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어도 없어도 생(生)은 고(苦)
새로 알게 된 J와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야 일상 생활에서 늘 나누는 것일 테지만, 여기서 대화란 이웃과 나누는 일상의 수다나 가십을 제거한, 특정 어느 한 사람이 오래도록 마음에 품고 있는 이야기(상처든 붙들려 있는 생각이든)를 나눈다는 의미 정도로 해두겠다.
우연일 수도, 예감한 것일 수도 있는 자리였다. 생면부지의 타인을 만나 예상한 것일 수도, 혹은 의외의 것일 수도 있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들추어 보면 누구나 각자 자기의 상처를 끌어안고 산다고는 하지만, 그래서 세상은 공평할 수도 있다고는 하지만, 저 멀리서 혹은 높이서 바라본다면 인간이 가진 번뇌의 대다수는 '있음' 아니면 '없음'으로부터 나오는 게 아닐까 싶었다.
부재가 주는 고통. 혹은 있음으로 인해 짊어지고 가야 할 고통의 무게감. 이러나 저러나 삶은 고통을 껴안고 간다. 생(生)은 곧 고(苦),라는 말이 틀리지 않다.
나와 대화를 나누었던 J는 '없음'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었다. 오랜 바람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식이 없는 것. 삶의 상당한 시간을 그 '부재'가 가져다준 아픔으로 괴로워했고, 이제 마음을 비웠다고는 하나 그 아픔은 여전히 진행형인 듯했다. 자식의 '있음'으로 힘겨워하고 있던 내가, 자식의 '없음'으로 괴로워하는 이의 토로를 듣는다.
어디선가 읽었던 글귀가 생각났다. '낡고 보잘것없는 신발을 불평하고 있었는데 발이 없는 사람을 보았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낡은 신발에 대한 불만은 '있음'으로 인해 비롯된다. 그러나 발이 없는 사람에게 그 '있음'의 불행은 무의미하다. 그에게는 발의 '없음'이 문제될 뿐이다. 낡은 신발이라도 꿰 신을 수 있는 사람이 발이 없는 사람보다 행복하다,고 나는 말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문제, 각자의 불행이 가장 크게 체감되기 때문이다.
박완서 선생의 소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이 떠올랐다. 나는 선생의 이 단편을 읽고 조금 울었는데, 소설을 읽고 눈물을 흘린 것은 생애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아들을 잃은 선생 자신의 아물지 않는 고통이 그대로 드러난 소설이기도 했지만, 정작 나를 눈물 짓게 만든 대목은 다음과 같았다.
아들을 잃은 작중 화자 '나'(아무래도 박완서 선생과 겹쳐 떠오르기는 하지만)가 (병든 아들과 단 둘이 사는) 고등학교 동창의 집에 방문하는 장면이다. 사고로 하반신 마비에 치매까지 앓고 있는 아들 병구완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말라빠진 노파'가 되어 버린 친구. 말끝마다 제 아들에게 욕설과 저주를 퍼붓는 충격적인 모습이다. 욕창이 생길까봐 하루에도 몇 번씩 아들 몸을 뒤집어줘야 하는 친구는 그 기골 장대한 육체를 마치 공깃돌 갖고 놀듯 굴리고 주무르면서도 쉼 없이 저주와 욕설을 퍼붓는다. 그러다가 좀 거들겠다고 나선 '나'의 손길이 닿자마자 괴성을 지르고 난폭해진 아들. '나'는 (불행히도 혹은 다행히도) 친구의 얼굴에서 자애를 읽고는, 한동안 잘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린다.
나도 덩달아 환자를 뒤집는 일을 도우려고 손을 내밀었구요. 그러나 웬걸요. 여지껏 흐리멍덩 공허하게 열려 있던 환자의 눈이 성난 짐승처럼 난폭해지더군요. 얼마나 놀랐는지요. 손끝이 오그라붙는 것 같았어요. 그의 흐리멍덩한 눈은 신뢰와 평안감의 극치였던 거였죠. 그때 비로소 악담밖에 안 남은 것 같은 친구 얼굴에서 씩씩하고도 부드러운 자애를 읽었죠. 아이구, 이 웬수덩어리가 또 효도하네, 하는 친구의 말로 미루어 어머니 외에 아무도 그를 못 만지게 한 게 한두 번이 아닌가봐요.
저는 별안간 그 친구가 부러워서 어쩔 줄을 몰랐어요. 남의 아들이 아무리 잘나고 출세했어도 부러워한 적이 없는 제가 말예요. 인물이나 출세나 건강이나 그런 것 말고 다만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생명의 실체가 그렇게 부럽더라구요. 세상에 어쩌면 그렇게 견딜 수 없는 질투가 다 있을까요? (...)
(…) 너무 아프고 쓰라려 울음이 복받치더군요. 저는 드디어 울음이 복받치는 대로 저를 내맡겼죠. 제가 그렇게 많은 눈물을 참고 있었을 줄은 저도 미처 몰랐어요. 제 막혔던 울음이 터지자 그까짓 은하계쯤 검부락지처럼 떠내려가더라구요. 은하계가 무한대건 검부락지건 다 인간의 인식 안에서의 일이지, 제까짓 게 인간 없이는 있으나 마나 한 거 아니겠어요.
(...) 전 그 울음을 통해 기를 쓰고 꾸민 자신으로부터 비로소 놓여난 것 같은 해방감을 느꼈어요. (...) 이제부터 울고 싶을 때 울면서 살 거예요.
- 박완서, <기나긴 하루>,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중에서
“병신 자식이 효도 한다더니……”라거나 “병석에 누운 남편이라도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낫지……”라는 식의 표현을 들을 때마다 섬뜩한 마음에 흠칫하곤 했다. 황량하면서도 서글픈 느낌을 주는 말. 과연 ‘없음’보다는 ‘있음’으로 인한 고통이 그나마 나은 것인가? 있음이든 없음이든, 우리는 견뎌야 할 고통에 한갓 ‘유무(有無)’라는 꼬리표만 달아주고 있는 걸까.
소설 속 화자처럼 폭포 같은 울음을 터뜨리지는 않았지만, 내게 이야기를 들려준 J는 결국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J는 자식의 ‘없음’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나는 자꾸 박완서 선생의 이 소설이 생각났고, 겨우 입 밖으로 해줄 수 있는 말도 이것밖에 없었다.
“괜찮아요. 울고 싶을 때 울면서 살아야죠.”
그네와 헤어지고 며칠이 지나도록 이상하게도 내 머리 속엔 그날의 대화가 자꾸 떠올랐다. 오에 겐자부로도 생각 났다. 그는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심오한 질문에 대해 “읽고 있는 책을 실마리 삼아 내 생활을 쓴다, 아이를 중심으로 쓴다,라는 식으로 써왔어요”라고 답했다. 잘 알려진 대로 그에게는 장애 아들이 있다. 아들에게 지어준 이름은 ‘히카리(빛)’였다. 그는 어디선가 아이의 존재는 자신의 “밝은 면은 물론 어둡고 깊은 면까지 구석구석 비추어주었다”고 밝혔다.
문정희의 시 ‘상처를 가진 사람 – 오에 겐자부로에게’라는 시도 다시 찾아 읽어 보았다.
상처를 가진 사람 - 오에 겐자부로에게
문정희
다리미질하는 아내 곁에서 아직도
잉크로 원고를 쓰는 사람
세계는 그를 노벨상 작가라 부르지만
그를 키운 건 문학이 아니라
장애를 가진 아들이었음을
어젯밤 뉴스에서 보았다
뒤뚱거리는 불구 아들의 손을 잡고
험준한 산봉우리 오르는 동안
장애 아들을 이끄는 아버지의
그 통렬한 힘으로 자신은
저절로 산봉우리에 올라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문학이라 부르지만
그는 깊은 상처를 가진 적은 있다고
조용히 그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먼 옛날 내가 알았던 시인 한 분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도 장애 아들이 있었다.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나는 시인의 시골집을 방문하면서도 그가 시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던 ‘덜떨어진’ 애였는데, 그랬던 나였으니 그의 발달장애 아들을 보고서도 시인 부부가 가졌을 고통을 제대로 인식했을 리 없다. 나는 평화롭게 들어 앉은 시골집이 너무 운치가 있어 좋네 어쩌네 하며 철딱서니 없이 굴다가, 헤어질 때쯤 시인이 멋쩍게 건넨 (자신의) 시집을 물색없이 받아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그때 그 시인의 낡은 시집을 꺼내어 읽으며 왠지 모를 반가움과 서러움에 왈칵 눈물을 쏟았다.
자식의 ‘있음’과 ‘없음’에 대하여 생각하는 시간은 이상하리만치 서럽고도 고요하다.
있음,과 없음,이라는 말. 형이상학적으로 파고 들어가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박완서 선생이 소설 속에서 말한 것처럼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생명의 실체”가 내 주위에 가득하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해야 할 것이다.
오에 겐자부로에게 아들이 ‘빛’이었듯 말이다.
(2016-2-29)
덧글) 한국에 돌아온 이후 J와 연락이 끊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는 자식의 '없음' 자체보다 그 '없음'에 관한 생각으로 고통받았던 것 같다. 최근 어느 이웃 블로그에서 읽은 말이 떠오른다. "고통은 불행 자체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사고하는 데서 온다"라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