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에 대한 아주 사적인 이야기

어쩌다 다시 쇼팽

# 쇼팽을 싫어했던 아이


어렸을 적 꾀병이라는 것을 별로 부려보지 않았지만 한 가지 예외는 있었다. 바로 피아노! 피아노 치기 싫어서(좀더 정확히 말하면 학원 가기 싫어서) 배가 아프다고 하기도 하고 머리가 아프다고 하기도 했다. 12살짜리 꼬마애가 펼칠 수 있는 연기력이 뭐 그리 훌륭했을까. 눈치 빠른 엄마는 도통 속아넘어가 주지 않았다. 생각다 못해 어느 겨울, 이마를 난로 가까이에 한참을 대놓고 엄마에게는 열이 난다며 학원을 빠지기까지 했던 기억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부터 난다. 그토록 학원 가기 싫어했던 이유. 그 절정엔 쇼팽이 있었을 것이다.


(요즘도 비슷한지 모르겠지만) 피아노 교본의 정석은 바이엘로 시작하여 하논, 체르니 100번, 체르니 30번, 체르니 40번, 체르니 50번 순으로 나아간다. 물론 중간 중간 소곡집이나 명곡집 같은 것들을 적절히 섞어서 ‘연주’의 느낌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체르니 50번 정도에 이르면 소위 작곡가의 이름이 붙은 연주곡에 도전하게 된다. 쇼팽, 베토벤, 슈베르트 뭐 이런 식이다. 초등학교 5학년 말 무렵 체르니 40번을 마치고 체르니 50을 치네 마네 하던 차에 쇼팽의 에뛰드나 녹턴 같은 곡들을 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의 쇼팽 입문은 녹록지 않았다. (재능이 없는 것이 틀림 없는) 나 같은 어린 아이에게 쇼팽의 난해한 악보는 고등학교 언니 오빠들이나 풀 법한 수학공식만큼 어렵게 느껴졌다.


게다가 무서웠던 피아노 선생님도 한몫 했을 터이다. 피아노 선생님,이라 하면 젊고 상냥한 여자 선생을 상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당시 나를 가르쳤던 선생님은 머리가 허옇게 센 (실제 나이는 가늠이 안 된다) 엄격한 남자 선생님이었다. 상당히 실력 있는 선생님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고 엄마가 이야기해주었)지만 내게는 어렵고 무서운 호랑이 선생님일 뿐이었다. 연습을 잘 해오면 볼에 뽀뽀를 해주고(그것도 싫었다) 연습을 제대로 안 해 자꾸 틀리면 고함을 지르거나 자 같은 막대기로 손등을 탁탁 내리치곤 했다(그것은 더욱 싫었다). 영화 <위플래시Whiplash>에서 학생들을 극한까지 몰아붙여 학대(?)하는 플렛처 교수의 모습을 통해 어렸을 적 피아노 선생님을 얼핏 떠올린 것은 (물론 다소 비약이 있겠지만) 우연이 아닐 것이다.


도통 진척이 없는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던 선생님은 어느 날 신선한 방법을 썼다. 요즘 말로 하면 소위 ‘자기주도학습’ 정도 되려나. 무지막지하게 커다란 오디오가 있는 방으로 나를 데리고 가더니 쇼팽의 두 곡을 들려주었다. 하나는 조용하고 느린 곡(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환상 폴로네이즈였던 것 같다)과 열정적이고 빠른 곡(즉흥 환상곡)을 들려주고는 고르라고 했다. 초반부터 몰아치는 즉흥 환상곡에 나는 멍해져서 이 곡을 고르겠노라고 냉큼 대답했다. 그리고 곧 후회했다. 쇼팽의 곡은 들을 때 그리도 아름답고 서정적인데 내게는 넘기 힘든 산이었다. 도대체 샾이 몇 개고 플랫이 몇 개더냐. 마디 하나의 음을 짚기 위해서도 나는 수학 공식을 외듯 좌뇌를 굴려야 했다. 마음은 멋지게 즉흥 환상곡을 연주하고 싶었으나 몸은, 아니 내 손가락은 영 따라와주지 않았다. 어떤 계기로 그만 두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 이후로 나는 피아노를 치지 않게 되었다. 쇼팽도 기억 속에서 멀어졌다. 그 남자 선생님과 함께.


성인이 되어서도 클래식 음악보다는 다른 장르의 음악을 즐겨 들었지만, 차이코프스키나 라흐마니노프 같은 러시아 낭만주의 음악들은 참 좋아했다. 그런데 왠지 쇼팽이나 슈만, 슈베르트, 브람스와 같은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들의 곡들은 잘 듣지 않게 되었다. 강렬하고 드라마틱한 스케일이 느껴지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른다. 다소 따분하고 매력 없다 생각했을 수도 있다.



# 어느날 다시 돌아온 쇼팽 - 전주곡


그러던 어느 날, 싱가폴의 어느 서점에서 책을 보고 있을 때였다. 쇼팽이 들렸다. 잔잔하게 깔아놓은 서점의 배경음악이었다.

어, 이게 뭐더라. 나는 책을 고르다 말고 잠시 서서 그 곡에 귀를 기울였다. 에뛰드(Etude 연습곡) 아니면 프렐류드(Prelude 전주곡) 같은데. 생각이 날 듯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맴도는 생각 때문에 궁금증이 점점 더 커져갔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어느 곡인지 알고 싶어 안내 데스크에 가서 물어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책 안내 코너에서 배경음악 제목을 묻는 최초의 손님이 되었으리라.)

집에 돌아올 때까지 머리 속을 뱅뱅 도는 그 곡 때문에 다소 성가시기까지 했다.

자, 찾아보자. 나는 오기가 생겨 12개의 에뛰드(작품 25)를 뒤졌다. 없다.

또 다른 12개의 에뛰드(작품 10)도 뒤졌다. 없다.

아주 짧은 곡이었으니까 전주곡일 확률이 높다. 24개의 프렐류드(전주곡)를 뒤졌다. 있다!

24개의 전주곡 (작품 28) 중 4번 마단조 곡이었다.

2분밖에 안 되는 이 짧은 곡을 찾느라 덕분에 나는 쇼팽의 음악들로 다시 안내되는 은혜(?)를 입었다. 12개의 연습곡(작품 10) 중 6번(내림 마단조), 12개의 연습곡(작품 25) 중 5번과 11번(가단조, 일명 ‘겨울바람’)을 다시 만났는가 하면, 24개의 전주곡 중 20번 다단조에 젖어 들었다.


https://youtu.be/Tovh6JjaQ1A

https://youtu.be/jUbd6ADaE7w


# 크리스티안 짐머만과의 마주침 - 발라드


그리고, 운명처럼(?) 크리스티안 짐머만Krystian Zimerman을 만나게 되었다. 불과 몇 년 전 일이다. 어느 비 오고 천둥 치는 날. 몸이 아파 아무것도 못 하고 침대에 누워 있다가 들려오는 음악에 마치 접신(接神)이라도 하듯 벌떡 일어나 누구의 연주인지를 살폈다. 크리스티안 짐머만이 연주하는 쇼팽의 발라드 1번이었다. 그후 그의 연주에 빠졌다. 쇼팽의 곡들은 주로 에브게니 키신이나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마르타 아르헤리치, 마우리지오 폴리니를 통해 듣지만, 크리스티안 짐머만이 연주하는 발라드 곡 특히 1번과 4번은 단연 (물론 개인적으로) 최고로 치고 싶다. 그의 루바토(rubato)는 참으로 시적이어서, 쇼팽이 살아 있다면 꼭 그처럼 연주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아마 베트남의 우기가 지나가는 계절 내내 들었을 것이다.


https://youtu.be/Ce8p0VcTbuA

https://youtu.be/pe-GrRQz8pk


마주르카는 평생 고국 폴란드를 그리워했던 쇼팽이 천착했던 장르이다. 50개가 넘는 마주르카 곡을 작곡한 것만 보아도 폴란드 전통 무곡에 대한 그의 애정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 연주하는 작품 33의 4번 나단조가 듣기 편안하다.


https://youtu.be/Gj-xTzKYq8g


쇼팽의 네 개 스케르초Scherzo 중에서는 2번이 가장 좋다. 언제부터인지 ‘스케르초는 키신’이라는 (물론 내 맘대로의) 공식으로 그의 연주를 즐겨 듣는다. 격렬하면서도 고뇌하는 햄릿의 모습에 비유되기도 하는 곡이다.


https://youtu.be/CZiixxyN7tE


피아노 소나타 2번은 또 어떠한가. 쇼팽의 곡이 지나치게 서정적이고 유약하여 권태에 빠진 귀족들이나 들을 만한 음악이라고 모욕을 주거나, 튼튼하고 건강한 정신을 병들게 한다며 비판했던 (일부 몰지각한) 이들의 평에 일격을 가하는 듯하다. 고요하면서도 비장한 힘이 느껴진다. 특히 3악장 ‘장송행진곡’은 소나타 2번 작품의 별칭이 될 정도로 유명해졌다. 섬세하면서도 힘이 넘치고 열정적인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연주가 특히 좋고, 군더더기 없이 단정하고 학구적(?)인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연주도 좋다.

https://youtu.be/y0mAbw-niI8


쇼팽 하면 녹턴(야상곡)을 빼놓을 수 없고, 그 중에서도 작품 9의 2번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녹턴의 대명사가 되었다. 하지만 아름답기로는 작품 9의 1번이나 녹턴 20번(C#단조)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아름다움에도 탁월함이 있다면 바로 이러할 것이다. 다니엘 바렌보임이나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의 섬세한 연주도 참 좋다.

https://youtu.be/m5qeuVOIbHk


# 일상의 시인, 쇼팽


쇼팽의 음악을 단순히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하기엔 모자람이 있다. 순간의 악상, 자유로운 표현, 깊은 사색, 조용한 자기 성찰, 고요한 집중력, 섬세한 선율, 넘치는 열정, 정교한 기교, 이 모든 것이 쇼팽을 설명할 수 있는 말들이리라. 그의 음악을 듣다 보면 그가 ‘일상(日常)의 시인(詩人)’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거대한 스케일, 박진감 넘치는 구성, 비르투오소의 화려함은 없어도,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의 친밀감과 사랑을 담을 줄 아는 그의 음악은 들을수록 시적(詩的)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에 ‘시적 상상력’이라든가 ‘시적 감수성’이라든가 하는 표현이 빠지지 않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말은 그 얼마나 적확한 말인가.


한국의 친정 집에는 어렸을 때 사용한 피아노가 아직도 놓여 있다. 엄마가 심사숙고하여 고른 버건디 컬러의 커다란 피아노. 치는 사람이 없다 보니 조율한 지도 오래되어 이제 건반을 누르면 거의 중세의 오르간 소리가 울리는 수준이다. 잡동사니를 올려놓는 애물단지가 된 지도 한참 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이 덩치 큰 추억의 코끼리를 이제 그만 보내주자는 나의 의견에 아버지는 그럴 수 없다며 고집을 피우신다. 맙소사, 당신의 손자가 할머니의 유품을 물려받아 이용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예전, 엄마의 (나에 대한) 소박한 소망과 다르지 않다니. 흐뭇한 모습으로 딸내미가 연주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 때로 손님이 오면 자랑스레 보여주기도 하는 것 말이다. 지금 열심히 배워 두면 나중에 피아노 선생이라도 하면서 밥 벌어 먹고 살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 엄마의 지론이기도 했다. (보험 설계사 같은 꼼꼼하심)


지금 나는 피아노 선생은커녕 쉬운 피아노 악보조차 제대로 연주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피아노에 손도 안 댄 결과이다. 음악 듣는 것은 좋아했으면서 피아노 치는 것은 그토록 싫어했던 나의 인자가 어디로 갔겠는가. 어려서부터 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려던 나의 노력은 벌써부터 부질없는 것으로 판명이 났다. 피아노를 잠시 그만 둔 아이는 불과 몇 년 만에 빛의 속도로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요즘 음악 시간에 건반을 배운다는 아이 말에 악보를 보며 음계를 정확히 짚는 것 정도는 연습시켜 주려 애를 써보았으나 소용 없는 일이었다. 음악 듣는 것은 그토록 좋아하는 아이가 악기 다루는 것에는 영 소질이 없다. 차마 화를 낼 수도 없는 이 동병상련에 나는 차라리 측은지심을 갖기로 했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모양이다. 다 때가 있다는데. 어느 때라도 발현되어 본인이 몰입하여 즐기면 좋은 일일 텐데, 그게 너무 늦은 때라면? 살면서 너무 늦은 때란 없다,는 견고한 위안의 말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 그게 꼭 현실적인 말만은 또 아니어서 말이다.


예컨대, 이제 와서 쇼팽의 곡에 다시 한번 도전해볼까 하는 생각이 슬쩍 드는 것. 어릴 적에는 쇼팽 때문에 도망 다니다가 이제는 자진해서 쇼팽을 찾고 있으니, 인생 참 재미있기도 하다.


안 되는 것이 될 수는 없나. 아니, 어쩌면 될 수 있는지도 모른다. ‘하면 된다’라는 슬픈 진실은 어디에서고 나타나 체념하고픈 사람들을 닦달하곤 하니까.


타고난 열망이 타고난 재능보다 앞설 때, 열망은 어느 정도까지는 재능을 일정 수준으로 끌어올려주는 견인차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틀간의 폭우 속에서 (이상한 관성으로) 짐머만이 연주하는 쇼팽의 발라드 1번을 다시 찾아 듣는다. 역시 완벽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무서워했던 피아노 선생님과 크리스티안 짐머만이 어딘가 좀 닮은 구석도 있는 듯하다. 날카로운 실루엣과 예민한 성격. 그 선생님은 이제 할아버지가 되셨을 텐데 아직도 까칠한 성격 그대로이신지. 당시 쇼팽 연습에 속수무책이던 여자애가 이제 쇼팽을 많이 좋아하는 아이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게다가 그 아이도 피아노 치기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면 어떤 표정을 지으실지.


이틀간 그렇게 퍼부었으면서 오늘 또 비가 온다.

어째 이번에도 우기가 끝날 때까지 쇼팽을 달고 살 듯하다.


(2015-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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