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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식을 진짜 존중해 주는 방법

가은이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기

by 가은이 아빠

이제 어느덧 항암 1 Cycle의 종반부에 접어들고 있다. 7번째 항암을 진행하기 전에, 이번에는 먼저 안구 정밀 검사를 진행한다. 검안경을 이용, 동공을 통해 눈알 내의 유리체 및 망막 등을 확인하는 검사법으로 종양의 크기와 형태를 확인하고 향후 계획을 의사와 보호자가 논의하는 자리.


'모든 게 잘 되고 있습니다'라고 듣고 싶지만,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말. 암세포의 특성상 의사도 치료에 대해 항상 조심스러워하며 말을 아끼고, 상황을 설명해 주고 경과를 지켜보자는 말로 대부분 끝난다. 보호자 입장에서는 확실한 게 없어 매번 답답하기에 얼른 종양이 사라졌다는 말을 듣고 싶다.


입원 수속을 밟고 정상적으로 치료 준비를 완비하였고, 다음날 가은이는 수면 마취 후 정밀검사를 진행하여 검사결과를 들었다. 안과 수술실에서 만난 의사의 모습은 무겁지 않았고, 가은이 종양 상태를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들리는 표현이 있었다.


가은이 종양의 크기가
다행히 지난 검사와 비슷하게 유지된다는 말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 치료 초반부에 종양 상태를 확인했을 때, 가은이 종양의 크기가 잘 줄고 있다고 분명히 했었는데! 지난 검사 때 크기와 비슷하면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고 느껴졌고, 나는 바로 의사 선생님께 여쭤 보았다.


가은이 종양이 계속 줄어들어야
치료 효과가 있는 것 아닌가요?

치료의 궁극적인 목적은
종양을 없애버리는 것 아닌가요?


물끄러미 쳐다보며 답을 기다리는 순간, 의사 선생님이 설명해 줬다. 암이 이미 너무 진행된 상태에서 치료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종양을 완전히 없애는 건 현재 의학기술로는 불가하다고 했다. 그렇기에 종양의 사이즈가 최대한 줄은 지금의 시점에서는, 크기보다는 종양의 안정화 여부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즉, 종양이 안구 내 주위 세포를 더 공격하며 확장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라는 말이었다.


내가 이제까지 감내하며 기대했던 방향과는 너무 다른 말. 종양이라는 건 없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위암, 간암 등 다른 암들은 절제를 해서 악성 종양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고 들은 것 같은데 정말 믿기지가 않는다. 의학적인 한계라고 부정적으로 봐야 하는 건지, 아니면 의학 기술 발전덕에 긍정적으로 봐야 할지 너무 혼란스러웠다. 이 상황을 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하는 걸까? 암과의 동행?


안과 전문의 진단이 끝나고, 가은이는 소아 혈액종양학과로 인계되어 7번째 항암치료를 받았다. 살 떨리는 표적항암이었는데, 이번에도 아무 부작용 없이 무사히 치료를 마치고 우리는 며칠 뒤 퇴원했다.




의학적인 지식이 없는 내가 너무 낙관적인 상황만 생각하며 치료를 받아 온 걸까? 충격의 여파가 집에 와서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종양이 가은이 몸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창창할 미래에 함께한다는 사실이 내 고개를 계속 절레절레 흔들게 한다. 재발의 가능성이 너무 무섭고, 그로 인해 생길 수도 있는 사이드 이펙트도 싫다.


내가 그토록 고대했던 건 이게 아닌데


이제까지 감사했던 것들과 깨달음이 꽤 많이 흔들리는 것 같다. 단지 내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을 맞이해서 그렇다고 하기에는 오랜만에 꽤 많이 힘들다. 왜 그럴까? 왜 이렇게 이 상황은 나에게 무겁고 버거운 걸까? 불편함 마음들을 하나씩 들여보는 게 나에게 항상 힌트를 줬었는데 오늘은 그만하고 싶다. 그냥 혼자서 계속 있고 싶고 답답하다.


혼자서 답이 잘 찾아지지 않아, 법륜스님 강연을 좀 더 찾아보았다. 유사한 상황들과 감정들에 대해 법문도 듣고 명상과 108배로 나를 좀 더 심층적으로 바라보고, 하나님께도 기도드려 보니 한 가지 선명하게 알 수 있는 게 하나 있었다. 내가 이 상황을 너무나도 부모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난 가은이가 암환자라는 사실이 너무 속상하다. 그래서 내 딸을 볼 때마다 잘 견뎌주는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한편으로는 안쓰럽게 보는 경향이 있다. 이 고통은 2살짜리 아이가 겪을 고통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난 누구보다 빨리 완치되어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근데 여기서 너무나도 중요한 사실이 있다. 과연 아빠인 나의 심정과, 가은이의 심정이 일치할까? 가은이는 항암치료를 받으며 힘든 순간들을 겪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도 밝게 잘 생활하고 있다. 약물이 주는 고통을 피할 수는 없지만, 누구보다 잘 즐기고 있는 그녀. 나도 매번 얘기하지 않았는가? 가은이가 밝게 지내줘서 너무 고맙다고!


그럼 가은이가 이렇게 잘 지내주는데, 부모인 내가 내 딸을 이 관점으로 평생을 볼 것인가? 말이 좋아 걱정이지, 그 근본은 비교대상에서 오는 열등감 아닌가! 자식은 부모의 생각을 그대로 닮는다고 했다. 가은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누구보다 잘 지내는데, 더 이상 내가 가은이를 측은한 시각으로 바라볼 이유는 1도 없다.


이 아이는 누구보다 강하게 이 세상과 싸우며, 누구보다 밝게 인생을 즐기고 있다. 그래서 가은이에게 부족한 건 없다. 꼭 찾으라면 가은이 아빠가 요 며칠 잠시 큰 착각에 빠져 시간을 허비했다는 것! 같이 즐겁게 웃으며 놀아줘야지 이런데 낭비할 시간이 아깝다.


아이가 자라 어린이가 되고, 또 청소년이 될 때 부모가 하게 될 고민을 내가 좀 더 빨리한 거 아닐까? 난 이번 치료를 통해 우리 가은이 삶을 진짜 존중해 주는 법을 배웠다.


암세포를 가지고 태어 난
가은이의 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것


엄마, 아빠, 가은이가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하루면 충분하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더 크게 웃기로 했다. 병원에서 키 재는 순간도 놀이로 즐기는 우리 가은이를 떠올리며! 다 같이 하하하


<오늘은 몇 cm게요?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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