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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는 고마웠어 Nov 12. 2018

[공사 시작 27일째] 술집 선택과 주인장의 외모

- 11년차 회사원 술가게 창업기 (2018. 11. 11.)

우리는 어떤 기준에서 술집을 선택해서 갈까. 


여자 친구들과 서로 바를 추천할때는, 여기 가봤어...? 분위기가 이렇구 (사진 전송), 주방에 둘러 수다떠는 느낌/ 야외에 앉아서 소풍온 느낌 ... 느낌이야. 안주도 맛있는거 있는데, 치즈 곶감이/ 톳구이 가루를 뿌린 김말이가 특이해... 대체적으로 이 순서 같다. (물론, 거기 주인장 진짜 잘생겼어. 야야 가자 가자... 이런 친구들 없는거 아니다.) 


출신이 공대이다보니 남자 선배/친구/후배들과 술을 마실 일이 더 많다. 이들과 바를 정할때는 젤 우선은, 야 가까운데 가자 이다. 담으로는 거기 알바 예뻐? 이고, 후배들과 만날때는 아무데나 누나 편하신데로 가요(장소가 중요한가요 어디든 많이 마셔드릴 수 있어요). 이 정도이다.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분위기 좋은 술집 있다며 추천하는 남자 사람은 딱 두 명 만나봤는데, 한명은 술마시러 일본까지 다녀오는 사케/와인 매니아 후배 정수. 또 한명은 언제 일하고 언제 저리 놀러다니시나, 강남 강북 모르는 곳이 없어 항상 감탄스러운 진영 선배. 


"언니, 우리 가게는 어떤 손님들이 선택해주면 좋겠어?"

"은하야 나는 젊은 손님들도 왔다가 갈 수 있는 곳이면 좋겠지만, 나이 든 손님들도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곳이면 좋겠어. 화려한 안주로 손님을 유인해서, 한 두 잔 마시면 손 발이 붓는 와인을 파는 그런 곳은 절대 아니고 싶어." 

"돈있는 손님이라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 비싼 와인 파는 가게를 하겠다는건가?"

"음... 사실 그것도 나쁘진 않은데, 그보다는 바람이 불어도 괜찮다. 혼자 있어도 괜찮다. 토닥토닥 해주는 바."

항상 보이는 시원시원한 모습과 달리 가끔 비치는 태희 언니의 이런 감성적인 점도 좋다. 


"그럼 손님들은 우리 바의 어떤 점이 맘에 들어서 다시 오게 될까?"

"아무래도 내 외모 아닐까 ㅋㅋ 내가 말이지 대학교 2학년 절정일때 외모가 대단했지. 지금도 상당하지만."

역시 태희 언니의 진지함은 3초를 넘기 어렵다. 


우리 술가게에서는 저녁 식사 전부터 우리 술가게에 찾아 와주시는 분들을 위해서는 이른 시간의 해피 아워를 둘 생각이다. 해피 아워에는 음주 전 속을 채울 수 있도록, 해피 아워 특선 장조림 버터 비빔밥과 명란 덮밥, 그리고 스팸 김치 덮밥을 제공하려고 한다. 


그리고 꼭 짜파게티를 내놓고 싶다. 루프탑 와인펍에 짜파게티가 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계란 반숙 얹은 짜파게티의 부드러움과 감칠맛 그리고 약간 점도 있는 짭조롬한 맛은 음주 전에도 음주 후에도 마음에 꽂히는 선택. 


구체적인 메뉴는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껍질은 약간 견고하게 속은 녹아 내리도록 구워낸 뒤 꿀을 아낌없이 둘러주고, 말린 무화과, 건포도, 아몬드를 얹어서 내는 브리 치즈 구이가 빠질 순 없다. 잘게 썬 양파에, 푸른 올리브를 넣고, 테르페닉한(와인업계에서는 요렇게 표현한다고 해서 써보았으나, 사실은 미나리향 난다는 것 뿐인) 파슬리를 듬뿍 얹은, 상큼하게 입맛 도는 연어 마리네도 필수. 물론 소주방, 호프, 와인바 가리지 않고 술가게라면 모름지기 두툼하게 썰은 황도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양심적으로 최선을 다해 고른 주류 리스트. 부담스럽지 않지만 맛스러운 안주. 그리고 편안하고 충전되는 인테리어. 손님들이 이걸 알아봐주고 다시 찾아주고, 지인들도 언제든 들러주면 정말 좋을 것 같아, 은하야."


친구들에게 좋은 일 있으면 축하해 줄 수 있는 바, 입사 동기들과 회사생활의 어려움을 조용히 토로할 수 있는 바, 은근하고 깊은 울음을 남몰래 넘길 수 있는 바. 그리고 문득 한번 들려서 재충전 하고 싶은 바. 


손님들에게 그런 술가게면 좋겠다. 


[공사 진행 현황 - 인테리어 공사 곳곳의 열띤 토론의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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