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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Jul 21. 2023

개인 서고인데 이제 대형으로다가

 https://groro.co.kr/story/4429



 중학교 시절에 청주중앙도서관에 공부를 하러 간 기억이 난다. 말이 공부하러 가는 거지 사실 친구들과 놀러 가는 이유가 더 컸던 도서관 행이었다. 명목상으론 공부하러 가는 게 맞기 때문에 가방에 보지도 않은 책을 잔뜩 챙겨 넣고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책상 정리를 마치면 일단 밖으로 나왔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한민국은 자리를 맡는 게 우선이었다. 자리를 뺏기면 뺏겼지 자리를 맡아 놓은(?) 물건은 훔쳐 가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중앙도서관은 도심 속의 고지대에 위치해 있다. 고지대에 위치함으로써 도심의 소음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책을 보거나 공부하기 좋은 환경을 구축하고자 함이었으리라. 아예 도심 외곽으로 빠지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 되면 접근성이 다소 떨어지기에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적절한 위치 선정인 거 같다.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덕에 도서관 밖에 나오면 가슴이 탁 트이는 전경을 볼 수 있었다.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옛말을 확인이라도 하는 듯이 지하 매점에 가 에이스를 하나 사서 밖으로 나갔다. 전경이 가장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에이스를 까먹으면서 워크맨을 이용해 신승훈의 노래를 들었다. 지금 찾아보니 승훈이 형 대전 사람이네? 나는 청주 사람인데 같은 충청도여~ 에이스를 다 먹고 노래도 신나게 듣고 전경도 볼 만큼 봤으니 공부를 하러 가야지가 아니라 시간이 얼추 흘러 점심시간이 돼 다시 지하 매점에 가 쫄면이나 우동을 사 먹는 게 순서였다.



 기억에 의하면 우동은 지극히 평범한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맛이었고(맛이 없다는 소리는 아니다.) 쫄면이 조금 매웠던 거 같다. 면에 양배추에 매운 소스가 다였던 상당히 담백한 그리고 저렴한 쫄면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사설 도서관이 아니었기 때문에(사설 도서관이 있기는 있나?) 가격이 저렴하기도 했겠지만 오래전이라 쫄면이나 우동은 천 원 안쪽이었던 기억이 난다. 5천 원 정도 들고 있으면 간단한 한 끼 식사와 간식으로 과자 한 두 개는 충분히 사 먹을 수 있던 시절이었다.



 이미 예상했겠지만 이쯤 되면 처음의 도서관을 온 명목상의 이유인 공부는 저기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린다. 점심까지 맛있게 먹고 공부를 하기 위해 펼쳐 둔 책이 아닌 자리를 맡기 위한 책을 찾으러 올라갔다. 점심을 먹었으니 졸린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한 수순이라 책상에 엎어져 잠을 청했다. 30분 정도 꿀잠을 자고 나면 주섬주섬 책을 챙겨 가방에 주워 담고 밖으로 나왔다. 전경을 보기엔 좋은 고지대지만 오르고 내리는 데는 영 귀찮은 위치이기도 했다. 그런 위치에 대한 불평불만을 내뱉으며 친구들과 털레털레 걸어 내려왔다.



 중학교 시절의 도서관에 대한 기억은 이게 전부다. 그 이후로 특별히 가 본 적은 없다. 아!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같이 공부한다고 한 두어 번 가 본 적은 있다. 지금에 이르러 알아보니 그때도 그랬는지 모르겠지만(어린 시절의 우리는 그냥 중앙도서관으로 불렀다.) 중앙도서관의 정확한 명칭은 충청북도교육도서관이다. 도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이란 소리다.



 도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이 있으면 시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이 있을 가능성도 상당히 높아진다. 그렇다. 청주시엔 시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이 여기저기 15개가 있다. 동네에 맞는 이름을 가진 15개의 도서관이 크게 청주시립도서관이란 이름 하나로 묶여 있다. 결혼을 하고 신혼집을 차린 동네에도 시립도서관이 하나 있다. 천천히 걸어서 10분 정도, 차를 타곤 5분 안쪽의 가까운 거리에 있는 도서관이다.



 처음엔 도서관을 잘 이용하지 않았다. 그냥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있구나 정도로만 인식이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책 사는 걸 좋아한다. 책은 읽기 위해 사는 게 기본이지만 책이라는 물건 자체를 사는 걸 좋아했다. 새 책의 그 향기, 아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다소 변태 같을 수도 있지만 새 책의 향기, 빳빳한 표지 그리고 구겨지지 않은 깨끗한 속지 구겨질 새라 만지는 것도 조심스럽게 새 책을 보고 읽는 맛이 뭐랄까 불편하지만 좋다.



 새 책을 사는 것 자체는 좋은데 문제는 물건으로서 새 책을 사고 난 뒤에 잘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책이니까 기한 없이 언제든지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더 안 읽는 거 같았다. 그럼에도 새 책이라는 물건에 대한 소유욕은 사그라지지 않아 잊을 만하면 한 권 한 권 사 모았다. 동시에 읽지 않는 깨끗한 책이 책장을 차곡차곡 채워 갔다. 더 이상 책장에 자리가 없을 즈음 새로운 책장을 사야 되나 하는 생각을 하던 시점에 나름 사건이 하나 생겼다.



 특별한 건 아니고 읽고 싶은 판타지소설이 하나 있었는데 책 가격이 조금 있는 편이었다. 총 6권이었기 때문에 사서 보기엔 조금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도서관에 신간으로 나온 걸 알게 됐고 바로 빌려 보려 했으나 1권이 대출 중이어서 예약을 걸고 기다리게 됐다. 그때부터 도서관 이용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거 같다. 그 이전에도 도서관을 이용하긴 했으나 그렇게 적극적이진 않았다. 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불특정 한 많은 사람들이 봐서 깔끔하지 않은 책을 보는 건 뭔가 상당히 성향에 위배되는 행위였다.



 예약을 걸고 기다리는 책은 신간으로 올라온 새 책이어서 그나마 성향과 어긋나는 점이 다소 적었다. 2주 정도의 시간을 기다려 드디어 1권을 대출하게 됐고 마지막 권까지 다 대출을 통해 읽게 됐다.(참고로 내용이 상당히 어렵고 분량도 많아 읽는데 상당한 고통이 따랐다.) 그 이후로 태어난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 책을 읽을 순 없어도 읽어 줄 수 있을 정도가 돼 아이 책을 함께 빌리면서 더더욱 도서관 이용이 빈번해졌다. 게다가 육아지원과 관련해 몇 권의 책은 시립도서관 측에서 무상으로 제공해 주기도 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도서관 이용의 빈도가 점점 늘게 됐고 도서관을 자주 다니다 보니 도서나 독서 그리고 시에서 진행하는 문화 관련 행사가 많이 보였다. 몇몇 행사는 참여하면서 소정의 상품(?) 같은 것도 받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작가 강연이나 특정도서 공감토크 등의 행사도 참여했다. 도서관의 휴게실에서 글을 쓰기도 하고 책을 빌리러 가면서 자연스레 아이와 산책을 하기도 했다. 점점 책을 살 이유가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장하고 싶은 욕구를 일으키는 책은 앞으로도 사겠지만 그런 책이 아니라면 도서관을 이용할 거 같다.



 지금 당장 인기 있는 베스트셀러가 아니라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책을 빌릴 수 있다. 기본적인 대출기간이 2주에 추가 1주일을 연장할 수 있어 실질적으론 3주를 빌릴 수 있다. 3주가 지나 다른 이용자가 해당 도서를 예약하지 않았다면 반납과 동시에 재대출을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마음만 먹으면 1년 내내 책을 빌려(거의 소장에 가까운 형태를 유지할 수 있다.) 볼 수도 있다. 뭐 물론 보통은 기본 대출기간이 끝나면 반납을 하고 추후에 보고 싶으면 다시 빌려 보는 편이긴 하다. 뭐 그 정도로 도서관이지만 내 책인 것처럼 편하게 빌려볼 수 있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어느덧 우리 가족의 주요 산책코스이면서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공간이 된 지 오래다. 아이가 크면 클수록 더 자주 방문할 거 같다. 여러 다양한 전집을 통으로 빌릴 수도 있고 5세 정도에서 초등생 대상으로 하는 교육 및 참여 활동은 더 많다. 시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행사들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다 무료다.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도 시립도서관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걸고 있지만 그야말로 집에서 가까운 동네 도서관이다. 마실 가는 마음으로 슬리퍼 찍찍 끌고 편하게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글을 쓰고 있는 오늘도 내일 반납해야 될 책이 책장에 잔뜩 꽂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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