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말에 대하여

솔깃한 빈말, 믿고 싶은 빈말

by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말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 빈말을 잘해야 하는 직업군에 오래도록 종사했다. 특히 빈말을 밥 먹듯 듣고 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구사해야 하는 빈말은 그냥 빈말이어서는 안 되고 상당히 정교하게 다듬어진 빈말이어야 진정성 있는 빈말로 인정받는다.


빈말을 하면 두드러기가 난다,는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빈말을 하는 나'를 의식하는 것에 상당한 불편과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으로서 내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빈말을 빈말이 아닌 것으로 (스스로) 믿는 혹은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 빈말 정당화하기

예컨대 이런 것이다. A라는 사람은 나와 잘 맞지 않는다. 오가는 대화는 한심한 수준이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에서 한심한 것이다. 상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함께 있으면 피곤하고 소진된다. 필요에 의해 만나는 부류의 사람들과는 가급적 만남의 횟수를 줄이는 것이 상책이다. 늘 적당한 거리를 두고 맴도는 사이라 생각했는데 어느 날 A가 나에 대해 대놓고 칭찬을 한다. 순간 그것이 '빈말'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때가 있다. 상대는 '빈말'로 했을지언정 받아들이는 나는 그것이 빈말일 리 없고 진심이라고 생각하고픈 것이다.


오는 말이 고우면 가는 말도 고와야 한다. 나는 빈말을 생각해내려 애쓴다. 그런데 칭찬할 만한 무언가가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빈말이어서다. 그러니까 빈말이 아닌 말을 찾아야 한다. 정말 내가 느낀 것을 말이다.


"나도 많이 배웠다"는 말이 궁색하게 꾸려진다. 틀린 말은 아니다. A에게서 (소소하게 스치듯) 배울 만한 좋은 점들을 찾아낸 적이 분명 있었다. 딱히 좋지 않은 점들이라고 지적할 만한 것도 없었다. 타인의 단점에서도 무언가 배울 수 있는 것이 반면교사의 미덕 아니던가. 그렇게 따지면 배울 만한 대상, 배울 만한 사안, 배울 만한 심성, 배울 만한 관점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러니까 "많이 배웠다"라는 나의 말은 거짓이 아닌 참이 된다. 빈말처럼 들리지만 빈말이 아닌 참말이 된다. 왜? 그 모든 것에서 배우듯 당신에게서도 배울 점을 찾았어요,라는 나의 믿음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OK. 여기까지는 되었다. 내가 빈말을 하면서도 그것이 꼭 빈말은 아니라고 믿는 이유 말이다.


# 믿고 싶은 빈말

자, 그렇다면 이제 상대방이 내게 한 말을 생각해볼 차례다. 내가 남에게 하는 빈말의 정당화 방식을 똑같이 적용하여 수용할 것인가. 상대도 빈말로 한 말이겠지만 꼭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말은 아닐지 모른다. 나름 (빈말에 대한) 근거가 희박하게나마 갖추어져 있으니 그 위에 모래성이라도 지었을 것이다, 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 작동한다.


아, 여기서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이러한 '빈말-정당화-과정’은 어디까지나 나와 코드가 맞지 않거나 나의 자발적 의도와는 상관없이 의무적으로 칭찬의(혹은 듣기 좋은) 말을 던져야 하는 대상 혹은 상황에 국한된다.


그러니까, 재미있는 점은 이런 것이다. 내가 상대에게 던지는 빈말이 꼭 빈말인 것만은 아니므로 상대가 내게 던지는 빈말 역시 꼭 빈말만은 아닐 것이라는(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는 것이다. 코드가 맞든 아니든.


무수히 날린 직업적 빈말들 중 가장 공허했던 빈말들은 무엇이 있었던가. 아, 셀레브리티들이 있었다. 특히 촬영 현장. 여기서는 상대를 극한으로 치켜 올리는 데 주저함이 있으면 안 된다. 아, 너무 예뻐요, 라든가, 너무 아름다워요, 라든가, 너무 멋지세요, 같은 표현들은 진부하기 짝이 없다. 누가 누가 더 빈말을 창의적으로 할 것인가, 이것이 관건이다.


내가 들었던 '당신 참 예뻐요'라는 문맥에서 최고의 기이한 크리에이티브를 뽐낸 표현은 어느 사진작가가 촬영현장에서 배우 L에게 던진 말이었다. '너무 예뻐서 토할 것 같다'. 상대가 얼마나 예쁘면 몸이 그 심한 충격으로 토할 것 같은 반응을 보이겠는가. 그런 신통방통한 코멘트(빈말)들이 현장을 유쾌하게 만들면 그것은 독특한 미덕이 된다. 아, 나도 저런 크리에이티브한 빈말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은 그래도 못했다. 내가 기껏 할 수 있는 말은 '본인만의 아우라가 있어요' 정도? 적어도 이 말은 진심이었다.


적잖은 셀레브리티들을 보았지만 비주얼만으로 나의 감탄을 자아낸 이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데 그 중 한 명(故장진영)을 만나는 자리에서 나는 인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외쳤다. "아, 광채가 나요!!" 이렇듯 진부한 표현이라니. 하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나의 황홀해하는 표정을 보았다면 그녀도 진심으로 느꼈겠지.


나야 (직업적인 포지션상) 그렇게 (빈말이든 아니든 빈말처럼 들리는 무언가를) 말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상대가 어쩔 수 없이 화답하는 양상으로 던진 빈말에 나는 늘 일관된 자세를 취했던가? 그 일관된 태도는 ‘다 하는 말이지 뭐’ 또는 ‘빈말이라도 좀 성의 있게 하지’ 정도였으나, 간혹(어쩌다가 한번씩) ‘저 말이 그냥 별 생각 없이 하는 말일까 아님 진심일까’ 하고 잠시나마 생각해보는 경우가 있었으니, 그런 경우는 내가 그 사람에 대해 인간적인 호감을 느낄 때가 대부분이었다.


empty-cup.png 믿고 싶은 빈말은 상대에 대한 나의 태도와 관련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별 관심이 없는 상대일 경우 나의 빈말은 좀더 공허해지기 쉽고, 상대가 던진 빈말도 공기처럼 가볍게 흘려 보내게 된다. 그러나 관심이 가고 호감이 느껴지는 사람일 경우 나의 빈말은 (빈말이 아닐 확률이 높아짐은 물론이거니와) 좀더 정교해지기 마련이고, 상대가 던진 빈말을 그러려니 하고 지나치게 되지도 않는다.


그나저나, 나는 오늘 왜 ‘빈말’에 집착하나. 어떤 상대로부터 받은 ‘빈말인 듯 빈말 아닌 빈말’ 때문일 것인데, 그렇다면 그 빈말의 진위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 ‘상대’에 대한 나의 태도가 어떤 것인지 살펴보는 것이 좀더 핵심에 가깝게 다가가는 일일지 모른다.


지금까지 내가 들었던 솔깃한 ‘빈말’들을 생각해보니, ‘믿고 싶었던 빈말’들은 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든) 인정받고 싶었던 사람들로부터 받은 것들임을 문득 깨닫게 된다.


(2017-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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