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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Dec 21. 2022

2022년 12월 17일 토요일

날씨는 눈이 오다 맑았다 흐렸다 지 멋대로

 토요일 아침이다. 평소에도 늦게 자는 편이지만 토요일을 앞둔 금요일 밤은 더 늦게 자는 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너무나도 정확하고 생기발랄한 더 나아가 살아 있는 알람이라고 할 수 있는 딸이 아침 8시에서 늦으면 9시에 일어나 나를 깨운다. 참고로 평소에 자는 시간은 보통 새벽 4~5시, 토요일을 앞둔 금요일 밤은 자정을 넘겨 새벽 5~6시 정도에 잔다. 피곤해 죽을 거 같지만 모든 상황을 예상하면서도 늦게 잔 건 내 선택이기 때문에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아이는 시종일관 아빠 곁에 있다 거실로 달려갔다 뭘 들고 오면서 나에게 치댄다. 눈은 떠지지 않지만 그런 상황이 너무 푸근하고 좋다.



 꾸역꾸역 일어나 거실로 기어 나가 창밖을 보니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이미 며칠 전에도 눈이 꽤 많이 와서 쌓인 눈이 아직 다 녹지도 않았는데 또 눈이 왔다. 그것도 바람에 흩날리는 눈 같지도 않은 눈이 아닌 제대로 내리는 함박눈이었다. 올해는 눈이 많이 올려나 하면서 하품을 함과 동시에 옆구리를 벅벅 긁었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정신을 조금 차린 뒤에 아이 기저귀를 갈아 줬다. 아내는 아이가 가볍게 먹을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준비가 어느 정도 끝나 아내와 같이 아이 손을 씻기고 아이 전용 의자에 앉혀 간단한 아침을 먹이기 시작했다.



 아내도 같이 가벼운 아침을 먹었다. 나는 평소처럼 아무것도 안 먹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아내가 갑자기 저녁에 맥주를 한 잔 하자고 하는 것이다. 맥주를?! 그것도 아내가 먼저 마시자고 했다. 무슨 일이지? 무슨 날인가? 아무 날도 아니었다. 며칠 전에 지난 양력 생일에 이미 선물의 개념으로 맥주를 마셨는데 뭐 다른 일이 있나? 아내 생일은 다음 달인데 뭘까?



 결론적으론 그냥 한 잔 하자는 거였다.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는 제안이었다. 나는 원래 술을 잘 마시고 즐겨 마시는 편이었다. 한 창 때 누구랄 것도 없이 함께 하는 사람들과 술을 마시게 되면 먼저 취한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늘 언제나 마지막까지 남아 술 취한 사람들을 챙기고 집에 돌아올 정도로 술을 꽤 잘 마셨다. 그에 반해 아내는 그냥 한두 잔 맛만 보는 정도였다.



 술을 잘 마시는 남자와 그렇지 않은 여자가 결혼을 했고 약속을 했다. 일주일에 맥주 한 캔만 마시기로… 남자는 생각보다 잘 지켰다. 술을 잘 마시고 즐겨 마시는 거지 술이 없어 못 사는 성격은 아니었고 결혼할 즈음엔 이미 어느 정도 술을 마실 만큼 마신 나이가 돼 예전같이 달려들며 마시진 않았다. 다만 생각이 나면 맛있는 안주와 곁들이는 정도로 기분 좋게 마시는 수준이었다. 물론 가끔은 일주일에 한 캔은 너무 한 거 아니냐며 지 입으로 한 약속을 부정하기도 했지만 가끔이었다.



 그러다 아이가 태어나고 첫돌까지는 발생해서는 안 되지만 혹시라도 모를 위급상황을 위해 술을 아예 안 마시기로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첫돌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판단을 하고 아내와 협의 후 한 달에 맥주 두 캔만 마시기로 조정을 했다. 이제 그 부분마저도 아이가 두 돌이 다가오고 있어 다시 조정을 거쳐 결혼을 했을 때 약속인 일주일에 한 캔으로 바꾸기 위해 나는 생각 중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아내가 먼저 맥주를 한 잔 하자고 했다. 사실 최근 아내 스스로가 맥주 한두 잔 정도는 간간이 마시려고 하는 변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변화가 정확히 왜 생긴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아내도 술을 아예 못 하는 사람은 아니고 아이 수유가 어느 정도 끝나가면서 본인의 바람 혹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함인 것 같다. 아니면 남편의 간절한 기대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 주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중요한 건 아내와 가볍게 맥주 한 잔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됐다는 것이다.



 눈이 오는 조금 추운 토요일이었기에 특별히 외출 계획은 없었다. 그런 상황 속에 맥주를 사기 위해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른 일이라면 귀찮아서 나가기 싫었겠지만 맥주를 사러 나가는 길이다. 귀찮을 이유가 없는 일이다. 더욱이 최근 매일 걷기 운동을 하고 있는데 외출 계획이 없는 날은 걷기 운동을 하기 위해 억지로 나가는 일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닌데 맥주도 살 겸 나갔다 즐겁게 운동을 하고 들어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다녀올 수 있었는데 여차 저차 아이랑 아내와 함께 마실 겸 같이 나갔다.



 낮잠을 자고 느지막이 나갔다 들어오니 어느덧 저녁 먹을 시간이 돼서 아이 저녁과 함께 우리 부부의 맥주 안주도 같이 준비했다. 소시지와 짭짤한 과자를 한 두어 봉 사 왔는데 메인안주라 할 수 있는 소시지를 집에 있는 야채들과 적당히 볶아 맥주와 맛있게 먹었다. 이어서 며칠 전에 지난 생일 선물의 연장으로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기 위해 표를 예매했다. 얼마 전에 아내 역시 혼자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다. 기억에 의하면 2020년 1월 정도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코로나가 터져 지금까지 근 3년이란 시간 동안 우리 부부는 극장에 가질 못했다.



 코로나의 여파도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임신을 하고 아이를 출산했기 때문에 육아로 갈 수가 없었다. 물론 코로나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아이도 어느 정도 커서 부모님에게 맡기고 갈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다 얼마 전에 아내가 보고 싶은 영화가 있었는지 좀 보고 올 테니 아이 보고 있어라 해서 그렇게 했고 나 역시 하나 봐야지 했는데 그 영화를 아침에 눈이 온, 아내가 맥주 한 잔 하자고 한 날에 보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정도면 완벽한 하루다. 맥주와 소시지 등을 혼자 사러 갔다면 운동으로 걷기를 먼저 하고 사 왔을 테지만 아이와 아내랑 같이 움직여서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극장가는 길을 차를 끌지 않고 걸어가면서 운동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영화는 13년 만에 속편이 나온 그 유명한 [아바타 2 - 물의 길]을 보기로 했다. 1편을 엄청 재미있게 본 건 아니지만 이게 또 스토리를 떠나 큰 화면으로 봐야 하는 영화여서 이 영화로 결정을 했다.



 영화 아바타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 보자면 1편을 분명히 재미있게 봤지만 이렇게까지 추앙받아야 할 영화인가 싶은 생각을 했다. 분명히 재미있게 봤다. 아마 거의 최초의 3D 영화였을 것이다. 그래서 극장에서 제공해 주는 안경을 쓰고 3D 상영관에서 봤다. 그런데 너무 어지러워 다시 2D로 봤다. 어지럽건 뭐 했건 같은 영화를 비싼 돈을 내가며 극장에서 두 번을 봤으니 분명히 재미있는 영화였다. 그런데 이렇게 추앙을 한다고? 이런 의문이 항상 따라다녔다.



 뭐 본 분들은 알겠지만 1편의 스토리는 지극히 뻔하고 뻔한 내용이다. 설명하는 것조차 지루할 정도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부분이 제대로 된 연출 등을 통해 관객들에게 직관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재미라는 게 꼭 복잡할 필요는 없는 문제다. 거기에 더해 경이로울 정도로 구현을 해 낸 이 세상에 없는 세상의 풍광, 사실 이 부분이 아바타라는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고 매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관객들이 이 부분을 경이롭다는 단어를 사용해 가면서 추앙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일부 관객들이 아바타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치면 영화 볼 줄 모른다는 식으로 매도하는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있었고 지금 2편 개봉 후의 분위기도 어느 정도 그런 것 같다. 나름 유명한 말이 있다.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가 있고 맛있는 음식이 있다고 해도 직접 보고 먹어 봐야 한다는 말이다. 그만큼 영화나 음식이란 것이 개인의 취향을 탄다는 것일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재미있게 봤다고 또 대다수의 대중들이 그렇다고 한다고 그렇지 않은 의견을 내면 몰아세우는 인간들은 참 볼썽사납다.



 난 개인적으로 아바타 1편을 두 번이나 봤고, 3년 만에 극장에 가서 보기로 한 영화가 공교롭게도 아바타 2편이지만 이 영화가 그렇게 까지 경이롭고 추앙받을 영화인가 싶은 생각을 하는 편이다. 재미있고 극 중의 행성인 판도라라고 하는 행성을 CG라고 하는 기술로 정말 대단하게 표현한 건 맞는데 스토리 빈약하고 1편의 주 무대인 숲에 이어 바다라는 새로운 공간을 선 보였지만 어쩌면 비슷한(색감이 자연친화적인 녹색, 파랑이 주류다.) 부분으로 인해 약간 지루하기도 했다. 뭐 그래도 재미있었다. 3시간을 넘는 상영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지진 않았다.



 마지막 상영을 보고 나왔기에 시간은 어느덧 하루를 넘겨 일요일 새벽 1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걸어온 길을 다시 걸어갔다. 평소엔 차들로 꽉 들어찬 대로가 텅텅 비어 있었다. 간간이 지나가는 차를 통해 이 도로가 차가 지나다니는 도로가 맞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13년 전 아바타 1편은 당시에 일하던 곳에서 친하게 지낸 커플과 함께 봤다. 그때만 해도 아바타 2편을 볼 거라고는, 그보다는 결혼을 할 거라고는, 더 나아가 코로나가 터지고 아이를 키우면서 3년 만에 극장을 오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일인데 하는 생각을 하며 아직 녹지 않은 눈을 괜히 한 번 뭉쳐 던져 보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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