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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Jun 08. 2020

새로운 소설을 찾아서

파괴에서 재건으로 

어디선가 얇은 인쇄물이 툭 하고 떨어졌다. 아이의 흐트러진 책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촌스러운 제본 표지엔 미셸 뷔토르(Michel Butor)의 <L'essay sur le roman>이 적혀 있다. 어쩌다가 아이의 학습만화 시리즈 사이에 이 책자가 끼어 있던 걸까. 이삿짐 쌀 때 정신없이 섞여 들어간 것일 테지.


대학 시절 누보 로망을 배울 때 참고했던 미셸 뷔토르의 소설론


누보 로망을 배울 때 참고했던 책자인 듯하다. 미셸 뷔토르의 소설론이다. 당시 번역본이 없어 쩔쩔매며 원문을 들여다보았을 것이다. 검색해보니 1996년에 문지사에서 <새로운 소설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나 보다. 물론 지금은 (아쉽게도) 절판되었다.


괜히 입맛을 다시며 목차를 살펴본다. 1장 '탐구로서의 소설'과 6장 '소설에서 인칭대명사의 사용', 그리고 8장 '소설 기법에 대한 탐구'가 눈에 들어온다. 내가 가지고 있는 원문 중 가장 어수선하게 깔짝대며 흔적을 남겨 놓은 부분도 이 '인칭 대명사'에 대한 장(L'usage  des pronoms personnels dans le roman)이다.


망각의 세계로 건너간 프랑스어들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가볍게 한숨이 나온다. 한때 별다른 노트를 달지 않고서도 밑줄을 치며 원문을 읽었던 시절이 있었던가. 있었던 모양이다.


전형적인 소설 양식의 테두리 밖으로 나를 안내하고 유혹했을 내용들. 모국어가 아니어서 더욱 심란했을 해독상의 난제. 그러나 나는 기꺼이 탐독했음이 틀림없다.

새로운 소설을 찾아서, 새로운 무엇을 찾아서. 어쩌면 새로운 무엇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그 어떤 것이라도 찾아서. 불안정한 자아의 상을 깨뜨리도록 돕는 그 무엇을 찾아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깨뜨리는 데 성공했던가? 혹은 깨뜨려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라도 했던가?


나날이 유연해져야 할 텐데 나날이 견고해지는 내 안의 성벽을 확인한다. 그 어떤 바람에도 갈대처럼 휘어야 할 텐데, 지금의 나는 내진 설계가 덜 된 (그리고 낡아가는) 40층 빌딩과도 같은 느낌이다.


부러지기보다 휘는 게 낫다,는 프랑스 속담이 괜히 있겠는가. 그래야, 아무리 낮게 휘어도 다시 허리를 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래야, 뭐라도 새롭게 찾아 나설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게 소설이든 삶이든.     


(2016-6-22)


*김영하의 첫 장편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읽은 것도 1996년이다. 판테라의  I'm broken을 들었던 것도 그 즈음의 일이다. 파괴,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시절. 나는 요즘 재건,에 대해 관심이 많다.


https://youtu.be/2-V8kYT1pvE

Pantera의 I'm Broken. 들끓는 마음으로 듣던 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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