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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Jun 11. 2020

나는

'나'라는 말

@한국

아이가 어렸을 적 상담을 갔다.

아이의 상담을 위해서는 엄마도 상담을 해야 한다고 했다.

길고 긴 객관식 설문지를 마치고 일대일로 상담가와 마주 앉았다.  

내게 다시 종이를 내밀었다. 이번엔 주관식?

나는 (              )이다.


나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후딱 한 글자를 적어넣었다.

나는 ( 나 )이다.



@베트남

몇 년 뒤,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읽었다. 첫 문장에서부터 흔들렸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몸으로 미리 체감한 문장을 정언 명령으로 듣는 느낌이랄까.



@대만

다시 몇 년 뒤, 나는 두 문장을 동시에 적어본다. 어느 날 아침 불현듯.

나는 나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다시 며칠 뒤, 커피를 사러 가는 차가운 길 위에서 잠시 생각한다.


내가 나를 버리지 않아 (아니 버리지 못해) 아직
나는
아무것도 아닌 내가 되지 못하고 있구나


라고.



@다시 한국

우연히 심보선의 시 <‘나'라는 말>을 듣늗다. 그리고 그의 시집을 찾아 다시 읽는다. 그의 두번째 시집 <눈앞에 없는 사람>에 실린 시이다.


나는 나라는 말을 썩 좋아하진 않습니다
내게 주어진 유일한 판돈인 양
나는 인생에 나라는 말을 걸고 숱한 내기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아주 간혹 나는 나라는 말이 좋아지기도 합니다
어느날 밤에 침대에 누워 내가 나라고 말할 때
그 말은 지평선처럼 아득하게 더 멀게는 지평선 너머 떠나온 고향처럼 느껴집니다
나는 나라는 말이 공중보다는 밑바닥에 놓여 있을때가 더 좋습니다
나는 어제 산책을 나갔다가 흙길 위에 누군가 잔가지로 써놓은 '나'라는 말을 발견했습니다
그 누군가는 그 말을 쓸때 얼마나 고독했을까요
그 역시 떠나온 고향을 떠올리거나 홀로 나아갈 지평선을 바라보며 땅 위에 나라고 썼던 것이 겠지요
나는 문득 그 말을 보호해주고 싶어서 자갈들을 주워 주위 에 빙 둘러 놓았습니다
물론 하루도 채 안돼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어서
혹은 어느 무심한 발길에 의해 그 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요
나는 나라는 말이 양각일 때보다는 음각일 때가 더 좋습니 다
사라질 운명을 감수하고 쓰인 그 말을 나는 내가 낳아본 적도 없는 아기처럼 아끼게 됩니다
하지만 내가 나라는 말을 가장 숭배할 때는
그 말이 당신의 귀를 통과하여 당신의 온몸을 한바퀴 돈 후,
당신의 입을 통해 너라는 말로 내게 되돌려질 때입니다
나는 압니다
당신이 없다면 나는 나를 말할 때마다 무(無)로 향하는 컴컴한 돌계단을 한칸씩 밟아 내려가겠지요
하지만 오늘 당신은 내게 미소를 지으며 '너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지평선이나 고향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지만
나는 압니다
나는 오늘 밤 내게 주어진 유일한 선물인양
너는 말이야 너는 말이야를 수없이 되뇌이며 죽음보다는 평화로운 잠속으로 서서히 빠져들 것입니다


무수히 적어본 단어 '나'라는 말. 다시 적는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너'로 인해 '무엇'이 될 수 있구나

라고.


(202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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