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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식을 향한 부모의 이기심

내 아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아이도 소중하다

by 가은이 아빠

어김없이 다가오는 다음 치료 스케줄, 이번에는 전신 항암이다. 하지만, 표적항암으로 가은이의 고통이 얼마나 감소할 수 있을지를 봤기에 자꾸 병원 가기가 싫어진다.


병원이 마치 가은이를 괴롭히는 곳이라는 무의식이 자리 잡았는지, 아니면 전신항암 후 매번 응급실을 간 상황이 반복될까 봐 두려운 것인지 아무튼 너무나 가기 싫다. 어른이 된 나도 이렇게 가기 싫은데, 치료를 받는 가은이는 얼마나 싫을까?


그래서 그런지, 계속 가은이에게 치료 효과가 좋은 표적항암만을 시켜주고 싶다. 전신항암을 하면 키나 몸무게 등 성장에도 악영향을 주기에, 아무리 봐도 표적항암이 최적인 것 같다. 하지만 모든 환자들이 매번 받을 수는 없는 게 냉정한 현실. 의료인력과 스케줄 등 복합적 요인 때문에 한정된 횟수만 받을 수 있는 치료기에


결국 한 아이가 혜택을 보면,
다른 아이는 그 혜택을 보지 못한다


지금의 상황을 계속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내 마음에서, 자꾸만 이기적인 상상을 떠 오르며 가정에 가정을 하게 된다.


다른 아이의 스케줄을 조정하면 가은이가 더 빨리 받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가은이 부작용이 크니까, 한 번만 조정해 달라고 얘기를 해볼까?




자꾸만 생기는 쓸데없는 잡념들모여 하나의 집착을 만들어 갈 때쯤, 다행히도 사로잡힌 생각들의 강도가 약해지며 조금씩 균형을 맞추어 준다.


가은이는 다행히 치료를 시작했고, 종양의 크기가 줄어들고 있잖아

어린아이들 폭풍성장기에 종양이 커지는 속도가 엄청나다는데 신규 환아들까지 포함해서 긴급도를 따지는 게 맞지

그리도 무엇보다 가은이도 치료 잘 받고, 다른 아이들도 치료 잘 받아서 모두 다 같이 건강해져야지


살짝 정신을 차려보니, 이제야 마음정리가 된다. 아이를 향한 '부모의 이기심' 다른 아이들은 고려 못하고, 순간 내 새끼만 생각해 버렸다.


"나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같이 가면 멀리 간다"


이 아프리카 속담처럼, 혼자 빠르게 가는 것보다 다 같이 멀리 가는 것이 더 가치 있는 것 아닐까? 함께 사는 이 세상에서, 나만 잘되는 법보다 함께 잘 사는 법을 가은이에게 알려주고 싶다.




그리고, 명심해야 할 건 이번에도 가은이는 건강해지려고 병원에 가는 것이다. 마음을 다 잡고 병원에 도착해 보니, 의사 선생님과 간호 선생님을 보며 가은이가 해맑게 웃는다. 이제 병원이 제법 익숙해진걸 보니 나도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진다.


어쨌든 전신항암을 받아야 하기에, 치료가 시작되기 전에 와이프와 함께 얘기를 나눠보았다. 전신항암을 하면 가은이는 항상 장에 문제가 생겼기에,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방법을 써 보기로 했다. 항암 중에 밥도 약도 거부하는 가은이를 보며 안타까워 억지로 약을 먹이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치료 중에 예방차원에서 변비약을 미리 먹여보기로 했다.


두 번째 항암 후, 배에 가득 찬 가스 때문에 가은이는 아래 방향으로 전혀 숙이지 못했었다. 숙이면 배가 압축되어 강한 통증이 수반되었기에, 결국 스스로 아무것도 못해 떨어진 장난감을 우리에게 주워 달라던 모습이 아른 거린다. 그래서 이번에는 응급실에 실려간 상황을 꼭 막아주고 싶다.


3박 4일간의 항암 치료를 진행하며, 가은이의 강렬한 저항에도 우린 약을 강제로 투여했다. 두 손 잡고 입을 벌려 억지로 먹이는 순간 측은하고 안쓰러운 감정이 올라오지만, 부모는 정확하고 냉철하게 판단할 역할을 해줘야 했다. 다행히 새로운 시도가 잘 먹혀 가은이는 이번 항암 후 일주일간 밥도 못 먹고 힘들어했지만, 저번처럼 응급실에 가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항암 부작용이라는 큰 틀을 없앨 수는 없지만, 우리 부부는 경험 안에서 지혜를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을 드디어 찾아냈다. 결국 우리에게 처한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그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지는 것 같다. 상황을 바꿀 수 없더라도 그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존재한다. 그리고 하나 하나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먼저 현재의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이번에 깨달았다.


아이를 위한 부모의 이기심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고 그 힘들이 모여 아이에게 무한의 사랑을 쏟아부을 수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 이기심에만 매몰된 상태가 지속되면 그것은 위험한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 아이들이 그것을 보고 자랄 테니까! 아직은 부족한 아빠지만, 얼른 성숙한 아빠가 되어 가은이에게


이 세상과 함께 더불어 사는 법


을 선물해 주고 싶다. 아빠가 점점 더 어른이 될 수 있도록 여러 계기들을 만들어줘서 고마워 가은아!


< 우리 모든 아이들이, 얼른 맘껏 뛰어 놀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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