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해석이 바뀌는 순간
그렇게 6번째 항암 치료를 잘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가은이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질 것을 알기에 집안 곳곳에 소독 스프레이를 뿌리고 환기를 시킨 다음, 미리 소독 세탁한 매트리스 커버와 인형 옆에 가은이를 편안하게 눕혀 주었다.
입원치료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몸과 정신이 정말 피곤하다. 간병하며 쪽잠 자는 게 보통일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것 만으로는 기가 쭉 빠진 이 느낌을 다 표현하지는 못한다. 아마도 병원이라는 장소와 생명 앞 무거운 분위기에 압도되어 버텼기 때문에, 우리 부부도 얼른 전투적으로 취침에 들어갔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 어김없이 새벽에 잠이 깬다. 회사 다닐 때는 알람을 잠결에 끄고 '5분만 더'를 외치며 잤었는데, 휴직 후 바뀐 일상에서는 혼자서 보내는 새벽 시간을 자발적으로 찾게 된다.
휴직 초창기에는 새벽에 혼자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억지로 만들었는데, 그 이유는 연속되는 긴급 상황들과 통제되지 않는 오만가지 감정들에 맞서 우리 가족의 상황을 점검하고 나아갈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휴직 3개월 차인 요즘은 조금 다르다. 매일이 전쟁 같았던 출근길과 가은이를 어린이집에 등원해 줄 때는 보이지 않았던, 일상의 소소한 재미와 감사거리 찾기에 빠져 오히려 온전히 나를 마주할 수 있는 새벽시간을 기다리게 된다.
퇴원 후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우리 가은이가 사과를 아삭아삭 먹을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다
사과가 맛있었는지 이번에는 쌀밥 한 스푼 먹어본다는 게 참 감격스럽다
항암치료 후로 많이는 못 먹지만, 식사 후 방귀도 뽕뽕 뿜어내는 걸 보는 것도 너무 흐뭇하다
그리고 본인도 이제 방귀 뀌는 게 부끄러운지 씩 웃는 모습이 그저 사랑스럽다
가은이가 태어나고 분유나 유아식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도 그렇게 큰 감정을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가은이가 아프고 나니, 세상에 감사할 게 너무 많았다. 과연 갑자기 감사할 것들이 생기게 된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단지 내 삶에 일어나는 부분에 대한, 삶에 해석이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작년 휴직 전 진급 때문에 고민했던 내 모습도 떠오른다. 겉으로 쿨한 척은 해도 진급을 때문에 전전긍긍했던 나. 사실 회사 생활에서 처음으로 진급누락을 경험한 건 아직도 꽤나 아쉽긴 하다.
진급 누락 없이 자기 길 가는 능력자로 남고 싶었고, 휴직하면 또 누락하게 될 나를 상상하며 괴로워했던 모습들이 아직도 선명하다. 근데 러블리 패밀리를 선택하고, 삶의 무게를 견디는 상황에서 지난 과거를 해석해 보니
진급 누락을 해도
아무런 일도 안 생긴다는 걸
알게 되어 너무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난 영원히 남들 시선이나 신경 쓰며 진급에 목매고 있었을 것이다. 이 경험이 없었을 때에는 나에게 진급누락은 막연한 두려움 그 자체였다. 진급이 곧 그 사람의 능력을 100%로 대변하는 것은 아닌데, 진급을 누락하게 되면 마치 탈락의 의미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근데 막상 가은이가 아프고 나니 이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고, 내가 상상했던 진급누락의 수치심은 단지 내 머릿속 크기에서 100분 2 정도밖에 안 되었다. 물론 진급이 조직에서 중요한 동기부여와 보상 역할을 한다는 건 백번 동감하지만, 그렇다고 진급이 모든 걸 대변하는 것도 아니다. 진급이든 누락이든 그것은 단지 하나의 단편적인 결과물일 뿐, 정말 중요하게 생각할 부분은 바로 '일을 통해 찾는 내 삶의 의미와 보람'인 것 같다.
주재원도 마찬가지다. 정말 가고 싶었던 자리고, 내게는 그동안 쌓아온 노력이 담긴 상징 같은 자리였다. 하지만, 못 간다고 그리 큰일 나는 건 아니었다. 글로벌하게 세상을 즐기는 방법은 생각보다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복직 후에도 다시 한번 기회가 올 수도 있다.
지금껏 회사에서 안정적으로 직장 생활하며 급여, 진급, 주재원 선발 등 다양한 혜택을 누리며 회사를 다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모든 걸 너무 당연히 여겨 감흥이 없었고, 때로는 더 잘하고자 하는 욕심과 집착에 정말 중요한 소소한 행복을 잃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어 있는 나 자신을 너무 나무라고 싶지는 않다. 나름 나 자신을 돌아보는 데 꽤 시간을 쏟아부으며 성찰하고 끝없이 도전하였는데도 단지 그게 잘 작동되지 않았던 거라고 생각한다.
너무 잘 살고 싶었기에,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왔기에,
단지 안 보였을 뿐!
다행히 지금이라도 나 자신을 볼 수 있지 않은가? 휴직하게 되면 단지 가은이 치료를 위해서만 사용할 시간일 줄 알았다. 하지만, 2011년 입사 후 약 26,992시간의 일한 나에게 비로소 나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가은이가 아프고 나서 '나는 항상 우리 가족을 지켜야 한다'라는 무게와 압박에 시달려 왔던 것 같다. 물론 아빠이자 가장인 내가 중심을 잘 잡는 게 중요했지만,
나에게는 남편을 사랑해 주는 와이프와 가은이에게 온 에너지를 바치는 엄마가 동반자로 있었고
그리고 누구보다 이 상황을 잘 견뎌주고 헤쳐나가고 있는 사랑스러운 가은공주가 있다
이 소중한 존재들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 느껴지는 따듯함을 이제야 제대로 느끼게 되었고, 인생의 무거운 무게 안에서도 행복한 삶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나에게 주어지는 감사의 사인을 만끽할 여유가 없던 내게, 가은이 암 확진의 충격과는 별개로 큰 깨달음과 찐 행복이 오는 요즘이다.
아프지만 값진 시간들을 통해, 조금씩 삶의 해석과 패턴이 바뀌며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밝혀가고 있는 나. 문득,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과 혼란스러웠던 탄핵정국이 생각난다.
한참 뜨거웠던 김 모 변호사의 발언처럼, 이제 나도 당당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전 계몽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