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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Dec 15. 2022

2022년 2월 마음정산

 1월 내용을 쓸 때와 마찬가지로 아내가 정리해준 목록과 내 휴대폰 속의 사진 그리고 역시 휴대폰의 달력을 통해 2월의 일들을 찾아봤다. 아내가 정리해준 목록엔 아이가 처음으로 장갑을 끼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아이는 그전엔 장갑뿐만 아니라 모자 등 위아래의 옷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것들 외의 아이템을 걸치는 걸 싫어했다. 귀여워서 모자도 사 주고 장모님께서 목도리도 떠 주시고 해서 씌워 주고 둘러 주고 해 봐도 영 싫은지 바로 벗어던져 버리곤 했다. 그런데 장갑을 끼기 시작했다.



 최근엔 모자, 장갑, 목도리 등을 해 주면 해 주는 대로 잘 있는 편이다. 해 주고 ‘예쁘다. 예쁘다.’ 하니 본인도 싫지 않은 것 같다. 옷은 입혀 주는 대로 잘 입는데 다른 아이템들은 왜 걸치기 싫어했는지 그리고 어느 시점(올해 2월)부터는 왜 이전과 태도를 180도 달리해서 스스로 걸쳐 보기도 하고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잘 모르고 하는 소리일 수도 있으나 아이가 커 가는 과정에 상당히 중요한 지점 혹은 변곡점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아서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덕분에 보다 더 귀여운 스타일로 아이를 꾸며 줄 수 있게 됐다. 아이의 이런 행동 변화가 우리 아이만의 특징적인 부분인지 아니면 일반적인 성장과정에서의 행동 양상인지 한 번 정도는 확인해 보고 싶긴 하지만 귀찮다. 귀여운 모자를 씌워 줬을 때 귀여운 모습을 보란 듯이 아이가 엄마 아빠 앞에서 배시시 웃는데 그걸로 만족이다.



 내 휴대폰 속에 저장된 사진 중에 2월에 나를 돌아 볼만한 사진은 없다. 최근에 아내와 아이랑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추억으로 남기고자 그리고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고자 사진을 곧잘 찍곤 한다. 이런 이유가 있기 전에는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거의 찍지 않았다. 셀카를 찍는다는 건 생각지도 않는 편이었고 경치 등도 잘 안 찍었다. 셀카는 딱히 잘 나지도 않은 얼굴 찍어 봐야 실망만 할 거 같아 안 찍었고 경치 등은 아무리 좋은 경치라 해도 카메라 렌즈 나부랭이로 담아내는 한계가 있는 모습이 싫었다.



 2월은 어딜 특별히 나다니질 않았는지 아무런 사진이 없다.(물론 집에서 이런저런 모습을 보이는 아이의 사진은 상당히 많이 있다. 오늘 다시 보니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주 예쁜 사진도 있다. 구여운 것!) 달력을 통해 무슨 일이 있어나 마저 확인해 보니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 입사 7주년이란 기록이 있다. 그러니까 내년 2월 이면 입사 8주년이 된다는 이야기다.



 평생직장이 없다는 요즘 같은 시기에 오래 일한 것 같다. 2년 뒤면 10년이다. 10년 이면 강산이 두세 번은 바뀌는 시대다. 강산이 두세 번은 바뀌는 시간 동안(아직 2년이 남았지만) 뭘 했는지 문득 생각을 해 봤는데 등골이 서늘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딱히 한 게 없기 때문이다. 먹고살기 위해 일은 했고 그 과정을 바탕으로 차도 바꾸고 결혼도 하고 집도 사고 아이도 낳긴 했지만 그건 그냥 살아가는 거니까 그거 이외에 뭐가 없다. 물론 이런 부분을 바라마지 않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그러지 못하는 분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하면 배부른 소리라고 욕을 들어 먹겠지만 어쩌겠는가? 다 자기가 처 한대로만 생각하면서 이야기하는 거니 그런 분들 앞에서만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된다.



 지금까지는 목표라는 걸 가지고 살았던 삶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시작하면서 목표가 있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 주말도 없이 살았다. 주말이 무엇인가? 주말이면 더 바빴다. 일반적인 직장이 아니다. 평일에 보통 낮 3~4시에 시작해서 밤 11~12시에 끝나는 일이다. 주말엔 더 했다. 아침 9~10시에 시작해서 밤 11~12시에 끝났다. 죽을 것 같았다. 그래도 했다. 목표가 있었고 목표가 달성될 거 같았고 결과적으로 일정 부분 달성했다.



 한참 일을 할 시기에 아내를 만났다. 아내도 같은 일을 했다. 하지만 내가 더 많이 했다. 아내가 하는 분량의 거의 두 배를 했다. 그래서 내가 시간이 나는 날이면 무조건 어디를 갔다. 평일엔 늘 밤 12시 혹은 새벽 1시에 대학가에서 만났다. 대학가가 상대적으로 늦게까지 영업을 하는 편이어서 늘 만나는 곳이 정해져 있었다.



 그렇게 일을 하면서 결혼 준비를 했다. 단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결혼하기 전에 연애를 할 때는 잠깐 시간이 나면 아내와 갈 수 있는 최대한을 찾아 여기저기 다니며 나름 쉬기라도 했다. 하지만 결혼 준비에 들어가면서 일은 동일하게 하는데 쉬는 날은 무조건 결혼 준비를 위해 여기저기 사방팔방 뛰어다녔다. 당시에 평생 다닐 백화점을 다 간 것 같다.



 중학교 때 정말 공부 열심히 할 때 코피를 쏟은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 근 25년 만에 처음으로 코피를 쏟았다. 샤워를 하는데 코피가 줄줄 나왔다. 그래도 괜찮았다. 결혼을 꼭 해야겠다고 바랐던 사람은 아니다. 형편이 안 되면 안 하는 거지 하고 살았고 실제로 아내를 만나기 전에 결혼을 포기했었다. 그럼에도 좋았나 보다. 힘들지만(죽을 것 같았지만) 일은 잘 되고 돈도 적당히 벌고, 흔히들 사회적 성공의 단면이라 할 수 있는 차, 집, 결혼 이란 단어가 내 입에서 오르내렸고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샤워하면서 나는 코피가 그런 상황의 훈장 같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때의 그런 목표라고 하는 개념을 버리려고 하고 있다. 아직은 잘 안 버려진다. 목표가 있어야 동기부여도 되고 그런 동기부여를 동력 삼아 움직이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아직은 지배적이다. 실제로 그렇게 해 왔고 어느 정도 성과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드는 생각인데 그런 게 아닌 것 같다. 최근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 영향을 준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이야기고 하나는 정말 최근에 들은 고명환이란 연예인의 이야기다.



 손흥민은 자타공인 대한민국 대표 축구선수다. 대한민국뿐만이 아니다. 아시아의 빛과 같은 축구선수다. 그뿐이랴. 아버지는 인정하지 않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월드클래스 축구선수다. 전 세계에서 축구를 가장 잘한다는 리그에서 득점왕을 한 선수다. 그런 선수의 아버지에게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했다. 득점왕이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아버지의 대답이 의외다. 목표를 세운 적이 없단다. 어? 득점왕 같은 목표, 그것도 세계 최고 리그에서의 득점왕 같은 건 목표를 세워야 되는 거 아닌가? 목표를 세우고 단계를 설정해서 계단을 밟듯이 차근차근 올라가야 되는 거 아닌가?



 솔직히 괜한 소리라고 생각했다. 괜한 겸손이겠지.(나는 과한 겸손이 죄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어서 사람들이 다시 질문했다. 그럼 득점왕은 어떻게 한 거냐고? 손흥민 아버지는 다시 말한다. 득점왕 이전에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뛰겠다, 득점왕을 하겠다, 이런 류의 목표를 세워 본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한다. 그저 어떻게 하면 축구를 잘할 것인가만 고민했고 잘하기 위해 매일매일 고통스럽지만 실천을 했다고 했다.



 아~~~ 뭔가 흐릿하게 잡히는 듯했다. 목표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 무엇을 어떻게 하면 잘 수행해 낼 수 있는지 그것만 고민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 순간순간, 하루하루가 쌓이면 세상 사람들이 목표라고 하는 것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뭐 대충 이런 느낌의 대답이었다. 뭔가 금이 가는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해 오고 믿어 왔던 무언가가 깨지는 거 같았다.



 연예인 고명환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성공하려면 가치를 나누라고 했다. 뭔 봉창 두들기는 소리야? 또 두루뭉술 적당히 사람 홀리는 이야기겠구만 했다. 예를 들어줬다. 무식한 놈이라 실례를 들어줘야 그나마 이해를 한다. 유리컵인가 그릇을 만드는 회사가 있다고 했다. 최근에 몇 천 억불 수출 달성을 해서 뭔 상도 받고 잘 나가는 회사라고 했다.



 그 회사 대표에게 물어봤단다. 당신은 몇 천 억불 달성이란 목표를 위해 무엇을 했나요? 손흥민 아버지랑 비슷한 결의 대답이 나왔다. 몇 천 억불 등의 목표를 세운 적은 없다. 그저 어떻게 하면 보다 저렴한 유리그릇을 만들까만 고민했다고 했다. 자세한 부분은 다 생략하고 대충 맥락만 전달한다면 업계에서 통상적으로 유리그릇을 천 원 정도에는 못 만든다고 했다. 하지만 그 회사 대표는 보통은 그렇게 만들 수 없다는 금액인 천 원으로 유리그릇을 만들기 위해 오만 노력을 다 했다는 것이다. 결국 성공했고 돌아보니 몇 천 억불을 달성했다고 상을 주더란다.



 어쩌면 두 이야기 모두 뻔한 이야기일 수 있는데 내 마음이 최근에 그런 건지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들어왔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목표를 설정하면 그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마음만 부여잡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던 경우가 많았다. 어쩌면 현실도피의 한 방법일 수도 있다. ‘난 나중에 이런 목표를 달성할 거야, 그런데 그 목표를 달성할 방법이 뭔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 그 방법을 찾아보자.’하면서 세월아 네월아 시간만 보낸 것 같다.



 아직은 목표를 바탕으로 동기부여받아 동력을 만들어 움직이는 게 맞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더 강하긴 하다. 하지만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는데 명확한 성과가 없는 이 시점에 생각을 전환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돌아보면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지는 않은 것 같다. 잊을 만하면 한 두어 번 떠드는 ‘지나간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오지 않은 미래에 저당 잡히지 않으며, 지금 현재에 충실하자.’는 말처럼 지금 현재 오늘을 충실히 살아야겠다.



                 


https://groro.co.kr/story/1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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