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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Mar 30. 2021

내게 안녕

옛 물건과 조우하는 시간

이사 준비로 바쁘다. 창고에 박혀 있던 옛 물건들을 끌어내 정리하다가 발견한 이것. 오랜 세월의 흔적. 중학교 미술시간에 꼬마 인디언을 모티프로 만든 콜라주 작품이다. 집에 굴러다니던 각종 털실과 쇠단추, 천 조각, 잡지에서 찢어낸 반들반들하고 컬러풀한 종이들, 나뭇잎 등이 재료가 되었다. 감각이 나쁘지 않군. 




그리기보다는 콜라주를, 서양화보다는 동양화를 좋아했던 나. 너덜너덜해진 판넬 뒤에 1학년 1반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잠시 80년대 말로 소환. 책과 미술을 좋아했던 10대의 나,라고 하기엔 뭔가 마뜩잖다. 다소 미화된 느낌. 최초로 자의식 과잉에 빠졌던 시기이기도 했고, 위선과 가식, 환멸이나 허영심 같은 다소 미묘하고도 곤란한 감정들을 감지한 시절이기도 했으니. 어쩌면 내 인생의 화양연화는 10대였는지도 모른다. 아니다. 화양연화는 늘 지금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기로 했지. 


몇 번의 해외이사에도 살아 남은 과거의 유물. 오래된 물건과 조우하는 시간은 늘 지금을 일깨운다. 그 많은 순간들이 쌓이고 이어져 지금의 내가 있구나, 하는.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인사를 건넨다. 10대의 나에게, 20대의 나에게, 30대의 나에게, 그 모든 나의 총합인 지금의 나에게. 그리고 나를 이끈 모든 사람들, 모든 것들에게. 


안녕! 


(20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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