컥 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그를 추억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와 공유했던 시간과 공간을 통째로 추억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기에, 나는 P를 추모하는 마음과 더불어 지나간 내 20대의 어느 한 켠을 들추어 그 시간 전체를 애도하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힌 건지도 모른다.


첫 만남은 면접을 보러가던 날이었다. (당시) 회사는 독립문 근처에 자리잡고 있었다. 면접이라는 형식적 자리에서 P와 어떤 대화를 주고받았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그가 영문 텍스트가 인쇄된 용지 몇 장을 건네주며 내게 번역을 요청했던 것, 그의 사무실에 혼자 앉아 끙끙거리며 주어진 시간 내에 영문을 한글로 옮기던 기억만이 어렴풋하게 떠오를 뿐이다.


얼마 후 합격 통지를 받았고, 그렇게 편집부에서 일하게 되었다. 주위 선배들은 굵직한 사회과학 서적을 위주로 책을 내온 출판사 이력을 기억하며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세상 물정 모르고 그저 책이나 글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희망으로 대학 생활을 보낸 나 같은 사람에게 출판사 편집부는 자연스럽고 적절한 자리였다.


당시 편집부 직원은 6명. P는 유난히 편집부를 아꼈다. 국내 저자의 책보다는 해외 서적들을 위주로 출판하다 보니 번역과 편집 업무가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하루 종일 텍스트와 싸우는 편집부 직원들을 위해 (지금 생각하면 놀라운 따름인) 수요일 오후 휴무를 정례화했다. 알게 모르게 직원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했다. 무뚝뚝해도 다정한 분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아버지뻘 되는 사장님이 어렵고 조심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불만도 있었다. 영업부 직원들은 가뜩이나 어렵고 안 팔리는 책을 광고나 홍보도 하지 않는 것에, 일반 대중들이 좀더 좋아할 만한 말랑말랑하고 쉬운 책을 내지 않는 것에 아쉬움을 표현하곤 했다. "책이 아무리 좋으면 뭐하나, 많이 팔려야 말이지" 같은 하소연.


그러나 대중의 값싼 취향에 영합하지 않으려는 그의 신념은 (불평은 낳을지언정) 비판의 대상은 아니었다. 좋은 책은 좋은 책을 알아보는 사람에게 어떻게든 발견되기 마련이다. 그의 단호한 태도는 내게 모종의 존경심을 불러 일으켰다. 지금 같은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에 어느 정도 현실과의 타협은 불가피하겠지만. 적어도 그의 손을 거쳤다면 '속 빈 강정' 같은 (겉만 요란한) 책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편집보다는 기획에 욕심이 생길 즈음, 나는 우연한 기회에 다른 직종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출판사를 떠나려니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이 컸다. 출판사도 좋았고, 사람들도 좋았으니까. P는 실망스러워하거나 화내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앞으로 하게 될 업무에 대해 찬찬히 묻고는 그저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었을 뿐.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그 일에만 몰두하세요. 어떤 일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그 일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더 고민한다는 것이니까."


그로부터 10년이 훌쩍 지난 어느 날, 모 신문사 사옥에서 P와 우연히 마주쳤다. 경제부 기자와 미팅이 있던 날. 당시 만났던 기자의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1층 로비에서 P를 발견하곤 몹시도 반가워 먼저 다가갔던 기억은 또렷하다.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고, 어색하게 내 명함을 건네던 순간. 뭔가 아련하고 서글픈 감정에 휩싸였던 것 같다. 일에 찌들려 책과는 멀어진 나의 모습. 불현듯 출판사 시절이 그리웠고, 왠지 모르겠지만 P와 좀더 길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 미팅 약속이 있던 터라 조만간 꼭 찾아뵙겠다는 말을 건네고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진심이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10년. 뒤늦게 전달된 그의 부고. 다시 찾아뵙겠다는 말은 빈말로 돌아가고 말았다.

(당시 편집부 선배였던) S는 한번쯤 찾아가봤어도 좋았을 텐데, 자신이 너무 어렸던 것 같다고 했다. 그녀는 결혼 후 출판사를 떠나 먼 지방에 정착했다. 나는 S에게 언젠가 같이 모여 P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나름 추모하는 시간을 갖자고 했다. 후회는 늘 뒤늦게 온다.


지난 겨울, 광화문 일대를 지나다가 출판사가 있던 동네를 차로 빙 둘러본 적이 있다. 말 그대로 상전벽해. 어디가 어디인지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 세상은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기사를 보니 2017년부터 딸 후영씨가 까치글방 대표이사를 맡았다 한다. 오래 전 P 부부가 직원들을 집으로 초대했을 때 어린 그녀를 보았던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아버지의 뜻과 안목을 이어 이 시대에 필요한 출판인이 되기를 빌어본다. 까치의 책들은 앞으로도 내 관심과 애정의 대상이 될 것이다.


오랜 기간이 아니어도 인생에서 짧고 밀도 높은 시간을 떠올려 보라고 한다면 아마 까치에서 보낸 나날들을 처음으로 꼽을 것 같다. 그 시공간 속 P와 함께한 여러 장면들, 대화들, 에피소드 들이 가로등 켜지듯 하나둘씩 되살아난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은 왜일까.


평생을 좋은 책 만들기에 헌신한 P의 삶에 존경을 보내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2020-6-22)


http://naver.me/FSKU6Y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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