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님에게 필요한 최적의 리듬과 영양 섭취
2번째 항암을 마치고, 가은이 몸무게가 급격하게 줄기 시작했다. 치료 초기엔 10.8kg로 정도였는데, 항암 후 일주일간 못 먹으니 어느새 9.5kg다. 딱 폭풍 성장기라는데, 이 시기에 항암치료를 받게 되어 괜히 성장에 지장이 생기는 건 아닌지 정말 걱정이다. 그리고 통통한 아이의 방긋한 미소가 얼마나 달콤한지, 우리는 20개월간 봐 왔기에 엄청 많이 속상하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가 가은이를 위해 옆에 있지 않은가? 우리 모두 휴직해서 온전히 가은이에게 쏟아부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이제부터라도 잘 살리면 되는 것이다. 장기간의 투병생활에 맞서기 위해, 제일 먼저 가은이에게 최적화된 리듬을 찾아주기로 했다. 항암치료에도 몸이 잘 버틸 수 있게, 충분한 영양섭취와 가은이에게 맞춘 체계화된 요양 환경이 가장 먼저 필요해 보였다.
<아침>
일어나면 곧바로 가은이 체온체크.
몸에 좋은 과일로 식이섬유를 보충하고
항암에 좋다는 재료들로 준비하는 아침 식사
아빠는 온 힘을 다해 요리를,
엄마는 온 정성을 다해 밥을 먹인다.
그리고 아침 먹고 절대 잊어서는 안 될 투약.
<점심>
계란 프라이로 엄마 아빠는 얼른 배를 채우고
곧바로 다가올 점심을 푸짐하게 먹이기 위해
아빠는 다시 온 힘을 다해 고단백 요리를,
엄마는 다시 온 정성을 다해 밥을 먹인다.
회복을 위해 바로 낮잠모드로 집 분위기를 바꾼다.
<오후>
가은이가 낮잠을 자는 동안 밀린 집안일과
소독 후 우리도 밥을 먹고 있으면
어김없이 가은이가 일어나 우리를 찾았고
곧바로 간식을 준비해 가은이에게 주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공주님을 위해
엄마는 신데렐라 책을 즐겁게 읽어준다.
<저녁>
어김없이 저녁 식사 시간이 오고
아빠는 마지막으로 온 힘을 다해 요리를,
엄마는 마지막으로 온 정성을 다해 먹인다
그리고 또다시 절대 잊어서는 안 될 투약.
구내염 방지를 위해 철저하게 양치질을 한 후
회복을 위해 가은이의 통잠모드를 준비한다.
<밤>
지친 부모는 내일의 에너지 보충을 위해
영양가 높은 저녁 식사로 마침내 포만감을,
지치고 경직된 몸엔 샤워로 피로를 달래준다.
침대에 누워 Soul 대화로 솔직한 감정들을
공유하고, 눈꺼풀이 감기기 전 위로의 포옹을
나누며 부모의 하루를 끝낸다.
엄마, 아빠 2명이 나눠서 해도 꽤 힘든 스케줄이지만, 둘이 함께하기에 더 힘이 난다. 그리고 힘들 때 내게 힘을 주는, 그래서 내가 더 좋아하는 표현이 유독 많이 생각난다.
When life gives you a lemon,
You make a lemonade.
삶의 고난을 의미하는 레몬. 언젠가 한 번씩 찾아오는 고난의 레몬을 달달한 레몬 에이드로 만드는 건, 다 우리 각자의 몫이자 능력이다.
사실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레몬의 크기와 쓴맛에 압도 당했었지만, 이제는 나도 조금씩 조금씩 그 무게를 딛고 일어서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전의 힘들었던 경험들이 하나씩 모여, 이 순간을 버틸 수 있는 기반을 다져준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누구보다 가은이가 힘을 내주고 있다. 힘든 여정 중에도 조금씩 아픈 부위를 언급하며 부모와 소통해 주고, 이제는 약도 본인 스스로 먹으려 노력한다. 그리고 엄마 & 아빠가 지칠 쯤에는 무한 뽀뽀를 발사해 우리 에너지를 충전해주고, 장난감 주사와 청진기를 병원에 들고가 병원놀이를 즐겨주는 모습이 참 고맙다.
결국 우리 가족에게 이 투병과정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지금부터라도 이 과정들을 가은이와 함께 온전히 즐기고 싶다. 힘들지만 서로 웃어가며, 우리 가족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와 숨겨진 가치'를 찾아가는 삶.
Yes, We Can Do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