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이기는 건 두려움이 아니라 웃음이었다
암 완치자의 모임에서 힘과 용기를 얻고, 5번째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하였다. 병원에서 가은이가 심심하지 않게 장난감과 책을 캐리어에 가득 채워 나름 긍정적으로 도착하였는데, 정말 생각지도 못한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말로만 듣던 표적항암의 부작용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안구 내 출혈 또는 안검하수가 생기고
망막박리, 백내장 또는 사시가 오기도 하고
심지어는 종양이 터져 안구가 돌출되는 경우까지
의술의 발달로, 가은이가 혜택만 보는 줄 알았는데 효과가 좋은 만큼 부작용도 엄청나다는 것을 병원에서 내 눈으로 목격해 버렸다. 불과 몇 주 전에는 이 시술만 받고 싶었는데, 정말 이 세계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사실들을 알고 난 후 미친 듯이 불안해졌지만..
가은이는 잘 치료받을 거야
라는 말을 머릿속에 되새기며, 내 마음속 불안을 진정시켜 보았다. 입원 시 보호자는 1명만 상주할 수 있기에, 나는 가은이와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바로 부작용에 대해 폭풍검색을 시작하였다. 정보가 많아지면 마음이 더 안정될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머릿속이 터질 것 같았다. 잠도 오지 않고 다음날 치료가 너무 걱정되었다.
부작용 최소화를 위한 표적항암이 치료 효과만큼 위험한 전혀 다른 부작용을 가졌다는 것
그리고 그 부작용이 실제 생겼을 때 부모들의 마음이 찢어진다는 후기들을 보니 감당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침대에서 계속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 쉬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며, 늦게라도 내가 불안하다는 걸 인지하였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불안이라고 스스로 명명해주고 나니, 다행히 조금 괜찮아져 나 자신을 다독이며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다행히 가은이는 병원 절차를 잘 따르고 있고 곧 본관 수술실로 이동한다고 하였다. 휴우! 와이프에게 뭐라도 챙겨 먹으라고 하며 나도 한숨 돌렸다.
근데 보통 한 시간 정도면 수술실에서 보호자에게 호출하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연락이 늦어진다며 걱정하는 가은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설마 문제 있는 건 아니겠지?'라고 반복하는 가은엄마에게 '왜 그래~ 부모가 불안하면 애도 불안해'라며 다독여 줬지만, 솔직히 나도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30분 정도 지나 수술실에서 연락이 와서 와이프가 이동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가은이 사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평소와 다르게 가은 엄마에게 연락이 오지 않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겠지라며 30분을 지나 1시간 정도 버텼는데, 그 이상이 되자 갑자기 불길한 기운이 나를 덮치기 시작했다.
왜 오늘따라 가은엄마가 업데이트를 안 해주지?
우리 가은이 치료받으면서 혹시 뭐가 잘못되었나?
설마 이번에 보고 들었던 부작용들 중에 하나가 가은이에게 생긴 건 아니겠지?
병원에 상주해 있는 보호자는 가은이에게만 집중해야 했기에, 평상시 나는 연락을 주기까지 매번 기다렸다. 하지만 그날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핸드폰으로 가은 엄마에게 계속 연락했지만, 그녀는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고 난 바로 직감했다. 무슨 일이 생겼음을! 자동차 키를 챙기며, 병원으로 향하며 상황파악을 위해 병동 간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은이 수술실에서
혹시 무슨 문제가 생겼나요?
왜 연락이 전혀 안 되죠?
급한 마음에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보는 나에게, 다행히 가은이는 병실로 돌아와서 잘 회복 중에 있다고 병원에서 알려 주었다. 그리고 가은엄마에게도 바로 전화가 왔다. 사타구니 쪽 동맥출혈을 막기 위해 모래주머니로 지혈하고 있는데, 가은이가 무서웠는지 1시간 동안 엄마에게 매달려 울며불며하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너무나 다행인 그리고 감사한 소식에 나는 집으로 돌아와 바로 털썩 주저앉았다. 진짜 한시름 놓은, 그리고 긴장이 풀리며 힘이 쭉 빠져버리는 그 묘한 느낌이 아직도 나에겐 남아있다.
가은이가 치료받으며 가장 무서운 건 재발이었고, 그다음이 바로 항암 부작용이었다. 평소 우리 부부는 가은이가 잠든 후, 불확실한 미래를 준비하고자 여러 시나리오를 그려보며 대응책을 논의했었는데 그날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미래 불확실성에 대한 과한 준비가 불안을 끌어들였고, 어느새 불안이 걱정이 되고, 걱정과 걱정이 모여 어느새 망상의 바다에 내가 빠져있다는 것을.
실제 암과 싸우고 있는 가은이는 이번 입원 치료 중에도 씩 웃으며 아빠를 맞이해 줬고 우리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이 어린아이가 지친 와중에도 엄마 & 아빠를 보며 씩 웃어 주는데, 다 큰 어른인 내가 그만 이성을 잃어버렸다. 많이 무서웠던 나 자신을 따듯하게 다독여도 주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보호자의 침착하고 냉정한 판단이 언제 필요할지 모르니까!
우리는 누구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적당히 걱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두려움에 빠져 무너져서는 안 된다. 그래서 그날 이후, 망상의 바다에 빠져 헤엄치고 있는 나 자신을 인지할 때면, 나는 즉시 가은이가 병원에서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을 찾아본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또다시 알려준 인생의 가르침을 떠 올리며!
삶을 이기는 건
두려움이 아니라 웃음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