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날 뻔한 사람

만날 뻔한 사람, 만난 사람, 만날 사람


고등학교 문예부 시절, 1년에 한번 준비하는 문예지에 ‘작가 탐방’이라는 꼭지가 있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나는 (마치 으레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문예부에 지원을 했다. 당시 신입 회원을 5명 안팎으로 뽑았던 것 같은데 운이 좋게도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다. (선발 기준이 어떠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나와 같은 1학년 친구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었고, 2학년 선배들 중 몇 명을 잘 따르고 좋아했다. 특히 유난히 마르고 얼굴이 하얗던 (지금 생각해보면 존 레논을 닮은) 문예부장 선배나, 남자처럼 머리를 짧게 스포츠 커트로 올려 깎고 늘 장난기 넘치는 재담으로 모두를 즐겁게 했던 선배, 그리고 그리스 조각을 연상시키는 서구적인 이목구비를 가진 (어딘가 모르게 중성적인) 선배를 좋아했다. 아주 여성적이거나 아주 남성적이거나 아주 중성적이거나.


어떤 계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고1 초반 나는 이문열과 이외수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 아마도 <사람의 아들>이나 <젊은 날의 초상> 그리고 <꿈꾸는 식물>을 읽었을 것이다.


그동안 사촌 오빠가 물려준 동서문화사의 세계문학사상전집이나 부모님이 가지고 있던 노란(아니 누런) 표지의 삼중당 문고를 통해 해외 작가에만(다시 말해 번역문에만) 익숙했던 내게 이문열과 이외수의 우리말 문장은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그래서 ‘작가 탐방’의 주인공으로 ‘이외수’라는 이름이 결정되었을 때 꽤나 반가웠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직접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었는지는 영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선배와 춘천까지 가서 콧바람을 쐬고 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말이다.


1학년 중에 작가 탐방의 기회를 잡은 운 좋은 친구는 따로 있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 생각해도 그렇지만 ‘범상치 않은’ 친구였던 것만큼은 확실하다. 나와 같은 반이기도 했던 그녀는 수업 시간에 (빈 종이에) 그림을 그렸(던 것으로 기억하)고, 어디서 들었는지 기묘한 농담이나 괴기스러운 이야기를 곧잘 했으며, 껄껄대는 웃음 소리가 기이했다. 이외수라는 신세계를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고, 내게 그의 다른 책들을 빌려주기도 했다. 아마 <겨울나기>와 <들개>였을 것이다. 이후 그의 책을 접한 적이 없으니 고등학교 1학년은 내가 이외수 소설을 읽은 유일하고도 짧은 시기이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작가에 대한 충성도가 나보다 높다는 점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녀의 괴짜 코드가 왠지 작가의 기인 행각과 통하는 구석이 있다고 여겨졌는지, 문예부장 선배는 그 친구를 데리고 춘천에 있는 이외수 작가의 집을 찾았다. 나중에 탐방기를 읽어보니 작가와 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심지어 춘천 구경까지 함께 했더라. 서울에서 내려온 솜털 보송보송한 여고생 두 명을 위해 오후 시간을 송두리째 내주었다는 것 자체도 놀라웠거니와, 철문이 달린 자신의 방(당시 이외수는 방에 철문을 달고 ‘갇히는’ 것이 아닌, 세상을 ‘가두는’ 퍼포먼스로 화제를 낳았다)으로 어린 손님들을 들이고 식사까지 대접하는 것도 모자라 손수 운전대를 잡고 춘천, 의암, 소양댐까지 돌며 춘천을 구경시켜주는 그 정성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배가 아팠던가?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그저 무덤덤하게 좋은 경험이었겠다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문득 그 먼 옛날의 일이 떠오르는 것은 왜인가. 만날 뻔한 사람,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것은 왜인가. 만약 만났다면 어떠했을까. 지금의 내게 일말의 영향이라도 미쳤을까.


최근 강영안 교수의 <레비나스의 철학-타인의 얼굴>을 읽다가 문득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1978년 벨기에 정부 장학생으로 유학을 떠난 젊은 시절의 저자는 이듬해 루뱅 대학교 대강당에서 레비나스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레비나스의 프랑스어를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를 직접 보고 듣게 된 것이 그의 철학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밝히고 있다. 칸트 철학을 전공하여 칸트 학자로 알려진 강영안 교수가 훗날 레비나스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게 된 것도 이런 계기가 있었기 때문 아닐까. 물론 이 한 번의 ‘만남’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누군가에게 어떤 ‘만남’은 오래도록 울림이 되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흔적을 새기기도 할 것이다. 그 울림이 제 안에서 어떻게 반향을 일으키는지, 그 흔적이 제 안에서 어떻게 도드라져 나올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어느 순간 되돌아 보았을 때, 아하 그것이 바로 내게 미친 ‘영향’이었구나 하는 생각에 이른다면, 희미한 기억 속에 묻혀 있던 그 ‘만남’의 의미는 비로소 가치 있는 사건으로 격상되는 듯하다.


그날 춘천에 다녀온 (작가 이외수를 만나고 온) 친구는 고교 문예지에 ‘단편 소설’을 써냈다. 팔리지 않는 그림을 거리에 내다 세우는 가난한 화가의 풍경으로 시작하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아마 그녀 생애의 첫 소설이었을지도 모른다. 심상치 않던 그 친구, 지금쯤 어디선가 한가락 하고 있을 것도 같은데. 혹시 아는가. 어느 날 문득 어느 인터뷰 글에서 “고등학교 시절 작가 이외수를 직접 보고 듣게 된 것이 지금의 제 모습에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읽게 될지.


그동안 살면서 ‘만날 뻔한 사람’은 또 누가 있었나 곰곰이 생각해본다. 한때 베스트셀러 작가로 잘나가던 정신과 의사, 유명 CEO, 화제의 정치인, 유명 홍콩 배우...... 문득 여기서 경계해야 할 함정은 그 ‘만날 뻔한 사람’을 유명인으로 규정하는 어리석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명의 사람들 중 나를 스쳐 지나간, 내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친, 혹은 미칠 수도 있었을 사람들을 나는 생각해야 한다. 두어 번밖에 만나지 않았어도 내게 힘이 되었던 사람이 있고,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나를 괴롭혔던(그러나 나의 성장과 성숙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나를 고양시키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내게 상처를 주는 사람도 있었다. 언젠가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고, 살면서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한번도 만난 적 없지만 언젠가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다. 모두가 현재의 나를 꾸리는 데 (원했든 원치 않았든) 관여한 사람들일 것이다.


만날 사람은 언젠가 만나고, 만날 일은 언젠가 만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인연이고, 각자가 애써 만들어내는 운명일 것이다.


(2015-9-9)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꼬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도 좋았을 것이다.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 피천득, ‘인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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