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편
가은아~ 아빠 금방 가은이 재우고
나와서 쓰는 편지야.
어제까지 들어간 항암약물의
의미를 아는지.. 오늘 가은이가
“이상해~이상해!”하는데
아빠 마음이 많이 아팠다?
이상하다는 의미를 알까 싶으면서도
몸에 힘이 빠지며 생기는 그 고통을
진짜 느끼고 있는 것 같았거든.
특히 이번 입원기간에,
구토를 너무 많이 한걸 보니
아마 체력이 바닥난 게 아닐까 싶어.
벌써 항암을 9번이나 진행했으니까!
근데 아빠가 너무 안쓰럽게만
가은이를 보지는 않을 거야.
왜냐하면 가은이는 건강해지려고
치료를 받고 있거든.
그리고 무엇보다 가은이가
너무나도 잘 견뎌주고 있으니까!
그리고 병원에서 주삿바늘 꽂을 때마다
너무 무서웠을 텐데
그럴 때마다 아빠가 달래주기는커녕
가은이 팔다리를 잡고 밀어붙여서 미안해!
어차피 해야 하고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
빨리 끝내는 게 고통과 공포를 줄여주는
일이라 생각했거든.
매 순간 가은이가 울더라도
빨리 끝내고 얼른 안아주는 게
우리 딸에게 무조건 좋다 판단했었는데..
한편으로는 너무 가혹하지는 않았는지
요즘은 후회가 많이 되기도 해.
아무튼 매번 입원할 때마다 너무 미안해.
그래도 아빠와는 다르게 따듯하게 안아주고
기다려주는 엄마가 있었기에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는 해!
어때? 아빠 결혼 잘했지?!
오늘 기준으로,
어느덧 가은이 태어난 지 847일 되는 날이네.
20살이 된 가은이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솔직히 아빠는 상상이 안되네!
우리 삐삐머리가 어느새 화장도 하고
패셔너블하게 인생을 즐기기도 할 거 같고.
혹시 테니스 좋아하는 아빠들의 로망처럼
같이 테니스 치는 사이도 되어 있을까?
한참 성장해야 할 시기에 항암을 해서
신체 성장도 악영향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아.
근데, 말이야!
외형적인 것들도 중요하지만
아빠가 진짜 해줄 수 있는 건 바로
가은이가 이 세상을 따듯한 곳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
그래서 가은이에게 동생도 만들어 주고
따듯한 가족의 울타리 속에서
가은이에게만 주어진 소중한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게 해주고 싶어!
올해 아빠 나이 40인데,
그걸 잘 못해서 이제라도 잘하려고 있어!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잘해볼게!
아빠 믿지?
그리고, 먼 훗날 이야기지만
한편으로는 아빠품에서
가은이를 보내 줄 준비도 하고 있어!
20살이 된 가은이가
이 세상을 훨훨 날 수 있게!
우리 집에 오신 귀인이 20년 편안히
지내시다 가실 수 있게..
가은이가 어릴 적부터
병원에서 치료받았다고
아빠가 가은이를 너무 보호해 주려하면
그게 곧 부모 집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그러니까 우리 20살까지
진짜 해보고 싶은 거 다하고 살자.
하나씩 하나씩 해보면서!
가은이가 진짜 좋아하는 것들도 알 수 있고
실패라는 과정이
오히려 자기 자신을 발견하며
성장의 기회가 된다는 사실도
생각보다 꽤 재미있을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어릴 때부터 가은이가 가진걸
남에게 웃으며 나눠준 것처럼,
이 세상에서 받은 따듯한 에너지들을
다시 이 세상에 많이 나눠주며 살자!
주말엔 아빠랑 같이 봉사활동도 가면서
세상에 같이 살고 있는 장애인 분들은
단지 몸이 좀 불편하신 분이라는 것도
몸소 체험하면서!
오히려 불편하신 몸을 이끌고
당당히 살아가시는 모습이
얼마나 멋있고 건강한 것인지 알게 될 거야.
그래서 우리가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은
함께 도와드리면서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같이 행복을 일궈 나가자고!
그리고 20살쯤이면 우리 딸 미모가
아주 빛을 발하고 있을 거야.
아빠처럼 사랑 두려워하지 말고
그 두려움 안에서 꽃을 발견해 봐.
결국 만나게 될 너의 짝꿍이
이 세상의 등불이 되어
가은이를 든든하게 지켜줄 거야!
아빠가 이 9개월 동안
다짐한 마음을 얼마나
간직하며 지켜갈 수 있을지
스스로가 의심스러울 때가 있어!
그래서 더 글로 남기고자
이렇게 편지를 남겨!
내가 너무 사랑하고 사랑하는
우리 딸에게 한 약속,
아빠가 꼭 지키려고!
목이 타 들어간다는
항암과정을 잘 이겨내줘서 고마워!
이 항암과정 후에 어떤 치료결과가 올지
여전히 궁금하고 두렵기는 해!
근데 그거 알아?
그럴 때마다, 아빠는 가은이 미소를 봐.
그리고 그 미소를 보며 아빤 확신을 가져.
20살이 된 그 시점에
우리 가은이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잘 즐기고 있을 거라는 걸.
그래서 더는 걱정하지 않을게!
우리가 처한 상황 안에서
삶의 의미와 감사함을 같이 찾아가보자.
그렇게 가은이가 인생의 의미를
찾아갈 수 있게
아빠가 동반자가 되어줄게!
누구보다 든든하고 찐한 동반자
마지막으로 혹시 인생을 살다가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 오면,
지난 9개월간 이 험난했던
투병과정을 떠 올려봐!
그 조그마한 몸을 이끌고
활짝 웃으며 암을 이겨낸 가은이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 건지
가은이 스스로가 많이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어.
너무나도 대단한 일을 해낸 거니까!
20살이 되었을 우리 딸!
어엿한 성인이 된 걸 미리 축하할게!
엄마, 아빠에게 와줘서 너무나도 고맙고
언제나 사랑하고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