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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Jan 22. 2023

2022년 4월 마음정산

 지난 3월의 정산 이야기에서 너무 임플란트와 사랑니 이야기만 한 거 같다. 다시 달력과 아내와의 카톡 등을 돌아보니 3월에 아이가 처음으로 머리에 모자 쓰는 걸 거부하지 않았던 사실을 확인했다. 4월의 마음정산 이야기에 3월의 내용을 언급해서 조금 그렇긴 한데 삶이라는 게 연속적인 거고 내 이야기 내가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혹여 누구라도 뭐라고 하신다면 죄송합니다.



 조금 억지를 부려 3월에 아이가 처음으로 모자 쓰기를 거부하지 않은 사실과 4월에도 아이가 처음으로 한 한 가지 행동을 엮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연결시켜 이야기해 보려 한다. 3월에 처음으로 모자 쓰기를 거부하지 않았다면 4월엔 처음으로 밖에서 걷기를 시작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아마 거의 처음으로 내 돈을 내고 아이에게 사 준 옷가지 중에 하나가 다른 게 아니고 모자였다. 태어나고 어느 정도 기간은 아이에게 필요한 옷 종류가 그렇게 많지 않다. 딱히 밖에 나갈 일이 없으니 외출복은 당장 급하지가 않다. 성인들의 관점에서 굳이 구분을 짓자면 집에서 입는 내복 정도가 아이 옷의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내복 등은 출산 소식을 알게 된 주변 지인들이 선물을 해 주는 편이다. 그래서 초반엔 지인들이 선물해 준 내복으로 어느 정도 충당이 됐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우리 아이에게 강력한 사랑을 보내주시는 양가 할머니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내복을 사서 보냈다. 옷이라는 게 빨아서 입는 반영구적인 물건이니까 하루에 한 벌의 옷을 입는다고 해도 일주일에 7벌만 있으면 된다. 아이니까 돌발 상황 그러니까 먹은 걸 게운다든지 대소변이 강력한 기저귀를 뚫고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를 감안해도 일주일에 10벌 아니 2배 수로 부풀려 14벌 정도만 있으면 일정 기간 동안은 빨아서 계속 돌려 입을 수 있다.



 양가 부모님, 지인들, 그리고 아내의 언니가 우리보다 앞서 아이를 키우고 있어 언니 아이가 입은 옷을 물려받은 것도 있다. 더한다면 조리원에서 나올 때 입고 나온 배냇저고리도 한참 입었다. 일정기간 딱히 아이 옷을 살 필요가 없었다. 아이가 조금씩 커 가면서 처음 받은 옷들이 작아지기 시작하고 계절이 변하는 시점이 되어서야 아이 옷을 사기 시작한 것 같다. 이때 몇 벌의 옷과 장난꾸러기 느낌 물씬 나는 모자도 하나 샀다.



 모자는 아내에게 내가 사자고 해서 샀다. 아이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아이템이었다. 당연한 것이 아이에게 마음에 들고 안 들고 혹은 필요 여부를 물어볼 수 없는 시기이기도 했고 예쁜 게 있으면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소위 부모마음이 발동해 순간 눈이 돌아 사게 됐다. 그런데 문제는 처음 가져 보는 의욕적인 부모마음으로 모자를 샀는데 아이가 쓰기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아… 쓰면 정말 귀여울 거 같은데 완전 장꾸(장난꾸러기) 같이 귀여울 거 같은데 왜 쓰질 않니… 이런 마음으로 틈만 나면 모자를 씌워 줘도 아이는 도리질을 치며 벗어내기 아니 집어던지기 일쑤였다. 윽, 모자가 집어던져질 때마다 내 마음이 집어던져지는 거 같았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짝사랑 같은 마음이랄까? 제발 한 번만 써 줘. 뭐 이런 기대라고 하면 설명이 될 거 같다.



 그렇게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이는 머리에 뭘 쓰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쓰기 싫어했다. 그렇게 그 모자는 점점 옷장 구석 어딘가에 박혀 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난해 3월에 드디어 쓰기 시작했다. 사실 엄청나게 기쁘진 않았다. 시간도 너무 지났고 그 모자 말고 쓸 만한 물건들도 많았다. 결정적으로 아이가 그 사이에 커서 모자가 조금 작은 듯했다. 별 수 없이 그 모자는 때를 놓친 물건이 돼 버렸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아이를 꾸밀 수 있는 아이템이 하나 더 늘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부분에서 아이가 커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게 됐다.



 그리고 이어 지난해 4월엔 처음으로 밖에서 걷기를 시작했다. 지난해 4월에 아이는 16개월이었다. 아이들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첫돌을 전후로 걷기 시작한다고 한다. 우리 아이도 13개월 즈음해서 걷기 시작한 거 같다. 문제는 걷기 시작하면서 실내에선 잘 걸어 다니는데 실외에선 걷지를 않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실외에서 걷기 이전에 신발을 신기는 것부터 문제였다.



 걷기를 시작하니 부모 마음에 집보다 넓은 세상인 밖에서도 걷게 하고 싶어 신발을 신기고 나가보려 했는데 우선 신발 신는 자체를 싫어했다. 아… 모자도 처음엔 쓰기 싫어했지. 그럼 혹시 이번에도 몇 개월이 걸려야 신발을 신으려나? 이건 조금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자야 안 써도 그만이지만 걷는 건 그러니까 신발을 신고 밖에 나가는 건 조금 다른 문제였다.



 그런데 정말 다행인 건 모자처럼 오랜 시간 동안 신발 신는 걸 거부하진 않았다. 기쁜 마음에 신발을 신기고 밖에 나가 산책도 하고 놀이터에도 가려고 했는데 단계를 하나씩 밟아야 되는 것 인양 아이는 신발을 신은 채 거리와 놀이터에서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도무지 발걸음을 떼려 하지 않았다. 걸음을 유도하겠다고 손을 잡고 엄마 아빠랑 가자 이렇게 끌어도 요지부동이었다. 엄마 아빠의 마음이 앞서 조금 힘을 주어 끌어 보려 하면 바로 울려고 해서 도무지 끌어갈 수가 없었다. 방법은 그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겨우내 밖에서 망부석이 무엇인지, 요지부동의 뜻이 무엇인지 몸으로 보여준 아이는 완연한 어느 봄날 엄마 아빠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잔디밭을 신나게 뛰어다녔다. 그날은 날도 정말 좋았다. 그야말로 따사로운 봄 햇살이 내리쬐는 날이었다. 생동하는 봄의 생명력과 푸르른 잔디밭 그리고 모든 곳을 따사롭게 비추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는 햇살, 그 위를 세상 발랄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바라고 바라던 엄마 아빠의 기대를 시의 적절한 순간에 보여준 아이의 걸음. 그리고 걸음을 뛰어넘는 뜀박질까지 정말 모든 게 완벽한 날이었다.



 아이는 기다려 주는 거라는 무언의 눈빛을 아내와 함께 나누었던 4월이었다.

       

https://groro.co.kr/story/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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