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성숙 패키지 - 결혼 편
그렇게 가은이의 투병 상황과 존재 그 자체를 존중해 주기로 한 요즘, 우리 부부는 너무 바쁘다. 가은이를 위해 엄마, 아빠가 해줄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고 계획하느라고. 짧게는 내일, 길게는 가은이 결혼까지 얘기한다. 이런 얘기를 하다 보면 정말 궁금해진다. 가은이는 과연 어떤 남자와 결혼하게 될까?
나는 꼭 그녀가 엄마, 아빠처럼 찐사랑 할 수 있는 반려자를 만나 인생의 다양한 맛을 즐기며 살았으면 좋겠다. 아빠가 엄마를 찾아 결혼하기까지 너무 혼란스러웠지만, 결국 그 과정을 통해 가은이라는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아름다운 사랑을 고민했던 시간들만큼, 그 결과가 가치있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그래서 오늘따라 가은이에게 얘기해 주고 싶다. 아빠가 가은이를 만나기까지 어떤 고민을 하고 살았는지, 그리고 엄마라는 사람을 만난 게 얼마나 행운이었는지를!
남자와 여자가 서로 호감을 갖고, 그 호감이 쌓여 사랑이 되고
다투고, 이해하고, 화해하고, 다시 사랑하는
그 모든 과정이 어렸을 적 나에게는 너무나도 아름답게 느껴졌었다.
그래서 그 과정이 허락된 ‘청춘’이란 시기를 난 정말 좋아했다. 설레고, 웃고, 울고, 진심을 다해 사랑하는 그 시간. 그건 분명, 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값진 자유였다. 그런데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는 참 재미있다.
그 찬란한 청춘의 꽃이 30대를 맞이하며 묘하게 기류가 변한다. 모든 사람의 사랑을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결혼이라는 중대한 거사를 앞두고 순수한 사랑과 현실적인 기준들이 마구 충돌하는 시기.
혹시 나만 그랬던 걸까? 적어도 내 사랑은 어느 순간부터 사회들이 규정한 조건들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순수했던 감정이, 현실 앞에서 자꾸 흔들렸다. 어릴 적 내가 가장 쉽게 호감을 느끼는 건 외모였고, 솔직히 말해 남자라는 동물인 나에게 시각적인 끌림이 가장 중요했었다. 하지만 어른들은 늘 말했다.
외모가 밥 먹여 주냐. 금방 식어
결국은 성격이지 다 필요 없어
부부는 대화가 통해야 산다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막상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니 그 ‘대화’란 것이 참 어렵더라. 어엿한 어른이 되어 사회에서 각자의 역할을 맡게 된 우리는 바빠졌고, 피곤했고, 자신만이 알고 있는 사랑의 상처 때문에 쉽게 마음을 열 수 없었다. 평생을 함께 살아도 한 인간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하다고 하는데, 대체 뭐가 중요한 걸까?
너무나 혼란스럽기에 어느 순간 모험보다는 안정을 추구하게 된다. 집안, 학벌, 직장, 연봉, 거주지를 보고 그 사람과의 미래를 ‘계산’하기 시작한다.
물론, 나도 처음엔 반발심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건 있는 그대로의 사람인데! 하지만 어느새, 나조차 상대의 조건을 따지고 있었다. 초조해지는 가슴에 이런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진정제를 투여했고, 결혼이라는 퍼즐의 완성만이 진리 같이 느껴지는 시기가 결국 왔었다.
30대 소개팅은 당연히 사진과 프로필 확인부터였고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로 만나도 결국 묘하게 계산이 섞였다
조건 없는 사랑은 현실에선 사라지고 있었고, 그렇게 ‘진심’은 조금씩 뒷자리로 밀려났다
그래서였을까, 사소한 단점 하나에도 마음이 쉽게 식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소중한 인연을 외면하고 그냥 도망치고 싶었다. 나 자신에게 물어봤었다. ‘왜 이렇게 쉽게 돌아서고 도망가려 하지?’
그땐 전혀 몰랐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회사에서 내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칭찬엔 기대고, 부담엔 도망치고, 불확실한 미래 앞에선 자꾸 위축되었던 내가 이제는 보인다.
백마 탄 왕자님이 되어 공주님과 동화 속 성으로 쉽게 들어갈 줄 알았건만, 지속되는 방황에 결국 혼자 살까 하는 생각이 점점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늘도 내가 안쓰러워 보였을까? 나에게도 소중한 인연이 다가왔다.
난 아버지가 교사셨고 지역사회에서 성장했다. 그리고 항상 듣기 싫었던 말이 있다.
“아버지가 교사신데 그렇게 행동하면 안 돼”
좁은 지역사회에서 항상 남을 의식할 수밖에 없던 구조에서, 뭔가 무한정의 도덕성의 잣대를 나에게 들이미는 그 말들은 어린 나에게 너무나 폭력적이었다.
그래서, 난 자연스럽게 교사란 직업을 가진 여성이 싫었다. 누구보다 사람을 선입견으로 보면 안 된다고 난 외쳤지만, 솔직히 난 그런 말 자격이 없었다.
다행히, 잠실에서 만난 그녀는 내 선입견을 와장창 깨 주었다. 이탈리언 메뉴로 아이스브레이킹 하며 조금씩 서로를 알려주던 말 중에 눈이 번쩍 뜨이는 말이 있었다.
교사인 그녀가 코로나 시대에 '비대면' 수업 때문에 너무 힘들다 했다. 그 말을 듣고, 선입견의 수영장에 헤엄치던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비대면 수업을 위해, 새 교재 만든 게 힘들었단 말이군. 안정을 추구하는 교사들이란..”
근데 그녀가 ‘당신 참 거만한 사고를 하는 사람이군요’를 알려주었다. 코로나 시대, 원래 학교에서 왁자지껄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이 갇힌 것 같아 그게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마음껏 성장하며 만끽해야 할 아이들에게 생긴 구속. 난 아직도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순간 그녀가 너무 멋있었고, 그 따듯함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조금 구부정하게 있던 내 자세는 어느새 '스탠드업'되어 그녀에게 마법을 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계속된 대화가 너무 즐거웠고 헤어져야 할 시간이 아쉬웠다. 그렇게 그녀를 지하철역까지 바래다주는 길에 마스크를 낀 그녀의 눈을 보고 내가 느낀 감정을 그대로 표현했다.
“눈이 참 이쁘시네요”
그 말에 그녀도 활짝 웃었다. 그렇게 나쁜 멘트는 아니었나 보다. 그렇게 우린 서로의 호감을 발전시켜 사랑을 키워나갔다. 100일이 되던 날, 우린 서해 바다로 드라이브 갔고, 좋은 날씨 속 상쾌한 공기를 만끽하며 돌아오는 길에 노란색 유채꽃도 만끽했다.
그녀가 차로 이동하던 중 그 꽃이 찍고 싶은지 핸드폰으로 열심히 찍기에, 난 잠시 차를 멈춰 조수석 창문을 열어주었다. 그녀는 맘껏 꽃을 찍었고 그렇게 서울로 돌아온 며칠 뒤, 난 전혀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았다. 우리가 쓰고 있던 교환일기장에서 그녀가 알려줬다.
“오빠, 내가 그 꽃을 좋아하는 걸 알아차리고 잠깐 멈춰 여유롭게 찍게 해 줘서 너무 고마워. 나를 위해 따듯하게 배려해 준 오빠 덕분에 난 그날이 너무 행복해. 먼 길 운전해 줘서 고맙고 사랑해”
그 시절 방전되었던 나의 배터리는 그렇게 마구마구 충전되어 갔다. 그런데 아무리 사랑이 굳건해도 나에게 삶의 시련이 다가오지 않는 건 아니다.
내가 회사에서 주재원의 커리어를 선택하기 전, 난 고민이 많았다. 신규 조직으로 가는 게 좋을지, 이 조직에서 더 발전할지. 회사원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내적 성장의 욕구와 변화에 대한 반발심이 심하게 충돌하고 있던 시절. 그런 고뇌하던 나를 보며, 어느 날 그녀가 나에게 말해줬다.
“오빠, 답답할 땐 잠깐 하늘을 봐봐. 노을색 너무 이쁘지 않아?”
내가 해결해야 할 주제에 빠져서, 아무것도 안 보이던 나에게 그녀는 나에게 휴식을 주었다. 그것도 아주 고귀하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그리고 결정의 순간에 고민하는 남자라면 듣고 싶은 얘기.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나의 그녀가 알려줬다.
“내 남자가 이 세상 최고라는 거 나는 알아. 오빠를 믿고 결정하면 돼”
결혼을 하며 나는 현실적인 조건을 정말 외면하고 무시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조건을 사람보다 먼저 보면, 정말 중요한 그 사람 자체를 볼 기회를 잃을 것 같았다.
그 중요하다는 조건들은, 사람을 알고 사랑을 키우고 난 후에 봐도 늦지 않다. 조건이 모든 건 대변할 수는 없다. 난 그것에 속지 않고 싶었고, 나의 꿈과 신념을 믿고 지지해 주는 사람과 함께 따듯하게 인생을 즐기고 싶었다.
방황하고 또 방황했지만, 난 끝내 나의 공주님을 찾아냈다. 그렇게 그녀의 생일에 맞춰 난 프러포즈를 결심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레고를 선물로 정했고, 같이 만들어가자는 의미로 집을 만드는 레고를 준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애동안 결혼얘기를 해 본 적이 없기에 완벽한 서프라이즈를 하고 싶었다.
아침에 테니스 간다고 하자, 역시 그녀는 입이 몹시 나온 느낌이었다. 거짓말은 내 적성에 맞지 않으니 난 한말을 지키기 위해 테니스 2게임을 신나게 치고 왔다.
그리고 조금 나른해진 몸을 이끌고 집을 꾸미기 시작했다. 초를 하트 모양으로 깔며 준비했고, 비장의 무기 프러포즈 현수막을 벽에 걸었다. 현수막에 적힌 문장은
나랑 결혼하자
흔하디 흔한 나랑 결혼해 줄래로 물어보고 싶지 않았다. 나를 믿고 따라오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전혀 그날의 스토리를 예상하지 못했는지, 그녀는 그날 펑펑 울었다. 이제까지 살아온 순간에서 가장 행복했다고 했다. 그녀의 눈물을 보며 내 눈에도 눈물이 또로록 흘렀다. 정말 행복했고 행복했다. 이제 내가 생각한 그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러블리한 가족’을 꾸미고 로맨틱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의 기차는 종착역에 도착했고,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바로 가은이 엄마다. 세상이 중요하다는 가치와 타협하지 않고, 나만의 길을 개척한 나에게 다가온 사랑. 저에게 그녀라는 보물을 선물해 주셔서 감사하고 감사한 요즘이다.
어렵게 얻은 사랑인 만큼, 지금의 순간에 그녀와 함께해서 너무 행복하고 든든하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가은이를 출산한 것도 아마 하늘의 뜻이 아닐까 싶다. 이 아이를 누구보다 사랑해 줄 수 있는 부모를 찾아내서, 하늘이 우리 부부에게 가은이를 선물해 주신 거 아닐까?
아직은 많이 부족한 우리 부부지만, 더 성숙한 어른이 되어 가은이에게 찐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훗날 때가 되면 한 순간을 마주하고 싶다.
우리 가은이가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
훨훨 날아가버릴 그 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