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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Jan 29. 2023

말하는 대로

 나도 스무 살 적에 하루하루가 상당히 불안했다. 불안한 건 지금도 마찬가진데 이런 불안이 싹튼 시기가 고등시절임을 감안하면 20대는 내 불안연대기의 초창기라고 할 수 있다. 원래 꿈은 선생이었는데 선생이 되기 위한 공부를 등한시하면서 결국 포기한 나의 20대는 불안하게 바다를 정처 없이 부유하는 배와 같았다. 수능 점수에 맞춰 간 대학교는 졸업하는 순간까지 그냥 몸만 왔다 갔다 하는 그런 곳이었다.



 아이러니한 건 공대를 졸업했는데 공대라는 이유 하나로 지금, 꿈에도 생각지 않은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뭐라는 건가 싶을 거다. 원래 꿈이 선생이라며 그리고 선생이 되기 위한 공부를 안 해서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며 그런데 지금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지만 말 그대로다.



 다만 내가 원했던 선생은 학교의 교단에 서는 선생이었고 과목도 역사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무슨 선생이냐? 과외선생이다. 과목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공대출신답게(?) 수학이다. 나도 도대체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건지 신기할 따름이다. 삶이 그냥 그런 거 같다. 원한다고 되는 것도 말하는 대로 되는 것도 아닌 또 웃기지도 않게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는 그런 게 삶이다.



 그래서 한 편으로는 지금 만나는 아이들이 문제 하나라도 더 맞춰 개미 똥구멍만큼이라도 좋은 대학을 가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럴 필요가 있나 싶을 때가 많다. 물론 공교육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입시를 떠받치고 있는 양대 산맥의 하나인 사교육 현장 한복판에 있으면서 아이들에게 ‘야, 그렇게 목매듯이 문제 하나 더 맞춰 조금이라도 좋은 대학 가려고 애쓰지 마. 졸업하면 다 거기서 거기야. 뭐 물론 서울대나 연고대 등은 조금 다르겠지만 나머지는 졸업하고 나오면 다 비슷비슷해. 아,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어떤 대학을 들어갔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떻게 대학을 졸업할 것이냐가 더 중요한 거야.’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는 않다.



 그런데 분명히 졸업을 하고 20~30대를 거쳐 40대쯤 되면 다들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까만 생각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고만고만한 수준의 대학은 어딜 졸업하나 별 차이가 없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아니 그쯤 되면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에 대한 생각은 20~30대에 비해 그 의미가 상당히 희박해진다.



 ‘말하는 대로’라는 노래 가사를 보면 불안한 20대 때 불안과 더불어 불만도 많았던 거 같다. 왜 안 될까? 내가 뭐 그리 못난 걸까? 나는 왜 안 되는 걸까? 뭘 하긴 하는 거 같은데 방향이 잘못된 걸까? 내 능력과 노력, 의지 뭐 이딴 게 부족한 아니 없는 걸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고민만 하면서) 술이나 마시고 놀러 다니고 게임이나 하고 그랬던 거 같다. 불안한 마음과 상황을 덮고 싶었던 거다. 마약 하는 사람들이 마약으로 현실을 덮어 버리는 것처럼…



 그리고 노래는 어느 날 작지만 놀라운 깨달음이 찾아왔다고 한다. 그 이후 불안하고 불만 많았던 삶이 바뀌어 가면서 모든 것들이 말하는 대로 됐다고 끝을 낸다. 후렴구에 가면 거의 주문처럼 말하는 대로를 외치듯이 노래를 부른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이 노래는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MC인 유재석의 자전적인 노래다. 지금은 명실상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그야말로 No.1 진행자지만 유재석도 여러 번 본인의 20대는 상당히 불안했고 불만도 많았으며 그만큼 많이 부족했다고 밝힌 바 있다.



 어떤 계기에 의해 마음에 변화가 일어 그때부터 삶에 변화를 만들어 가며 늘 배우고 겸손한 자세로 지금까지 살아온 거 같다. 잘 모르지만 책을 많이 읽으면서 정말 많은 공부를 한다고 들었다. 불안했던 20대를 끊어낸 계기가 독서였는지 다른 계기에 의해 끊어 내면서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독서를 시작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책과 신문 등을 많이 읽는다고 들었다.



 난 그걸 안 해서 아직까지 불안한가 싶다. 20대 때는 유재석 못지않게 방황을 했는데 아마 더 했을 거 같다. 뭐라도 유재석보다 더 한 게 있으니 된 건가? 싶은 바보 같은 생각도 해 본다. 노래는 결국 말하는 대로 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 말은 사실이면서 거짓말이고 거짓말이면서 사실이다. ‘말하는 대로 된다고? 나 100억만 주세요. 다른 누구도 아닌 말하는 대로 된다고 떠벌린 유재석 당신이 100억만 주세요. 아마 자산이 천억을 훌쩍 넘을 텐데 100억 줘도 크게 문제없잖아요?’



 안 되는데? 될 리가 없지 그러니까 이 노래는, 유재석의 말하는 대로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그런데 또 사실이다. 분명히 유재석은 본인이 말하는 대로 됐으니까. 그에겐 사실이고 나에겐 거짓이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아마도 유재석은 어떠한 계기로 작은 성취를 이뤘을 것이고 그 성취의 이면엔 본인이 들인 노력이든 뭐든 있었을 것이다. 그 부분을 원인과 결과로 묶어 이런 원인 혹은 과정을 넣으면 저런 결과가 나오는 거 구나하고 느꼈을 것이다.



 그 이후로 마음을 고쳐먹고 공부도 하고 본인이 목표한 바가 있다면 그 목표를 본인의 가슴에 새기며 본인에게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서 말 그대로 말하는 대로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을 것이다. 그런 노력을 통해 말하는 대로 이뤄낸 사람에겐 너무나 당연한 사실로서의 이야기일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겐 공허한 거짓말일 것이다.



 방법을 몰라서도 아니고 그냥 하면 되는데 그걸 안 해서 뭐가 되는 게 아무것도 없다. 너무 잘 알고 있지만 너무 하기 싫은, 너무 잘 알고 있고 오늘이 가면 내일이 또 아무렇지 않게 올 거란 오만하고 대책 없는 기대로 오늘 못 하면 내일 하면 되지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모레도 늘 그다음 날로 미루기만 한다.



 과연 말하는 대로 될까?

연결이 되는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글을 마무리하는 어제오늘 우연히 라디오에서 들은 박명수의 ‘목표나 목적 없이 여유를 갖고 그냥 하세요.’라는 멘트가 말하는 대로 만들어 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을 유재석과 묘하게 오버랩된다.(명수형 사랑해요. 난 형이 더 좋아. ㅎ)


【TVPP】Yoo Jae Suk - As I Say, 유재석 - 처진 달팽이 '말하는 대로' @ Infinite Challenge - YouTube

https://groro.co.kr/story/2134

그로로 동시 게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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