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의 안타고니스트로 암약하고 있는가
아이가 대만에서 국제학교에 다닐 때 일이다. 영어 시간에 Short Stories를 배운다고 했다. 눈에 익은 용어들이 보인다. 프로타고니스트(Protagonist)와 안타고니스트(Antagonist), 세팅(Setting)과 플롯(Plot), 갈등(Conflict), 절정(Climax) 등등.
지금까지 스토리를 그저 즐기는 대상으로 읽었다면 이제 '분석'이라는 도구를 들이대어 좀더 구조적으로 텍스트를 이해할 때가 되었다는 의미겠지.
유독 안타고니스트,에 시선이 간다. 프로타고니스트 즉 주인공보다는 주인공과 갈등을 빚는(혹은 주인공에게 새로운 조명을 던져주는) 적대자(혹은 뜻하지 않은 조력자)로서의 안타고니스트 말이다.
문학비평용어사전에 나오는 (노승욱이 쓴) '주인공'이라는 글을 보면 안티-히어로(anti-hero)라는 단어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신에서 영웅으로, 영웅에서 귀족으로, 다시 귀족에서 평민으로 주인공이 바뀌는 서양소설의 발달과정은 곧 주인공의 하강과정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노승욱)
그렇다면 안타고니스트는 어떨까. 흥미로운 점은 안타고니스트라는 단어가 문학비평용어보다는 화학용어사전에 먼저 걸려 뜬다는 점이다.
"세포의 수용체에 특이적으로 결합하여 아고니스트가 결합하였을 때의 작용을 저해하는 물질. 제독제 또는 차단약이라고도 한다."
제독제(除毒劑)라…... ‘독’은 누구의 독이고 그 독은 누가 제거하는가.
(으레) 선하게 빛나는 주인공에게 (주로) 해악을 끼치는 악당으로 등장하는 안타고니스트는 제 '독'을 십분 발휘하여 프로타고니스트의 제독 역량을 (때로 영웅적으로) 강화한다.
의학 또는 생물학적 개념으로 볼 때 안타고니스트는 일종의 길항작용(拮抗作用)을 하는 대항물질이다. 길항작용의 사전적 의미는 무엇인가. 상반되는 2가지 요인이 동시에 작용하여 그 효과를 서로 상쇄시키는 작용이다.주인공에 대항하여 상대적인 긴장 관계를 조성하는 안타고니스트의 태생적 성분을 짐작하게 된다.
# 절대적인 안타고니스트는 없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스토리는 결국 시점(Point of View)의 문제이다. 만약 안타고니스트로 설정된 인물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다시 풀어간다면, 그는 프로타고니스트가 되고 기존의 프로타고니스트는 (대척점에 서 있다는 측면에서) 안타고니스트가 된다. 안타고니스트는 절대불변의 악이 아니다. 시점에 따라 움직이는 필요악일 뿐. 프로타고니스트-안타고니스트라는 두 항을 이루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그러니까 하나의 스토리에서 절대적인 프로타고니스트와 절대적인 안타고니스트를 구별하는 도식에 다소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청개구리 심보에 의해) 안타고니스트에게 보다 의도적인 관심과 시선을 보이는 것이 자연스러운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주인공의 역사가 하강을 거듭하여 '아무개' 각자가 될 수 있다면 그 각자의 안타고니스트는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내 인생(이라는 부인할 수 없는 서사)'의 프로타고니스트인 '나'는, 어떤 안타고니스트를 거쳐 '지금-여기'에 와 있는가. 그리고 그 안타고니스트들(로 분류된 사람 혹은 사물이나 사안들)의 활약 또는 암약이 나의 현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질문.
그리고 시점 전환을 시도해본다. 그때, 그 상황, 다양한 조건들과 변수들이 얽힌 복잡한 정황 속에서 (당시) 나의 안타고니스트들은 각자 나름의 프로타고니스트적인 어려움과 고뇌에 직면했을 것이다,라는 생각.
무수한 시간과 인연을 거쳐 나는 현재에 이르렀다. 현재의 나를 둘러싼 환경과 사람들을 떠올린다. '나'를 인생 서사의 중심으로 설정한다면 그간 셀 수 없는 안타고니스트들로 인해 상처 받고 괴로움을 달래가면서 면역력을 키웠을 터이다. 어쩌면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 아닌) 안타고니스트들이 아니었는지.
그 누구도 명확한 주인공/적대자가 아니지만, 그렇기에 그 누구도 프로타고니스트/안타고니스트가 될 수 있는 스토리. 가만 생각해보니 그간 나를 잡아 끄는 스토리는 대략 이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싶다.
나는 오늘 하나의 프로타고니스트로서 누구의 안타고니스트로 암약하고 있는가.
(2017-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