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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Jun 29. 2023

주차, 짜증, 커피빈

 아침은 언제나 항상 힘들다. 사랑해 마지않는 딸이 그 어떤 알람보다 정확하게 아침을 알려 준다. 더 자고 싶은데 아빠를 깨우러 온다. 첫 임무는 밤새 차고 있던 기저귀를 갈아 주는 거다. 기저귀를 갈아 주면서 몸을 주물러 준다. 키가 쑥쑥 크길 바라는 마음과 밤새 별 탈 없이 잘 잤는지 확인하는 마음으로 허벅지며 종아리 그리고 팔뚝을 꾹꾹 주물러 준다.



 갈아 낸 기저귀는 잘 싸서 버리고 나는 손을 닦고 다시 자리에 눕는다. 상황에 따라 30분에서 1시간 정도 더 잘 수 있다. 그렇게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어 다시 누운 아빠의 마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딸은 아이스크림 카트에서 아빠가 평소에 좋아하는 초콜릿아이스크림을 콘으로 만들어 온다. 누워서 비몽사몽간에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 든다.(당연히 장난감 아이스크림 카트에서 주는 역시 장난감 아이스크림이다.)



 장난감센터에서 운영하는 요리 활동하러 가는 날이다. 아내는 간단한 아침을 준비해 아이에게 먹이고 나도 이제 일어나 세수 등을 하며 준비를 마쳤다. 많지 않은 세 가족이 넓지 않은 집을 부산스레 왔다 갔다 움직이며 나갈 준비를 마쳤다. 요리 활동 하러 가는 길이 가까웠지만 이러저러 편의를 위해 차를 끌고 갔다.



 지하주차장에 주차를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는데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입구 공간에 떡하니 차 한 대가 당당하게 비상깜빡이를 켜고 주차를 해 놨다. 주차를 해도 되는 공간이면 상관이 없는데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로 가는 입구 앞에 아무렇지 않게 주차를 해 놓다니... 뭐 얼마나 대단한 비상상황인지 모르겠지만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면서 비상깜빡이만 켜면 다 되는 줄 아는 일부 몰지각한 인간들에게 치미는 짜증과 분노로 아침부터 기분이 더러웠다.



 피해서 엘리베이터로 가니 기분 더럽게 주차를 해 놓은 인간이 보였다. 아이랑 어딜 가려고 하는 모양인데 딱 봐도 늦은 모양이었다. 누가 늦으라고 했나? 그렇게 안절부절 못 할 거면 일찍 나오지? 자기가 늦어 놓고 차도 이상한데 주차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라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엘리베이터는 층층마다 멈춰 섰다. 우린 괜찮았다. 늦지 않았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는데 그 인간이 짜증을 내는 기운이 나에게 까지 전해졌다. 다시 한번 아니 그러면 시간에 맞춰 오든가! 정해진 시간에 자기가 늦어 놓고 차도 개판으로 주차하고 짜증은... 애가 참 좋은 걸 배우겠다 싶었다.



 알고 보니 영어 학원에 가는 길인 거 같은데 약속된 시간에 들어가지 못하면 지각이 아니라 아예 들어가질 못하고 다음 수업 시간을 기다려야 되는 그런 학원이었던 거 같다. 더 웃음이 나왔다. 참, 대단한 학원 보내십니다 그려~ 그런 학원에 보내기 전에 당신 행동부터 돌아봐. 당신 애가 영어학원에서 배우는 거보다 당신의 그 거지 같은 행동을 먼저 배울 테니까.



 아내와 아이는 요리 활동을 하러 가고 나는 혼자 남아 뭘 하며 기다릴까 고민하다 건물 1층에 있는 카페에 가기로 했다. 뭐 어디 특별히 갈 만한 곳도 없고 집으로 다시 가자니 멀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애매했다. 카페는 ‘커피빈’이었다. 정말 간만에 가 보는 거 같았다. 한 때는 스타벅스와 경쟁을 하던 브랜드였는데 지금은 한참 뒤로 밀린 그런 브랜드다. 커피 이외에 차茶도 꽤 괜찮은 브랜드인데 뭘 잘못했는지 혹은 놓쳤는지 스타벅스에 한참 밀린 브랜드가 돼 버렸다.



 혹시 몰라 노트북을 챙겨 나왔는데 1시간 조금 안 되는 시간이지만 전날 쓰다 만 글을 정리하는 시간은 될 거 같았다. 목에 조금 문제가 있어 약을 먹고 있는 중이라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켰다.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켜고 휴대폰 충전까지 걸고 화장실에 다녀왔다. 역시 치안이 좋은 대한민국, 자전거만 훔쳐 가는 대한민국답게 자리에 놓인 물건 중 그 어떤 것도 없어지지 않았다.



 거의 다 써 놓은 글의 끝 한 두 문단 정도만 더 쓰고 마무리한 뒤에 간단한 퇴고까지 마쳤다. 글을 올리려면 첨부를 위해 찍어 놓은 사진을 골라야 되는데 그럴 만한 시간보다는 집중이 되질 않을 거 같아 올리는 건 조금 더 뒤에 하기로 했다. 1시간 정도가 흐른 뒤 아내와 딸이 내려왔다. 아내가 대뜸 ‘오~ 분위기 사는 데.’ 하고 농담을 했다.



 좋은 거 같다. 커피를 좋아하지만 카페에서 커피를 잘 사 먹지 않는 나로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는 경우가 그리 흔하지는 않다. 한 서 너 번 되는 거 같은데 이번에 확실히 느꼈다. 그야말로 분위기라는 측면에선 평균 이상 잘 갖춰져 있는 카페에서 백색소음을 들으며 쓰는 글의 맛은 꽤 괜찮은 거 같다. 커피 한 잔 시켜 놓고 세월아 네월아 죽치고 앉아 있는 카공족들은 경멸하지만 1시간 남짓 혹은 조금 여유 있게 2시간 안 쪽으로 카페의 그 분위기를 만끽하는 호사는 가끔 누릴 만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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