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엄마 편
사랑하는 우리 딸 가은이에게
안녕? 엄마 아빠의 보물 1호 가은아.
어엿한 성인이 되었을 우리 가은이를 상상하며 편지를 써. 기특한 우리 딸 가은이가 그 힘든 항암도 9번이나 이겨내고, 활짝 웃으며 엄마 아빠 옆에 있어줘서 얼마나 감사한 하루하루인지 몰라.
가은이가 엄마 뱃속에서 꼬물꼬물 자라나 태동하는 순간에도, 40주가 지났는데도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너를 17시간 만에 겨우 낳고 따뜻한 볼을 처음 맞대었던 그 감동적인 순간에도, 하루하루 눈에 띄게 성장하는 너를 보는 모든 순간순간, 엄마는 아빠를 만나 가은이를 낳은 것을 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어.
돌이 갓 지난 너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일터에 다시 나가면서 많이 착잡했지만, 하원할 때마다 ‘엄마!’ 큰 소리로 부르며 뛰어오는 너를 한껏 껴안을 때마다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벅찬 감정과 큰 행복을 느낀단다.
그리고 2024년 11월 어느 날,
가은이의 예쁜 눈이 아프다는 사실을 직감한 후, 엄마는 저녁을 먹는 너를 뒤로 하고 방 안에서 그렇게도 많이 울었어. 가은이 너와 엄마 아빠 앞에 놓인 현실이 너무 두렵고, 막막하고, 네가 불쌍하고, 모든 것이 원망스럽고. 많은 잡념과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서 엄마는 그렇게도 많이 울었어.
하지만, 가은이 앞에서는 눈물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네 앞에서는 정말 열심히 밝은 모습으로 함께하고, 네가 잠든 밤마다 아빠 품에서 참고 참았던 눈물을 다 쏟아냈지.
세상을 살며 많은 어려움과 고난이 있었던 엄마지만, 그 모든 것이 아무렇지 않을 만큼 너의 병은 엄마에게 너무 마음이 아프고 아린 것이었단다.
보여주고 싶은 아름다운 것들이 많은데,
우리 가은이는 왜 하필 눈에 암이 생긴 것일까.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우리 딸 가은이 일까.
왜 엄마는 그렇게도 너를 지켜보고 하루하루 함께하면서도, 네 눈에 암이 생겨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걸까.
온 세상이 엄마에게만 너무 잔혹한 것 같이 느꼈던 그때, 아빠가 어느 날 이런 말을 하더라고.
“우리 가은이가 이 세상에 빛을 보고 싶어서,
엄마랑 아빠를 만나고 싶어서,, 아픈 걸 꼭꼭 숨기고 태어난 것 같아”
엄마는 아빠의 그 말에 정신도 번쩍 들고, 우리 가은이를 위해서 엄마 아빠가 더 강해지자 다짐했어.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엄마는 가끔 많이 힘든 것 같기도 해. 10kg 남짓이었던 네가 온갖 검사를 하며 수술실 앞에서 무서워 울고, 마취제가 들어가면 힘없이 가은이가 쓰러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양손하고 양발 모두 주사 바늘에 찔려 팅팅 부어 아프다고 밤새워 울 때, 포트 수술을 마치고 엄마를 애타게 부르며 쉰 목소리로 울며 나왔을 때!
그리고 특히 말이 점점 트여가며 어느 날 네가 얼마나 아픈 상황인지 인지하지 못하며 그저 해맑게 웃으며 얘기할 때! 그리고 이제 병원이 익숙해져 독감 예방 주사 따위는 무섭지 않은 듯, 울음소리 한번 내지 않고 맞을 때!! 엄마는 가은이가 보지 않을 때 아빠 품에서, 밤에 혼자서도 참 많이 울었어.
하지만 아빠 말을 생각하면서 다시 마음을 강하게 잡아 봐. 이렇게 작은 우리 딸도 잘 이겨내고 웃고 있는데, 엄마 아빠는 더 못할 것이 없는 것 같아.
엄마는 가은이가 누구보다 더 밝고, 명랑하게, 사랑스럽게 클 거라 믿어. 엄마 아빠가 꼭 그렇게 자라게 옆에서 사랑으로 보살피고 도와줄 거니까.
가은아, 세상을 살면서 나쁜 일이 나한테만 벌어진다고 느낄 때 온갖 망상에서 벗어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고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는 걸 엄마는 네가 아프고 나서 더 뼈저리게 느꼈단다.
학교에서 많은 학생들을 상담하고 가르치며, ‘긍정적으로 생각해!’라고 수 없이 말하면서도 정작 부끄럽게도 엄마는 너에게 찾아온 암 앞에서는 그저 마음이 무너져 절망에 빠진 사람이었거든.
항암 부작용 점검을 위해 외래 간 어느 날, 양쪽 귀가 들리지 않는 한 친구를 우연히 만났지. 그날 아빠에게 말했어.
"우리 가은이가 그래도 엄마 아빠 얼굴을 볼 수 있고, 두 손으로 만지고 느낄 수 있고, 두 발로 걸을 수 있고, 두 귀로 엄마 아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너의 항암 치료 덕에 엄마 아빠는 더 강인하게 성장하고 있어. 그리니까 우리 딸 가은아! 마음 아픈 일, 상처받는 일이 생기더라도 엄마 아빠는 늘 너의 뒤에서 무너지지 않는 받침대가 되어 줄 테니 걱정하지 마.
이 어린 나이에도 웃으면서 씩씩하게 항암을 이겨내고 해맑게 웃는 너를 보면 무엇이라도 끝까지 해낼 수 있을 거라는 걸 믿지만, 잠깐 쉬고 싶을 때나 기대어 울고 싶을 때 모든 순간을 함께하고 있는 엄마 아빠가 옆에 있으니 안심해도 된단다.
아빠가 아침에 일어나면 늘 ‘오늘 하루도 선물해 줘서 고마워’라고 말하지? 엄마랑 아빠는 가은이랑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정말 행복하고, 늘 새롭단다.
엄마 아빠는 너를 위해 존재하고, 너는 엄마 아빠에게 찾아온 소중하고 고귀한 천사이니까. 우리 가족이 행복할 수 있게,
우리 가은이가 지금처럼 ‘엄마 아빠 최고!’라고 자랑스럽게 외칠 수 있게, 엄마 아빠가 더 많이 노력해서 지금보다 지혜로운 부모가 되어 있을게.
"암이라는 아픔을 겪은 눈으로도
더 넓고 큰 세상 볼 수 있게,
그보다 더 따뜻하고
맑은 마음의 눈을 가질 수 있도록
엄마 아빠가 더 아낌없이 사랑해줄게.
정말 많이 많이 사랑한다
우리 딸, 가은 공주"
- 세상에 하나뿐인 우리 딸에게,
사랑하는 엄마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